조국 대전이 아니라 촛불연합의 대분열

[장석준 칼럼] 촛불 정부도 세습자본주의 내부자인 것이 드러났다

올해 여름은 처서가 지나도 뜨겁기만 하다. 날씨 이야기가 아니다. 날씨는 벌써 선선하다. 그러나 세상의 말과 마음은 반대다.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기만 한다. 조국 법무부장관 지명자 인사청문회를 앞둔 논란 탓이다. 조국 지명자를 둘러싼 의혹을 자기 일처럼 앞장서서, 아니 자기 문제보다 더 열광적으로 해명하고 옹호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의 가족이 살아온 삶의 폭로를 계기로 한국 사회에 비명을 토하는 이들이 있다.

나의 페이스북 타임라인도 며칠째 내전 중이다. 페이스북 친구 가운데 절반은 조국을 위해, 다른 절반은 조국에 절규하며 싸우고 있다. 나는 이 치열한 논전을 보며 이 사태가 촛불항쟁 이후 한국 사회가 마주한 또 다른 중대한 갈림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페이스북 친구 구성은 촛불시민 표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의 이러저런 경향부터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을 거쳐 혁명좌파 성향까지 촛불 광장이 절정기에 포괄했던 정치적 스펙트럼과 거의 일치한다. 그런데 이 무리가 촛불항쟁 이후 가장 첨예하게 양분됐다. 모세 앞에서 홍해가 갈라지듯 이번 사태는 촛불 광장을 둘로 갈랐다.

그렇기에 우리의 고민거리는 이제 단순히 조국 지명자의 법무부장관 임명 여부일 수 없다. 문제는 광범한 촛불시민연합의 운명이다. 어쩌면 후대 역사가들은 촛불연합이 결정적으로 와해된 시점을 바로 지금, 2019년 8월이라 기록하지 않을까.

'민주'개혁파 대 '사회'개혁파?

지난 며칠간 나는 양편을 관찰했다. 평정심으로 할 수 있는 관찰은 아니었다. 어느 쪽이든 논리보다는 정념의 발산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거의 종교적인 일체감이나 무한 신뢰, 질시나 원한 같은 부담스러운 감정들을 걷어내고 바라보면, 모두 나름의 논리가 있다. 이 논리만 존중해 양편을 정리하면, 대강 이렇다.

우선 조국 편에 선 이들을 보면, 대개 연령이 86세대에 가깝고 정치 성향은 더불어민주당 지지에서 멀지 않다. 그들은 새 검찰총장 임명에 이은 이번 법무부장관 인사가 적폐 중의 적폐인 검찰을 개혁할 결정적 수순이라 여긴다. 조국 지명자를 둘러싼 모든 논란은 이 개혁에 저항하는 자유한국당과 극우 언론의 공세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정부-여당은 이 싸움에서 한 치도 물러서서는 안 된다. 이는 곧 '촛불'정부가 수구 세력의 총공세에 무릎 꿇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쪽 입장의 글들은 대체로 비장하고 절박하다. 10여 년 전 리버럴 정부도 수구 세력의 포위로 실패하고 말았는데 이번 정부도 집권 2년만에 같은 상황에 처했다는 위기의식이 느껴진다. 그래서 조국을 물어뜯는 자들의 사악함보다 조국 주변의 허물에 분노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여유가 없다. 지금 주전장은 수구 적폐와 벌이는 혈전인데, 왜 입시 공정성 등의 다른 쟁점에 한눈을 파느냐는 것이다.

엄살 같지만은 않다. 우리 모두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을 겪었기 때문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9년이었다. 양대 정당이 사회경제정책은 한통속이니 정권이 바뀌어봐야 큰 차이 없다는 전망도 있었고 내 생각도 그랬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한국 사회의 극우적 요소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아래서 예상을 뛰어넘는 강력한 힘으로 결집해 사회 전체를 장악하려 들었다. 이런 꼴을 다시 보고 싶지는 않다. 이 단호한 바람은 분명 촛불 광장을 채운 강력한 힘의 하나였다.

그러나 조국 지명자에게 실망하고 환멸을 표하는 쪽에게는 결코 이것이 촛불항쟁의 전부일 수 없다. 또한 핵심이라 할 수도 없다. 이런 이들에게 언론에 드러난 조국 일가의 면모는 촛불 광장에서 대결하고 규탄했던 현실을 다시 한 번 아프게 환기시킨다.

사실 학교재단이나 사모펀드가 주된 화제였을 때만 해도 비판자들 사이에는 강한 응집력도, 뚜렷한 경향성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조국 지명자의 딸이 대다수 서민은 듣도 보도 못한 방식으로 입시-학벌 경쟁의 승자가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는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적어도 내 타임라인의 추이에 따르면, 나이가 적을수록, 이른바 '강남' 엘리트와 거리가 먼 계층일수록, 더불어민주당을 왼쪽에서 비판하는 입장일수록 확연히 돌아섰다.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과 함께 교육이야말로 폭탄의 뇌관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부동산 투기 논란이 일자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고, 조국 지명자를 둘러싼 논란은 자녀 입시 문제가 도마에 오르자 전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둘 다 법률 위반과는 상관없지만, 부동산 문제이고 교육 문제이기에 민심을 거세게 흔들고 말았다. 부동산 불평등과 입시-학벌 경쟁이 한국 사회에서 특권의 토대이자 세습의 고리임을 다들 잘 알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또 다른 많은 촛불 시민들은 3년 전 겨울에 광장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와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새누리당 정부를 향한 분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분노의 대상은 박근혜-최순실/정유라-이재용 삼각형으로 상징되던 세습 특권층이었고, 그들이 딛고 선 기득권 질서였다. 최근 정의당 대표 경선에서 심상정 의원은 여기에 '세습자본주의'라는 적절한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조국 지명자 가족의 입시 경쟁 성공담은 '촛불'정부 핵심 인사마저 이 세습자본주의의 내부자임을 드러냈다. 이로부터 분노가 다시 타올랐다.

물론 분노의 가닥 역시 간단하지는 않다. 하나가 아니며, 서로 대립하기도 한다. 입시 문제를 이유로 조국 지명자를 비판하는 이들 가운데에는 경쟁의 공정성을 가장 앞에 내세우는 이들도 있고, 그런 공정성의 집착(박권일의 정식화에 따르면, '한국형 평등주의')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평등의 실현을 부르짖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촛불 광장에서 세습자본주의에 더 답답함을 느끼는 여러 흐름들이 나머지와 크게 갈라진 것만은 틀림없다. 더구나 이 흐름들은 광장이 유례없이 확장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요소들이다.

그럼 둘로 갈라진 촛불 광장의 양편을 뭐라 불러야 할까? 둘 다 한국 사회의 개혁을 바라니 기본적으로는 개혁파다. 그러나 개혁의 주안점이 크게 다르다. 한 쪽은 '민주'개혁파, 다른 쪽은 '사회'개혁파라고나 할까. 조국 법무부장관 지명자 논란은 촛불 광장 안에 공존하던 이 두 입장의 차이를 더없이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아마도 촛불연합의 분열 혹은 민주개혁파와 사회개혁파의 분립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됐는지 모른다.

지금 누구보다 각성하고 전환해야 할 세력은 진보정당

그러고 보면 박근혜 정권이 참 대단하다. 이리도 간극이 큰 민주개혁파와 사회개혁파가 그간 차이도 잊은 채 함께 뭉치게 했으니 말이다. 지금도 그 후예인 자유한국당의 위력은 무시할 수 없다. 조국 지명자를 놓고 갑론을박하다가도 자유한국당 쪽만 쳐다보면 다들 할 말을 잃게 된다. 자유한국당의 이 무시무시한 존재감 때문에 '촛불'이라는 상징이 아직도 효력을 잃지 않은 형편이고, 정부-여당과 그 주변 지식인들은 내년 총선까지는 이 효력이 지속될 것이라는 데 판돈을 걸고 있다.

그러나 이런 안이한 전망과 기대가 언제까지 통할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이제는 이런 태도가 민주개혁파와 사회개혁파의 분열과 대립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는지 모른다. 민주개혁파에 가까운 논자들은 적폐 청산과 사회 개혁의 열망이 다르지 않다며 대충 뭉뚱그리거나 둘을 각각 당면 과제와 다음 단계 과제로 나누는 익숙한 단계론으로 촛불연합을 지속시키려 한다. 이런 식의 주장은 세습자본주의 혁파 과제가 민주대연합 논리에 밀려 계속 무시된다고 느끼는 이들의 소외감과 불만만 북돋을 뿐이다.

나는 차라리 이제 촛불연합 이후의 새로운 개혁연합으로 과감히 나아가자고 제안한다. 촛불연합의 분립은 필연임을 인정하고 오히려 철저한 분립을 통해 새로운 합작과 연합의 가능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분립 이후의 연합', '분열을 전제로 한 합작'이다.

이 대목에서 가장 철저히 대오각성하고 환골탈태해야 할 주체는 진보정당운동, 그 중에서도 현재 제도정치 내 대표 주자인 정의당이다. 무릇 정치란 사회가 가장 효과적으로 갈등을 발견하고 직시하며 해결하라고 존재하는 제도이자 영역이다. 지금 우리처럼 급변하는 사회일수록 정치 체계는 사회가 가장 선명한 선택지를 받아들어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자신을 기민하게 재편해야 한다. 이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정당이다. 정의당은 과연 지금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오랫동안 정의당은 민주개혁의 급진파 정도 위상을 점해왔다. 더불어민주당이 적폐 청산을 제대로 추진하도록 다그치는 정치 세력이었고, 대중도 정의당을 지지하는 일은 대체로 이런 방면에서 쓸모를 지닌다고 생각해왔다. 이는 촛불항쟁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맡아야만 했던 역할이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 진보정당운동이 민주대연합 논리를 받아들이며 익숙해진 역할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정의당은 이런 급진 민주개혁파 역할에서 새로운 배역으로 과감히 이동해야 한다. 그것은 촛불연합 안에서 점점 더 민주개혁파와 뚜렷이 분리되며 혼돈스럽게 확산되는 사회개혁파를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역할이다. 현재 사회개혁 쪽 여론은 무정형이지만,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어선 안 된다. 진보정당이 이들의 정치적 통로로 나서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민주개혁파와 사회개혁파는 개별적인 논쟁과 감정싸움이 아니라 집단적인 협상에 착수할 수 있다. 촛불연합의 역사적 효력이 점차 희미해지는 상황에서는 이제 이러한 정치 협상과 합작을 통해서만 촛불연합을 대신할 개혁연합을 재건할 수 있다.

정의당에게는 너무 새삼스러운 충고일 수도 있다. 그간 사회 개혁을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강령과 정책 자료집에 진보적인 주거, 교육 정책을 고이 모셔 두며 자족해서는 안 된다. 남들이 수구 적폐 청산을 이야기할 때에 그 몇 배로 부동산 불평등을 말하고 대학 서열 구조를 떠들어야 한다. 그래야 메시지가 대중의 귀에 가닿을 수 있고, 대중이 투표용지에 나열된 정당들 가운데에서 자신의 무기를 제대로 골라 써먹을 수 있다.

만약 진보정당과 사회개혁파 대중의 만남이 때맞춰 이뤄지지 못한다면, 어떤 미래가 기다릴까? 더불어민주당 오른쪽에 포진한 정치 세력들이 촛불연합의 와해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는 시도에 나서고 이쪽이 성공할 수도 있다. 가령 자유한국당이나 바른미래당 언저리에서 신진 우파 정치 세력이 등장해 세습자본주의 비판 흐름 가운데에서도 경쟁의 공정성만 강조하는 쪽과 결합할 가능성을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다. 일단 이런 정치 세력이 세습 특권층 비판의 대표자로 인정받고 나면, 이 정치 지형을 다시 바꾸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즉, 진보정당의 실패는 고스란히 우파 포퓰리즘 승리의 기반이 될 운명이다.

지금 우리는 분명히 역사의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조국 법무부장관 지명자 논란은 이 무거운 선택의 순간을 앞당겼다. 하지만 언젠가는 마주했어야 할 순간이기도 하다. 부디 역사의 올바른 방향을 열려는 이들이 두려움 없이 이렇게 다짐하며 미지의 새 국면을 향해 도약하기를 바란다.

"촛불연합은 죽었다. 새로운 개혁연합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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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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