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인사청문회법은 "국회는 임명동의안 등(인사청문요청안 포함)이 제출된 날부터 20일 이내에 그 심사 또는 인사청문을 마쳐야 한다"(법 6조 2항)라고 규정하고 있고, 특히 소관 상임위는 "임명동의안 등이 회부된 날부터 15일 이내에 인사청문회를 마치되 인사청문회 기간은 3일 이내로 한다"(법 9조 1항)고 정해놓고 있다.
조 후보자 등 8.9 개각 대상자들의 인사청문요청안이 국회에 제출된 것은 지난 14일, 이 요청안이 각 위원회에 회부된 것은 지난 16일이다. 법 규정에 따르면 소관 상임위는 오는 30일까지 청문회를 마쳐야 하고, 청문보고서 채택 여부를 포함해 그 결과가 국회 본회의에 보고돼야 할 시한은 다음달 2일까지다.
그러나 한국당은 같은 법에 "부득이한 사유로 규정에 의한 기간 이내에 인사청문회를 마치지 못해 국회가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송부하지 못한 경우, 대통령은 그 기간의 다음날부터 10일 이내의 범위에서 기간을 정해 보고서를 송부해줄 것을 국회에 요청할 수 있다"고 돼 있는 점(6조 3항)을 들어 '20일 이내' 규정을 반드시 지킬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당 법사위 간사인 김도읍 의원은 지난 19일 오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이 주장하는 청문회 날짜) '29일'은 물리적으로 좀 불가능한 게 아닌가 한다"며 "증인출석·자료제출 요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리적 기간이 5일이어서 8월 3주는 안 되고 8월 4주밖에 없는데, 그 주에 한국당·민주당 연찬회가 있다. 그 틈새에 몰아서 청문회를 해버린다면 국민이 청문회를 통해 후보자를 평가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저희 당 입장에서는 각 청문회가 분산(개최)돼서 충분히 언론을 통해 국민이 평가할 주어져야 한다고 본다"며 "7개 청문회를 하루에 1개씩 해도 1주일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그런 차원에서,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국민 알 권리 기회 제공 차원에서도 그렇고 (조 후보자 청문회는) 9월 초에 해야 한다"며 "일부(다른 후보자 청문회)는 8월 말에 할 수도 있겠지만 (조 후보자 청문회는) 9월 초가 돼야 하지 않겠나"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청문회를 9월 초에 할 경우 국회법 규정 기한을 어기게 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전례를 보면, 법정 기한은 강행규정도 아니고 그 기한을 넘겨 청문회를 했던 전례도 상당히 있다"며 "법률적 문제가 없다"고 반론했다. 오히려 "9월 초쯤 하는 게 여러 면에서 순리(順理) 아니냐"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당이 조 후보자 청문회를 최대한 미루려 하는 이유가 단지 '국민 알 권리'라는 표면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단순히 '7개 청문회를 분산 개최해야 한다'는 이유라면, 예컨대 조 후보자 청문회를 가장 먼저 하고 다른 6명의 후보자 청문회를 나중에 하는 방안도 논리적으로는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당은 오히려 '다른 청문회는 일부 8월 말에 하더라도 조 후보자 청문회는 9월 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한국당이 조 후보자 문제를 '추석 밥상'에 올리려 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한국당 주장대로 9월 첫 주(9월 2~8일)에 조 후보자 청문회를 할 경우, 바로 다음 주인 12일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현재 조 후보자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을 최대한 활용, 추석 여론전을 펴겠다는 것이다.
조 후보자에 대한 '공격 기회'를 최대한 늘리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 후보자 딸의 논문 문제가 최초 보도된 지난 20일 이후, 조 후보자는 매일 야당·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유력 일간지들이 신문 지면을 매일 4~5개 면씩 펼치는가 하면, 방송 보도도 조 후보자 논란을 헤드라인에 싣고 있다. 청문회가 늦어진다는 것은, 조 후보자 입장에서 보면 이런 시간이 앞으로도 열흘이나 남았다는 말이 된다. 야당은 이 기간 동안 계속 의혹 공세로 여론을 이끌면서 조 후보자에 대한 대중의 피로감을 높이는 전략을 쓸 수도 있다.
무소속 박지원 의원은 22일 교통방송(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청문회를 늦추려는 한국당의 의도에 대해 "정략적으로, 정치적으로 조 후보자를 더 상처내고, 끝까지 끌고 가려는 것"이라며 "그리고 추석 밥상에 올리려고 하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한국당 일각에서는 아예 조 후보자 청문회를 보이콧하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단언컨대 조국은 청문회 자리에 앉을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분노한 민심을 직시하기 바란다. 즉각 조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고 국민들께 직접 사죄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한 것은 묘한 파장을 낳았다.
황 대표는 특히 "'청문회부터 열자'는 청와대와 여당의 주장은 '청문회 하루만 넘기면 임명을 강행하겠다'고 하는 꼼수"라며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국민을 무시하고 청문회를 요식 절차로 악용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황 대표는 또 "조 후보자는 그동안 드러난 의혹들에 대해 검찰의 엄정한 수사부터 받아야 한다.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특검, 국정조사 등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특검론을 주장하는가 하면 "24일 광화문에서 열릴 우리 당의 구국집회에도 분노한 많은 국민들께서 참여하실 것"이라고 조 후보자 논란을 한국당의 '장외 투쟁'과 연계시킬 방침도 시사했다.
황 대표의 이같은 발언이 눈길을 끄는 것은, 청문회 무용론이나 특검·국조 주장, 장외투쟁 등이 통상 청문회 보이콧을 주장해온 이들이 대안으로 언급하던 방안이기 때문이다. 앞서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SNS에 쓴 글에서 "야무지게 청문회해서 낙마시킬 자신이 없으면, 지난번 윤석열 검찰총장 청문회처럼 어설프게 대처하려면 조 후보자 (임명을) 정당화시켜 주는 그런 청문회는 하지 말고 아예 보이콧하라"고 주장한 바 있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한국당 내에서도 온도차가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전날 의원총회에서 "여당은 '청문회 열자'고만 한다. 요식행위만 하고 임명을 강행하겠다는 것"이라고 여당을 비판하면서도 "청문회, 당연히 의사일정은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문회 자체가 야당에게는 공격의 기회이자 청문위원인 의원들을 돋보이게 할 기회인데 굳이 이를 포기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황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황 대표의 오전 회의 발언은 조 후보자에게 자격이 없다는 것, 특검·국조를 해야 한다는 명분을 강조한 것이지 청문회를 하지 말자는 얘기는 아니다. 청문회 한다고 (이후에) 특검을 못 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청문회 안 하면 제일 좋아할 사람이 조 후보자 아니냐. 청문회 안 한다고 (대통령이) 임명을 안 하겠느냐. 조 후보자의 문제점을 알릴 수 있는 장인데, 한 번이라도 더 알려야 할 야당이 이를 마다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야당 입장에서 청문회를 통해 달성해야 할 정치적 목적, 즉 △차기 대권주자로까지 거론되는 조 후보자에게 정치적 타격을 입히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끌어올리며 △지지층을 결집해 지지율 제고를 도모하는 목적을 청문회 이전에 이미 달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굳이 청문회 개최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판단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미 공격 목표는 달성했는데, 청문회를 열면 오히려 조 후보자에게 해명 기회만 줄 수 있다는 계산도 작용할 수 있다.
반대로 민주당에서는 조 후보자에게 '해명 기회'를 반드시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청문회 일정을 정상적으로 잡는 게 우선"이라면서도 "조 후보자는 의혹이 난무하니 본인도 실체적 진실을 알리고 싶을 텐데, 청문회 날짜가 안 잡히는 상황이 되면 국민·언론·국회와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필요하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즉 야당과 청문회 일정이 잡히지 않을 경우, 조 후보자에게 별도 해명의 장을 만들어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원내대표는 "(야당이) 청문회를 보이콧하면 실체적 진실을 알릴 수 있는 기회는 완전히 사라지고 본인에게 덧씌워진 '가짜 뉴스'를 소명할 기회마저 허공에 날리는 격이 된다"며 "말할 기회도 안 주고 입 닫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 청문회' 같은 아이디어도 나왔다"며 "그런 방식이 좋은지 좀더 검토해 보겠지만,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조 후보자가) 말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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