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모자·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왜 아직도

[안종주의 안전사회] 송파 세 모녀 사건에서 우린 더 나아졌나?

우리 사회에서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은 정말로 다양하다. 이런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사건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60대 서울대 청소 노동자 사망 사건과 탈북 모자 사망 사건이다. 이들 사건은 홍수와 같은 자연재난과 교통사고, 화재, 건물붕괴 등 전형적 사회재난이 일어나지 않아도 우리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을 잘 입증해주었다.

지난 9일 낮 12시 30분쯤 서울대 공과대학 제2공학관 직원 휴게실에서 67세 청소노동자가 쉬던 중 숨졌다. 휴게실은 계단 아래 마련된 간이공간이었다. 에어컨이나 창문도 없었다. 냉난방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운 공간이었다. 그날은 낮 최고기온이 35도나 됐다. 폭염경보가 내려진 날이었다. 휴게실은 어른 두 명 정도가 겨우 누울 공간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좁디좁았다. 휴게실의 크기는 1인당 1.17㎡이었다. 수감자 수용시설보다도 열악한 환경이었다.

경찰은 사인을 병사라고 밝혔다. 그가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60대 노동자는 무더위가 극심한 날에도 새벽에 출근해 8,068평에 달하는 건물을 평소처럼 쓸고 닦았다. 이 때문에 노조는 그의 죽음은 지병 때문이 아니라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인한 산재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동조합 서울대시설환경분회장은 “최소한의 환기마저 안 되는 공간이 그의 질환을 더 악화시켜 사망에 이르게 했다.” 주장했다.

60대 서울대 청소노동자 병사냐, 폭염 속 산재냐?

서울에서는 고인이 숨지기 하루 전날 오후 2시부터 그가 사망할 때까지 폭염경보가 이어졌다. 고령에다 심장질환까지 앓고 있었으니 계속된 폭염 속 힘든 노동은 심장에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했음이 분명하다. 심장질환자에게 폭염 속 노동은 생명을 갉아먹는 독이다. 온열질환자 사망자 가운데 다수가 심장질환자다. 이런 날씨 속에서 환기도, 냉방마저도 되지 않는 공간에 몸을 맡겼으니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병사인가? 아니면 산재인가?

이 사건에 앞서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마흔두 살의 탈북민 어머니와 여섯 살 된 아들 등 모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수도검침원이 요금 미납으로 단수 조처됐음에도 소식이 없자 이 집을 방문했다가 악취가 나는 것을 확인해 아파트 관리인에게 알렸다. 관리인은 강제로 창문을 열고 들어가 숨져 있는 모자를 발견했다.

경찰은 이들의 사인을 살핀 결과 자살 또는 타살 정황이 발견되지 않아 굶어죽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발견 당시 냉장고가 텅 비어 있는 등 집에 식료품이 다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 때문에 우리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또 많은 이들이 모자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숨진 여성은 2009년 탈북해 2년간 서울 관악구의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1년간은 기초생활수급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직장을 가지면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녀는 중국 국적의 남성과 결혼해 경남 통영으로 내려가 아들을 낳았다. 그 뒤 남편과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이혼한 뒤 아들만 데리고 지난해 10월 다시 관악구 임대아파트로 전입했다.

탈북 모자, 소득 제로임에도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못돼

이 때 아동수당을 신청했다. 당시 소득 인정액이 0원이었다. 하지만 기초생활보장 등 아무런 복지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관악구청은 당시 아동수당 신청과 주거급여 부양의무자 폐지에 따른 집중 신청기간 운영 및 대상자 발굴 업무로 업무량이 폭증해 이들에 대해 확인을 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또 이 가정은 월세와 전기료가 2개월 이상 연체됐다. 하지만 모자가 살던 재개발 임대아파트의 월세 연체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시스템 등록 대상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이들은 관리 대상이 되지 못했다. 전기료도 관리비에 포함돼 복지관리 체계에서 위기가구로 인지되지 못했다.

사건이 발생한 뒤 정부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나섰다. 통일부는 탈북자 관리가 제대로 안 된 부분을 인정하고 앞으로 유사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지원관리 체계를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복지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도 지난 16일 17개 광역자치단체 복지국장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서 이번 사건 가구와 유사한 사각지대에 있는 대상자를 발굴·지원하기 위한 긴급 실태조사를 하도록 각 광역자치단체에 요청했다.

우선 지난해 아동수당을 신청한 가구 중 소득인정액이 기초생활보장 또는 차상위계층 이하로 확인된 가구를 대상으로 확인에 나서기로 했다. 기초연금, 장애인연금 등 기존 복지급여 수급자 중 소득인정액이 기초생활보장 또는 차상위계층 이하인 가구도 점검키로 했다. 이번 사건처럼 '복지 사각지대 발굴관리시스템'을 통해 정보가 입수되지 않는 재개발 임대주택 등 저소득층 거주 공동주택 월세, 관리비 3개월 이상 체납 가구에 대해서도 실태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송파 세 모녀 자살 이후 우리 사회는 정말 반성했는가?

'탈북 모자 사망 사건'은 2014년 2월 일어나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준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을 곧바로 떠올리게 만든다. 당시 서울 송파구 석촌동 한 단독주택 지하에 세 들어 살던 60대 여성과 30대 딸 2명이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들은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갖고 있던 전 재산인 현금 70만원을 집세와 공과금으로 놔두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이 사건 이후 우리 사회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거세게 울려 펴졌다. 정부는 여러 복지 대책을 발표하고 막대한 복지 예산을 투입했다. 국회도 사회보장수급권자의 발굴 지원법 등 '세 모녀 3법'으로 불리는 제·개정 법안을 만들었다. 그런데도 아사로 추정되는 '관악구 탈북 모자 사망 사건'이 발생하자 복지 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강하게 든다.

탈북 모자 사망과 서울대 60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을 잇달아 접하고 그 경위를 살펴보면서 '관심'이란 말을 떠올렸다. 관심은 곧 사랑이다. 우리 사회가 그들에 대해 얼마나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사랑으로 대했는지 되묻고 싶다. 관심과 사랑이 크게 모자랐기에 이들이 죽음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는지. 관심은 안전이고 생명이다.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비극이 벌어진 것은 아닌지.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에 대한 반성도 진짜 반성이 아니라 그때 잠깐 시늉만 낸 것은 아닌지.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이후 서울대시설환경분회장은 서울대에 건물이 워낙 많아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소를 일일이 둘러보지 못하고 사건 이후 직접 현장을 가보고 너무나 열악한 것에 놀랐다고 밝혔다. 얼마나 분회장의 일이 많고 바쁘기에 휴게소 한 번 방문하기가 정말 어려웠고 그래서 대학 쪽에 개선을 강력하게 요구할 수 없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물론 서울대 총장을 비롯한 서울대 관계자에게 더 큰 책임을 묻고 싶다. 청소노동자에게 내어줄 수 있는, 쉴 공간이 그런 곳밖에 없었는지 말이다. 총장을 비롯한 관리 담당자는 너무나 열악한 공간에서 쉴 수밖에 없는 청소노동자들의 처지를 조금이라고 생각했는지. 만약 그들이 자신의 아버지고 가까운 친척이었더라도 일한 뒤 그런 공간에서 쉬도록 계속 내버려두었을지.

탈북자든, 탈북자가 아니든 복지가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관심은 필수다. 한데 통일부든, 보건복지부든, 지자체든 덥고, 춥고 배고픈 이들에게 정말 깊은 관심을 보여 왔는가. 바쁘다는 핑계로 관심도 가지지 않고 현장도 가보지 않은 것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관심 결핍은 곧 안전을 위협하고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리거나 삶을 포기하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알고는 있는지.

두 비극적 사건의 발생은 제도 탓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은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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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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