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운 시절이다. 일본 정부와 대결하게 돼서만은 아니다. 1965년 한일협정의 맹점과 모순 때문에라도 우리는 일본 사회 주류와 언젠가 크게 한 번은 맞붙을 운명이었다. 문제는 단지 일본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둘러싼 다른 강대국들도 문제다. 일본 정부와 대치하는 이 와중에 이들 역시 하나같이 친구와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일관계의 시시비비를 가리기는커녕 방위분담금 인상과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요구한다. 이에 질세라 러시아와 중국은 위협적인 군사훈련을 벌인다. 말하자면 이웃나라가 다 군사 (초)강대국인데, 그 중에 '좋은' 이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사면초가'가 아예 지정학적 숙명이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이런 때에 나는 1년 전 여름 우리를 떠난 고 노회찬 의원이 남긴 책과 문서들 가운데에서 반가운 기억 하나를 건져냈다. 2007년 민주노동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뛰어든 노회찬이 제시한 비전, '제7공화국'이었다. 제7공화국 구상이란 경제, 복지부터 환경, 평화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 전반을 현재의 제6공화국 질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체제로 재편하자는 종합 청사진이었다.
한데 때가 때인지라 그 가운데에서도 유독 한 가지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각 분야별 구상을 담은 11개의 '테제' 중 평화에 관한 테제였다. 이런 내용이다. "<제7공화국>은 모든 전쟁을 부인하며, 어떠한 형태의 군사개입도 반대하고, 일체의 군사동맹을 해체한다."
일체의 군사동맹 해체라. 이 문장 뒤에 붙은 해설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한미동맹을 단계적으로 해체하고, 어떠한 형태의 군사동맹에도 참여하지 않는 영세중립국을 천명한다.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추진되는 통일국가 역시 초기단계에서부터 탈동맹 영세중립국을 선언하고, 국제적 보장을 받는다."
탈동맹 영세중립국. 이 단어 앞에서 나는 한 동안 상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몇 주간의 혼란과 분노, 고민을 돌이켜 보며 그 출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한반도 평화는 탈동맹-중립국화를 통해
영세중립국이라는 말이 너무 고색창연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옛날 학창 시절에 스위스나 스웨덴,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들이 영세중립국이라 들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정확히 정리하면, '영세'중립국이라는 표현에 들어맞는 나라는 스위스 정도다. 열전이나 냉전 와중에 중립을 선언하거나 상당히 오랜 기간 중립국이라 자처한 나라들은 있지만, 국제조약에 따라 영구히 중립국 지위를 인정받은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는 1960년 4월 혁명 직후에 이 말이 상당히 회자됐다. 당시 '혁신'세력이라 불렸던 진보정당들이 평화통일 방안 혹은 통일 이후 한반도 대안으로 중립국화 혹은 영세중립국화를 주창했다. 남한은 미국과의 군사동맹에서 벗어나고 북한은 소련, 중국과의 군사동맹에서 벗어나 평화통일을 이루자는 것이었고, 통일한국은 냉전의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국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진보정당 가운데 가장 당세가 컸던 사회대중당이 주도한 통일운동단체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는 좌우합작으로 통일을 이룬 뒤 미소 양 진영에 대해 중립을 선언한 오스트리아를 모델로 중립화 통일 방안을 제시했다. 또 다른 진보정당 통일사회당이 주도한 통일운동단체 중립화조국통일총연맹은 국제회의를 통해 한반도의 영세중립국 지위를 인정받는 영세중립화 방안을 내놓았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를 외치며 통일운동에 나선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영세중립화 통일 방안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중립국의 꿈이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던 시절은 1년도 안 돼 끝나고 말았다. 박정희의 쿠데타 탓이었다. 이후 (영세)중립화라는 단어는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박정희 정권이 미국도 모자라 이제 일본과도 정치-경제-군사 동맹을 맺은 상황에서 탈동맹 중립화란 철모르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4월 혁명 직후의 유실된 역사적 가능성을 아쉬워하는 몇몇 통일운동가 사이에서나 기억될 따름이었다.
그런데 노회찬은 2000년대 후반에 제7공화국 구상의 일부로 이 (영세)중립화 비전을 다시 꺼내들었다. 결코 느닷없는 복고는 아니었다. 오히려 20세기 중반에는 시대를 너무 앞섰던 이 구상이 21세기에는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대안이 되었다는 판단에서 나온 재평가-재조명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된 남북 화해 국면의 논리적 귀결은 탈동맹 영세중립국화일 수밖에 없다 본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제7공화국 구상은 노회찬이 2007년 대선의 민주노동당 후보로 선택받지 못함으로써 대중과 만날 기회를 잃었다. 하지만 2019년 여름, 이 뜨거운 한반도의 시각에서 되돌아보면, 제7공화국 비전의 일부였던 탈동맹 영세중립국화는 10여 년 전보다 지금 더 절실히 와 닿는 대안인 것 같다. 무엇보다 작금의 남북미 협상이 2000년대의 남북 대화보다 더 심각하게 세계 질서 변동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랜 전쟁 위기 끝에 드디어 남북미 정상들의 만남이 실현되자 그저 기뻐하고 환호했다. 그러나 이 벅찬 광경이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 얼마나 심대한 변화를 불러올지는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는 우리가 시작한 일이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 그리고 전 세계에 어떤 효과와 의미를 던질지에 너무 둔감했다.
이 여름에 우리가 마주한 주변 4강의 흉측한 맨 얼굴이 모두 이 파급 효과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은 대북 기지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될지 모를 남한에게 대중 기지의 역할을 더욱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사드에 이어 중거리 미사일까지 배치하려 한다. 그 와중에 일본은 '1965년 체제'의 골격인 미국-일본-한국 순의 위계질서를 재확인하기 위해 초유의 경제 전쟁을 시작했다. 어차피 한반도 협상으로 판이 흔들린다면, 새 질서가 등장하기 전에 우선 양국의 힘의 우열을 고정하는 것이 긴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는 반대편 동맹 내부의 이러한 변화 조짐에 군사 위협으로 대응하고 있다.
도대체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는 형국이다. 기존 군사동맹 축인 미국, 일본의 진상은 이번에 너무도 치 떨리게 확인했다. 이 동맹에 남는다는 것은 중국, 러시아와의 신냉전, 아니 더 나아가 열전의 전초기지가 되어야 함을, 일본이 한국보다 위에 있는 위계질서를 승인하고 과거사를 비롯한 모든 문제를 이 현실에 맞춰야함을 뜻한다. 이것은 우리가 더는 묵묵히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이다.
그렇다고 반대편을 선택할 수도 없다. 한때 중국이 미국 헤게모니 쇠퇴 이후의 대안으로 떠오르리라는 전망이 좌우를 막론하고 유행한 적이 있다. 그러나 중국이 그런 대안이 되기에는 시진핑 집권 이후에 보이는 행보가 하나같이 다 퇴행적이기만 하다. 중국과 러시아는 반민주주의의 전 지구적 아성이 되어 있고, 지금 홍콩에서는 이에 항거하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중이다. 이런 중국, 러시아는 우리의 적대국이 돼서도 안 되지만 또한 동맹국일 수도 없는 이웃 나라들이다.
그렇다면 남는 선택은 결국 모든 동맹, 특히 군사동맹에서 벗어나는 길뿐이다. 단숨에 기존 한미일 동맹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더라도 점차 그 규정력을 줄여나가면서 중국, 러시아와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이런 탈동맹 과정의 동전 반대면은 곧 중립국화 과정이다. 이것이 바로 작년 우리가 반겼고 지금도 포기할 수 없는 '판문점 선언'의 유일한 논리적 귀결 아닐까.
탈동맹 중립국이려면 필요한 것 – 스웨덴 사례
탈동맹 중립국화를 추진하면서 우리가 참조할만한 선례가 있는가? 한반도의 운명이 너무도 특별한 탓에 다른 지역에서 유사한 선례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나마 우리에게 상당한 시사를 던지는 사례가 있다면, 스웨덴 정도가 아닐까.
스웨덴을 영세중립국이라는 단어와 함께 기억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 나라는 무슨 국제조약을 통해 중립국 지위를 보장받은 적이 전혀 없다. 헌법에도 영세중립국임을 선포하는 조항은 없다. 그러나 양차 세계 대전 중에 모두 중립을 선언해 끝내 전쟁에 휩쓸리지 않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같은 군사동맹에 가입한 적도 없다. 특히 냉전 중에 미소 양 진영에 일정하게 거리를 둔 채 국제연합(UN)을 무대로 평화, 인권 외교에 적극 나선 점이 돋보인다.
한반도와는 댈 게 아니지만, 그래도 스웨덴 역시 강대국 사이에 낀 신세다. 소련과도 가깝고 독일과도 지척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20세기 내내 성공적으로 중립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첫 번째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상당히 현실주의적인 교훈이다. 스웨덴은 북유럽 국가들 가운데 가장 강한 국방력을 지닌 나라다. 그래서 2차 대전 중에 독일도 쉽게 침공을 결정할 수 없었다. 상당한 경제력에 기반을 둔 자주적 국방력을 갖춰야 중립국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 ― 스웨덴 사례는 이 냉엄한 진실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스웨덴이 강대국들에게 오랫동안 중립국 지위를 인정받는 데는 또 다른 요소가 더 필요했다. 그것은 다들 존중할 수밖에 없는 체제 모범국가였다는 사실이다. 1930년대부터 20세기 말까지 스웨덴은 가장 앞선 사회민주주의 국가였다. 미국보다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나라였고, 1970년대 즈음에는 어떤 면에서 소련보다 더 성공적으로 사회주의의 요소들을 구현한 나라였다. 말하자면 스웨덴은 미국도, 소련도 무시할 수 없는 보편주의의 측면에서 강대국들을 압도하고 이들 나라 시민의 존경을 받았다.
이러한 스웨덴 사례는 민주주의의 성숙이라는 기준에서 체제 모범국가로 인정받는 게 상당한 물질적 힘을 수반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20세기 냉전처럼 양대 진영이 나름 보편적인 가치를 내걸며 대립하는 상황에서는 두 진영 모두에 거리를 두면서도(말하자면 '제3의 길') 각 진영이 내세우는 보편적 가치를 존경스럽게 구현한 나라가 일정한 자율성의 시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강대국들도 이런 나라라면 쉽게 상대 진영의 하위 동맹국으로 넘어가지 않으리라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나라의 성취가 강대국 내부 다수 시민에게 호소력을 발휘한다면, 자국 내 안정을 위해서도 강대국들은 섣불리 손을 댈 수 없다.
이런 '지적-도덕적' 요소가 경제력, 군사력과 결합된다면, 가령 한반도 같은 조건에서도 장기간 비동맹 중립국 지위를 유지할 가능성을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스웨덴을 예로 들었다고 하여 스웨덴식 사회민주주의가 곧바로 한국 사회의 대안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름이야 뭐라 불리든 대한민국이 자유-평등-연대의 가치에서 모범국가가 되어야만 탈동맹 중립국화 과정을 밟아나갈 수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스웨덴보다 훨씬 더 곤혹스러운 지정학적 조건을 감안한다면, 우리의 성취는 어쩌면 스웨덴을 뛰어넘어야 할지도 모른다.
국내 개혁과 한반도 평화 실현은 둘이 아니다
결론은 국내 개혁과 한반도 평화 실현은 결코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로 나뉠 수 없는, 하나의 과정일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진실을 가장 조야한 방식으로 거역하는 것은 정부-여당이다.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에 대응한다면서, 제일 처음 내놓는 대안이라는 게 노동시간 연장이고 재벌 대기업 특혜 확대다.
반면 불매운동에 나선 대중들 사이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 진실을 대변하는 외침을 들을 수 있다. 그것은 "일본과는 달라야 한다"는 한 문장이다. 일본과는 달라야 한다. 대한민국은 일본과 달라져야 한다. 이제껏 산업문명 추격전에서 늘 일본의 뒤를 따랐던 한국이지만, 지금부터는 저런 일본과 전혀 다른 길을 가야 한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는 아직 모호하지만, 그래도 "달라져야 한다"는 이 각성이야말로 소중하다.
이미 나온 힌트는 역시 민주주의다. 자유-평등-연대의 가치를 지금의 일본과는 다르게 발전시켜가야 한다. 일제 식민 지배 피해자들에게 다른 답을 내놓을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여성과 소수자에게, 이주민과 난민에게 다른 답을 마련하는 사회여야 한다.
그래서 저 무시무시한 네 강대국 내부의 시민들에게 호소할 무엇이 있는 사회여야 한다. 자본주의 극복을 외치는 미국 시민과 민주주의 확대를 열망하는 중국, 러시아 시민, 탈핵 평화를 바라는 일본 시민에게 동지로 다가가는 사회여야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의 활로는 이 방향에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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