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파놉티콘 만들 '괴물 법안'이 다가온다

[삶은경제] 민생법안 위장한 데이터 경제 3법 국회통과 우려

한일 경제 전쟁의 불똥이 노동자들에게 튈 우려가 다분해지고 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확정된 첫 주말을 보내며 더불어민주당 원내 정책 담당 의원들이 모여 주 52시간 노동제 수정 법안을 추진한다는 소식과 300인 미만 사업장의 주 52시간 노동제 적용 시기를 1년 이상 늦추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이번 주 발의할 예정이라는 소식, 고소득 전문직을 52시간 노동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들이 전해졌다.

장맛비가 쏟아지자, 이때다 하며 폐수를 하천에 흘려보내는 악덕 기업주처럼,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경제 위기를 기회로 재벌, 대기업의 청부입법으로 손가락질을 받던 법안들을 득달같이 밀어붙이는 모습이다. 토론, 여론의 비난, 지지자들의 실망까지 모두 홍수처럼 쓸어버릴 일본의 경제 침략 앞에 누구보다 들뜬 자들이 여당 의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일 경제 전쟁 이슈의 수면 밑에서 이뤄지는 역주행이 놀랍다. 그중에서도 심각한 문제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부작용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민생법안으로 위장한, 이른바 '데이터 경제 3법'의 국회통과 우려가 아닐 수 없다.

1. 정보인권 실패 국가로 가자? 바통 넘겨받은 문 정부

21세기 인간존엄의 핵심가치라는 정보인권 보호의 관점에서 '개와 늑대의 시간(L’heure entre chien et loup, 프랑스 속담)'은 지난해 끝났다. 박근혜 정권이 '개인정보 비식별화 가이드라인'이란 것을 만들고 시민의 정보주권을 마음껏 유린할 때만 해도 시민 사회와 노동계는 개와 늑대를 구별하지 못했다. 그저 촛불로 세울 다음 정부는 '빅데이터 시대, 더욱 그 의미가 각별해진 개인정보보호강화'에 책임이 있다 믿었고, 광장에서 확인된 시대정신이 위의 인용부호 속 글자 그대로 문재인 정부의 대국민 약속으로 확인되자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2018년 11월 '데이터 경제 3법' 개정안이란 이름이 붙어 개인정보보호 3법 개정안이 정부안으로 민주당 소속 의원 3명(인재근, 김병욱, 노웅래)을 통해 발의된다. 놀라운 것은 법안이 그동안 미흡하게나마 시민의 정보인권을 보호해 온 핵심 장치들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기업 이윤을 극대화(물론, '일자리' 드립은 여기서도 빠지지 않았다)하는데 몰입했음이 확인됐다는 점이다. 새 정부 정보인권 보호활동을 기다리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시민 사회는 곧바로 기자회견에 나섰다(https://act.jinbo.net/wp/40024/).

이렇게 개와 늑대의 시간은 끝나고 우리 앞에 선 권력의 실체를 확인했다. 문재인 정부는 정보주권을 지키는 충견이 아닌, 박근혜 정권의 바통을 넘겨받아 정보주권을 유린하려는 늑대의 면모를 드러냈다. 정보인권 파괴에 돌직구로 덤벼들다 저항에 직면한 전 정부와 달리 문재인 정부는 집권초기 4차 산업혁명위원회(헤커톤 이벤트)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시늉이라도 한 정도가 차이랄까? 최종적으로 나온 개정안을 보면, 양보할 수 없는 쟁점에서 시민 사회의 문제제기는 무시됐고, 기업의 입장은 대폭 수용됐다.

2. 정보 보호는 족쇄, 데이터 경제가 좋은 것이여~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데이터 경제 활성화에 반대하는 분, 손을 번쩍 들어주시기 바란다. 당연히 아무도 없다. 세계 거의 모든 도시와 정부가 최소한 마음만이라도 4차 산업혁명으로 총진군하는 이때, 데이터 경제 활성화 법안이라니! 모두가 공감할 작명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정보 비식별화 가이드라인'이라는 난감한 작명으로 우호적 여론형성 자체를 포기했던 이전 정부와 확실히 차별화된 지점이다.

그런데 과연 작명으로 끝날 문제일까? 정보인권의 핵심가치인 우리 국민의 개인정보보호와 관련한 가장 중요한 법률은 행정안전부가 소관부처인 개인정보보호법, 과기정통부가 소관부처인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금융위원회가 소관부처인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등 3법이다(더러는 이 세 가지 법률을 한꺼번에 '개,망,신,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쨌든, 세 가지 법률의 이름에 모두 '개인정보의 보호'가 들어있음은 쉽게 확인된다. 당연히 법을 집행할 정부 책임도 최소한 절반은 프라이버시 보호에 있음이 법 이름에 확인된 셈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 3법의 정체성이 '데이터경제 활성화'에 있다고 규정한 뒤, 개인정보보호 3법이라고 불러도 좋을 법의 개정안을 '데이터 경제 3법 개정안'이라고 부른다. 민주당은 이것을 다시 민생법안이라는 프레임으로 포장해 대중에 선전한다(https://bit.ly/2yEzS5L). 법의 이름에 각인된 정부의 정보인권 보호책임이 감쪽같이 가려져 미디어를 타고 대중에게 전파됐다. 일본의 경제침략에 맞서, 정보인권의 족쇄라도 풀어야 데이터 경제가 달릴 것이라는 단순무식한 헛소리가 아닐 수 없다.

3. 대통령님, 내 개인정보가 왜 원유가 되어야 하나요?

데이터 경제 활성화 법안에 담긴 정부의 속내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가 지난 4월 국회 4차산업혁명특위 전체회의에서 나온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발언이다. 이날 유 장관은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없게 발목을 잡는 게 개인정보보호법'이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서 '보호'라는 이름을 빼는 문제를 행정안전부와 협의하겠다고 발언(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망언)을 한다. 주무부처 장관이 정보인권보호의 책임을 발목잡기로 묘사한 것이다.

유 장관의 이날 발언은 이미 1년 전, 판교 스타트업캠퍼스에서 열린 '데이터 경제 활성화 규제혁신 현장방문'에서 행한 문 대통령 발언의 연장선에 있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산업화 시대 석유가 성장 기반이었던 것처럼 4차 산업혁명 시대 미래 산업의 원유는 바로 데이터"라고 말했다. 여기서 미래 산업 원유인 데이터는 무엇일가? 대통령이 말한 데이터는, 와이파이를 못 잡아 울며 겨자 먹기로 쓰는 값비싼 데이터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모든 인간이 1년 365일, 24시간 풀타임으로 생산할 수밖에 없는 온갖 형태의 개인정보를 말한다. 병원, 금융, 교육, 교통, 숙박, 오락, 여행, 유흥 등 온갖 형태의 온·오프라인 거점에서 모바일 또는 신용카드를 이용해 상호작용으로 만드는 개인정보다.

스마트폰에 들어있는 위성항법장치(GPS)는 24시간 오차범위 10미터 이내로 내 위치를 추적해 위치정보를 생산한다. 어디 있는지 알 수도 없는 무수히 많은 렌즈들이 나를 촬영해 데이터를 만든다. 잠든 사이 스마트워치가 당신의 심박정보를 측정하고, 당신이 일어난 시간을 기록해 구름너머 어딘가에 있는 클라우드에 저장하는 바로 그 데이터가 대통령이 말한 원유다. 정유사가 채굴해서 가공 후 팔면 끝인 원유와 달리 대통령이 말한 개인정보는 헌법 17조, 프라이버시 침해금지 보호를 받는다. 기업인이 아닌 대통령 입에서 개인정보 데이터가 원유라는 말이 나왔을 때 우리는 충격과 공포를 느껴야 마땅했다.

4. 노골적인 정보주권 파괴 의도 : 신용정보법개정안
기업으로 하여금 국민 개인정보의 무한 활용과 판매를 가능하게 만들어 4차 산업혁명 선도국가가 아니라, 자칫 정보인권 실패 국가의 비전을 보여줄 법안이 바로 '데이터 경제 활성화 3법 개정안'이다. 전국사무금융노조는 이 3가지 법률개정안 세트 가운데 금융위원회가 주무부처인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하 신용정보법)에 주목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3가지 법률개정안 중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2개 개정안은 함께 처리 되어야 실제 운용이 가능해지는 구조인데 반해,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나머지 두 개정안과 독립돼 있다는 점이다. 이유는 개인정보법 개정안이 개인정보보호 컨트롤타워로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역할, 책임이 없어 유명무실한 기구라는 평가)를 설정했으나, 개인정보의 핵심정보인 신용정보는 위원회 소관업무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트린 최대 정보유출사고들이 모두 금융사의 신용정보유출사고임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놀라운 입법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나머지 두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혼자 정무위를 거쳐 본회의를 통과하면 모든 금융사가 당장 적용할 수 있게 된다. 금융회사들이 올해부터 시행 중인 금융혁신지원특별법에 근거한 금융규제 샌드박스제도(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면 2년간 개인정보활용 등 각종 규제를 면제해준다) 덕분에 일반 국민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개인정보의 상업적 활용에 재미(?)를 보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법안 시행을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해 그리 만든 듯하다. 아무튼 지난 3월 국회에서 신용정보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다룬 토론회(http://ccej.or.kr/51559)가 열렸을 때, 이날 드러난 법안의 실제 모습은 상당수 참가자들을 분노케 했다.

5. 내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 마음대로 수집해서 신용평가

금융당국이 모든 규제(라 쓰고 개인정보보호라 읽는다)를 개혁해서 이루겠다는 핀테크 혁신. 그런데 여기서 잠깐, 핀테크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 개인정보(데이터)를 최대한 활용해 은행, 보험, 증권 상품을 새롭게 구성해서 소비자에 팔겠다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신한은행이 내놓은 '페이스 페이'란 서비스를 소개한다(https://bit.ly/2ZxKdfD). 스마트폰이 없어도, 카드가 없어도, 얼굴만 들고(?)다니면 오프라인 매장에서 결제할 수 있다. 내 얼굴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얻는 결제 서비스다. 괜찮은 거래인가?

그런데, 정보인권 실패 국가의 스토리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가장 먼저 보이스 피싱. 지난 해 신고 된 피해금액만 5000억 원에 육박했고, 미신고 피해액을 감안하면 이미 1조 원대의 범죄시장이 됐다는 추측이 나도는 이 금융범죄는 그동안 개인정보유출사고에 철저하게 솜방망이 처벌로 대처해온 우리 정부의 자업자득이 아닐 수 없다.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노인이 범죄표적이란 선입견과 달리 20대 이상 50대까지 개인정보의 디지털 전환에 가장 적극적인 세대가 피해자의 80%에 육박한다.

개인정보를 많이 활용하는 세대일수록 범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은 당연히 커진다. 특히 지난해만 30% 이상 피해 규모가 늘어난 상황에서 정부의 데이터 경제 활성화 법안이 통과될 경우, 금융소비자의 얼굴 데이터 정보를 비롯해 모든 활동이 데이터화되고 거래되는 상황에서 진화하게 될 범죄의 발전상은 상상조차 힘들다.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유통되는 개인정보를 대단히 엄격하게 관리하고 정보유출로 정보주체에게 피해를 입힌 금융회사나 신용정보회사 등 관련기관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 처벌할 수 있어야 하지만, 정부의 데이터 경제 활성화 3법에는 관련 규정이 전무하다.

신용정보법 개정안의 여러 독소조항 중 가장 심각한 상태로 꼽히는 것은 '공개된 개인정보'까지 동의 없이 수집, 제공하도록 한 조항이다. 내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이나 본 기고문처럼 제3자를 통해 공개한 정보를 (상대적으로 소자본 설립이 가능한) 개인신용평가회사, 본인신용정보관리회사가 마음대로 수집해 신용평가에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이제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내가 쓰는 이 글이 내 신용등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신중하게 고려해야하는 시대, 진정한 정보인권 실패 국가가 열리는 것이다. 도대체 정보인권 실패 국가 말고 이 법이 그리는 대한민국이 무엇이란 말인가?

▲ 정부발 '데이터 경제 활성화 3법 개정안'은 한국을 파놉티콘 사회로 만들 수 있다. ⓒflickr.com

6. 파놉티콘에 살고 싶지 않다면, 우리가 직접 설계하자
우리는 어떤 빅데이터 사회를 꿈꾸는가? 우리는 기업과 자본이 미디어에 뿌려대는 이미지와 정보의 무대 위에서만 빅데이터 사회를 생각해 온 것 아닐까? 저들이 보여주는 찬란한 이상의 대가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따져보았던가? 정말로 노동자가 원하고 필요한 데이터 인프라스트럭처가 무엇인지, 그것을 이용해 어떤 가치를 실현하고 싶은지 함께 이야기해 본 적이 있었던가? 만약 그렇다면, 모든 재료가 나의 데이터, 나의 소유로만 지어질 수 있는 건축물을, 내 허락도 없이 정부와 기업이 자신들 마음대로 설계하고 짓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렇게라도 건축물이 잘 지어지고, 우리가 그 곳에서 편하게 살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닐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지어진 건축물은 우리 바람과 달리 스스로 주인이라 착각하고 살아온 죄수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감시하는 건축물이 될 공산이 크다. 지금 한국 사회는 4차 산업혁명, 빅데이터 시대, 데이터 경제 같은 깃발을 휘두르며 그리로 달려가고 있다. 일본의 경제도발이 온 국민의 위기감을 최고조로 올린 이때 민생법안으로 위장한 정부의 데이터 경제 활성화 3법이 국회를 통과하게 된다면, 재벌, 대기업은 조만간 21세기형 파놉티콘(panopticon)의 감시자가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당장 저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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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현

풀뿌리신문 기자로 출발했지만 정의당에서 '노유진의 정치카페'를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PD라는 명함을 얻었다. 짧은 국회보좌관 활동을 거친 뒤, 지금은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에서 일한다. 잘 먹고, 잘 쉬고, 잘 자는 일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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