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형 도시안전 시설에서 생긴 후진국형 안전사고

[안종주의 안전사회] 목동 배수시설 사고는 총체적 '이해 불가'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사고 관련자들은 자신의 잘못을 전혀 모른다. 그들은 평소 해온 대로 했기 때문이다. 노동자와 안전 관리자 교육 부재, 안전장치 미비, 사고 시 긴급 대응 수단 전무, 소통 전략 제로, 관련 기관 간 정보 공유 무시, 대충 하기 등이 평소에 사고 관련자들이 보여온 행태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했더라면 3명의 억울한 죽음은 막을 수 있었다. 목동 빗물 배수시설 공사장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바로 이랬다.

이번 사고도 예고된 인재, 전형적 인재, 안일한 대응 등 여러 쓴소리의 비판을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선언한 산재 사고 사망 절반으로 줄이기 목표 달성은커녕 너무나 후진적인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광주 클럽 사망사고를 비롯해 왜 황당한 사고가 끊이질 않는지 근본부터 살펴야 할 때이다.

우리 사회의 사고, 특히 산재 사고의 특징은 대기업,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다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사고를 낸 기업은 현대건설이다. 또 포스코와 같은 세계적 기업에서도 계속되는 지적과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올 들어 사망 사고가 잇달아 생기고 있다. 한 번 산재 사망 사고가 난 곳에서는 더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상식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다.

지난달 31일 오전 8시 24분께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 배수시설 공사장에서 작업자들이 일상 점검 업무를 위해 지하 40m 깊이의 수로에 들어갔다가 폭우로 갑자기 물이 불어나자 수문이 자동으로 개방되었다. 이 때문에 약 6만 톤의 물이 배수시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와 비상 상황 시 탈출할 안전장치도 없고, 아무런 대피 교육도 받지 못한 무방비 상태의 외국인 노동자 1명과 현대건설 노동자, 협력업체 노동자 등 3명이 숨졌다.

사고 뒤 그 원인을 파악한 결과 너무나 한심스런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 사고가 생긴 것으로 드러났다. 예고된 인재, 전형적 인재, 안일한 대응과 같은 아픈 말보다 더 심한 비판과 날선 비난을 해도 현대건설이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폭우 예보 상황에도 강행해야 할 만큼 그날 작업은 시급했는가?

계속해서 수도권에 게릴라 폭우가 기습적으로 쏟아지던 때 배수시설 점검이 이루어졌다. 사고가 난 그날도 비가 예보돼 있었다. 땅 속 깊숙이 내려가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비가 예보된 날, 특히 요즘처럼 언제 얼마만한 양의 비가 올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긴급을 요하는 일도 아닌데 작업을 강행한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숨진 작업자들이 그날 했던 것은 터널 내 전선 수거 방법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할 일이 결코 아니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폭우가 내리면 수문이 개방돼 노동자가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작업자들에게 사전에 교육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업 중 양천구청한테서 수문개방 통보를 받은 현대건설은 작업자 2명에게 직접 연락할 길이 없자 직원 1명을 앞서 들어간 작업자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내려 보냈다. 그 또한 작업자와 함께 숨지고 말았다.

작업자들에게 비상 상황 전파가 안 된 이유에 대해 현대건설 쪽은 기술적으로 시공 상황에서는 상부에서 하부로 전달 가능한 연락망이 없다고 밝혔다. 작업자들이 터널로 들어갈 당시 호우주의보가 없었다는 변명도 했다, 정말 한심한 변명이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위에서 버튼을 누르면 아래쪽 작업장에서 벨이 크게 울려 곧바로 대피할 수 있도록 전선줄로 연결한 간단한 알림장치만 설치했더라도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터이다. 왜 이런 간단한 안전장치를 생각하지 못한 걸까? 한마디로 설마 사고가 나겠느냐는 방심이 빚은 비극이다.

배수시설 아래쪽에는 비상시 대피할 수 있는 출입구가 있었다. 한데 외려 현대건설 쪽이 이 출입구를 막아버렸다. 작업자들이 알아서 지상으로 안전하게 대피했을 거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감전 등 2차 사고를 막으려고 자체 절차대로 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혹시 있을지 모를 2차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실제 대피했는지를 파악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무엇이 우선해야 하는지를 망각한 판단이었다. 자기변명이었다. 작업자들의 마지막 희망을 이렇게 회사가 무참히 짓밟았다.

선진형 도시안전 시설에서 생긴 후진국형 안전사고

사고 뒤 전문가들은 시스템을 통제·운영하는 방식과 태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비가 많이 오더라도 도시가 물에 잠기는 것을 막기 위한 선진적인 시설에서 발생한 후진국형 인재라는 것이다.

현대건설은 "양천구청의 연락을 받고 수문이 열리는 것을 시스템을 통해 확인했지만 수문을 닫을 권한이 없고 작동법도 알지 못했다"고 했다. 이에 양천구청은 "조작 권한이 없다는 것은 와전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내 탓이요"라며 가슴을 마구 쳐도 모자랄 판에 이들이 책임 소재를 놓고 서로 티격태격하고 있는 것이다. 꼴불견 중 꼴불견이다.

지난 2013년에도 이번과 유사한 사고가 있었다. 2013년 7월 15일 일어난 서울 동작구 노량진 수몰 사고이다. 노량진 배수지 지하 상수도관 부설작업 현장에 한강 수위 상승으로 갑작스레 쏟아져 들어온 강물에 휩쓸려 작업하던 노동자 7명이 모두 숨졌다. 그래서 이번 사고는 당시 사고의 재연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시 공사 관계자들은 터널 안에서 노동자들이 작업 중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작업 중지 지시를 내리지 않고 작업을 강행했다. 이런 안일한 대응이 중대 재해를 일으킨 것이다. 사고 시기(7월), 배수지, 폭우로 인한 수위 상승, 공사 강행 등이 마치 도플갱어를 보는 듯하다.

과거 사고에서 교훈을 진정으로 얻지 못하는 사회는 비슷한 사고를 또 겪게 마련이다. 이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통하는 진리다. 비단 이번 사고뿐만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숱한 사고를 무한반복으로 겪었다. 하지만 생명과 안전을 중시하는 선진 사회는 두 번 다시 유사사고를 겪지 않거나 그 빈도와 규모를 크게 낮춘다. 이번 사고는 과연 우리 사회가 선진 사회를 지향할만한 태도와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그 밑바닥에서부터 다시금 성찰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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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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