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북미·남북관계 문 닫은 이유는

[정욱식 칼럼] 총체적 난국의 한반도,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한반도 정세가 짙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6월 30일 판문점 남북미 정상 회동 이후 오히려 정세가 더 꼬이고 있는 국면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한 북미실무회담은 기약 없이 표류하고 있다. 북한 리용호 외무상이 8월 2일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담에 불참할 것으로 알려져 북미고위급 접촉도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북한은 당장 대화에 나서기보다는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근에 신형 잠수함을 공개한 데 이어 7월 25일에는 두 발의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또한 8월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을 문제 삼으면서 문재인 정부가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지원하려던 쌀 5만 톤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도 WFP 관계자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북한의 세 가지 불만

북한의 이러한 행태에는 세 가지 불만이 맞물린 것 같다. 첫째는 북한이 집중적으로 문제삼아온 한미연합훈련이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판문점 회동에서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약속했다고 주장하면서 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북미실무회담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둘째는 한국의 F-35 도입을 비롯한 전력증강에 대한 반발이다. 북한은 7월 11일 외무성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의 담화를 통해 남한의 F-35 도입을 강력히 비난하면서 "우리 역시 불가불 남조선에 증강되는 살인 병기들을 초토화할 특별병기 개발과 시험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경고했다.

셋째는 변치 않는 미국의 태도에 대한 불만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판문점 회동 이후에도 이전의 강경하고 경직된 입장을 거의 그대로 고수해왔다. 비핵화의 대상에는 핵뿐만 아니라 화학무기와 생물무기, 그리고 탄도미사일 폐기도 포함되어야 한다며 이들 무기의 프로그램의 동결을 "과정의 시작"으로 요구해온 것이다. 이처럼 미국은 비핵화의 허들은 크게 높이면서 북한이 가장 절실히 원하고 있는 경제제재 해결에 대해서는 요지부동의 모습을 보여왔다. 아마도 북한은 이점에 대해 가장 큰 불만을 품고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7월 중순 필자가 만난 중국의 한 전문가는 주목할 만한 소식을 전해줬다. 중국 정부의 자문위원이기도 한 이 전문가는 "김 위원장이 시 주석을 만났을 때 제재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면 제재 문제 해결을 설득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 주석이 G20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이러한 입장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미국의 대북 제재에 대한 태도는 아직까지 달라진 것이 없다.

쉽지 않은 돌파구 찾기, 그러나

이미 예고된 8월 한미연합훈련을 취소하는 것도, 40대를 도입하기로 한 F-35 사업을 중단하는 것도, 미국의 대북정책 유연화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이에 따라 교착상태가 장기화되거나 추가적인 상황 악화마저 우려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약속했다면 이를 지키는 게 맞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규모를 축소하면서 '로우키'를 유지한다고 해도 중단하겠다고 약속한 연합훈련 실시 자체가 신뢰구축 및 대화 재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은 조속히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모든 연합훈련을 중단하기로 한다"는 점에 합의하고 선언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식 군비증강도 성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평화는 핵무기가 아니라 대화와 신뢰로 지켜진다'는 말과 '우리의 평화는 굳건한 한미동맹과 군사력 증강으로 지켜진다'는 접근법으로는 남북관계의 진정한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필자는 지속적으로 국방비 동결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국방비를 동결하면 "단계적 군축"에 합의한 남북한의 합의 정신을 이행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할 수 있고, 또한 문재인 대통령이 역설해온 '국민을 위한 평화'를 위해 절감한 예산을 우리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 사용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국방비 증액이 상식처럼 굳어져버렸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다. 앞으로 3년간 국방비를 동결하더라도 군비증강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올해 국방비 가운데 방위력개선비가 약 15조 4000억 원이다. 이를 3년간 동결하더라도 총 46조 2000억 원의 방위력개선비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 사실상 무장해제에 가까운 요구를 해온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를 보면 비핵화를 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비핵화를 하는 척하고 다른 잇속을 챙기자는 것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이다. 이게 오해이고 미국이 진정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이룰 진정성이 있다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도 '공미증'(恐美症)과 '대미 의존증'에서 벗어나 한국식 해법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최근 북한의 언행이 유감스러운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북한의 행태는 상당 부분 예견된 것들이다. 북한을 비판하는 것 못지않게 한미 양국이 할 바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성찰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