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에서 찾은 '다정한 구원'

[최재천의 책갈피] <다정한 구원>

"죽음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이다." 포르투갈어권의 유일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문장이다. 여기에 대한 작가의 해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실감뿐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랑을 믿지 못한다면, 혹은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죽음 앞에 백전백패다. 사랑은 우리를 가장 강하게 만들어주고 우리의 인생을 의미 있게 해주는 유일한 가치이다."

지난 늦여름, 작가는 아빠를 엄마 곁으로 보내드리고 상실의 슬픔과 사후에 감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문제들로 지쳐갔다. 때로는 인간에 대한 절망과 환멸의 감정이 작가를 압도했다. 그즈음, 작가는 딸을 보면서 리스본 생각을 떠올렸다. 지금 딸의 나이, 그러니까 정확히 열 살 때 작가는 외교관으로 일하던 아빠를 따라 리스본에서 1년간 살았다. 다른 도시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리스본만의 따스한 햇살과 맑은 하늘이 있었다. 부모님과 작가, 이렇게 세 식구끼리만 지내다 보니 그들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했던 기쁨도 있었다. 리스본에서의 부모님은 작가가 살아생전에 본 중, 가장 즐겁고 온화하고 아름다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리스본에서 보낸 그 1년만큼 아무런 유보 없이 평온하고 행복했던 적이 내 인생에 있었을까?" 그래서 문득 떠오른, 그 시절 작가가 보고 만지고 느꼈던 경험들을 딸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었다. 둘이서 여행길에 올랐다. 그 시절 '아빠, 엄마의 딸'이 이제 '딸의 엄마'가 되어 리스본의 햇살과 바다, 그 행복과 사랑을 나누러.

작가는 리스본에서 엄마, 아빠를 만난다. 어린이 임경선을 만난다. 주제 사라마구를 만난다. 페루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를 만난다. 페소아가 그랬다. "포도주나 한 잔 더 주게,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니." (1935.11.19. <병보다 지독한 병이 있다>)

여행은 때론 꿈과 비슷하기에, 깨어나야 한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작가는 딸을 향해 사랑 노래를 부른다. "엄마 아빠는 그 시절 행복했었구나./서투르게나마 나는 사랑받았었구나./그리고, 나도 앞으로 내 아이를 힘껏 사랑해주어야겠다./이 이상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이미 이것으로 너무나 충분한 것을./그러니까 윤서야./이제는 너의 시대야./인생의 모든 눈부신 것들을 다 너에게 넘길게./" '다정한 이웃'의 <다정한 구원>.

▲ <다정한 구원>(임경선 지음) ⓒ미디어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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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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