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시대 부동산 시장, 그 시대 분배체계였다"

북 토크 <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궤적>

2010년 무상급식 논쟁을 계기로 전면에 등장한 복지국가 키워드는 2012년 대선국면을 거치며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았다. 이대로 한국은 복지국가가 될까.

스웨덴 사민당이 '공적 지출을 통한 수요 창출 정책'을 내걸고 집권한 때는 1932년이고 복지체제가 지금과 같은 꼴로 정비된 것은 1960년대의 일이다. 그 사이 사민당이 집권을 지속했다.

반면, 한국사회의 정치 변화는 훨씬 유동적이다. 한국사회가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 꽤 긴 시간이 걸릴 것이며 부침 또한 있으리라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복지국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지금은 다가올 또 다른 사회적 논쟁에 대비한 공부를 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한국사회의 복지체제는 어떻게 형성되어왔는가"

오래 되었지만, 아무도 천착하지 않았던 문제의식을 다루고 있는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쓴 <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궤적>(사회평론 아카데미)(이하 <기원과 궤적>)은 그러한 공부를 할 수 있게끔 한다.


<기원과 궤적>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눠 한국사회의 복지체제 형성을 설명한다. 한국사회는 1876년 개항을 전후해 자본주의 세계체제로 편입됐다. 이 시기 전통적 분배체계가 해체되고 자본주의적 분배체계가 성립되기 시작했다. 1945년부터 1970년대까지는 미국의 원조에 의존했던 원조복지체제가 해체되고 경제개발과 그에 따른 일자리 증가를 통해 빈곤과 불평등을 완화하는 개발국가 복지체제가 성립된 시기이다. 198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위기와 함께 개발국가 복지체제는 해체되었지만 대안적 복지체제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위와 같은 책의 주요 내용에 따라 지난 21일 참여연대가 주최한 <기원과 궤적> 북 토크를 정리했다. 이날 북토크 사회는 정태석 참여사회연구소 부소장이 맡았다. 패널로는 저자인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이원재 LAB2050 대표가 참석했다.

▲ 왼쪽부터 사회를 맡은 정태석 참여사회연구소 부소장과 저자인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프레시안(최용락)

"박정희 시대의 부동산 시장은 그 시대의 분배체계"

<기원과 궤적>은 박정희 시대에 경제성장의 과실 분배가 무엇보다 경제개발에 따른 일자리 증가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본다. 그리고 부동산 시장 역시 그 시대의 주효한 분배체계였다.

이원재 LAB2050 대표는 "국가가 가진 게 없고, 기업도 가진 게 없을 때 시장에서 (부동산 시장이라는) 분배 체계가 생겨서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토대가 됐다는 분석을 읽고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일자리 증가에도 불구하고 저임금 저복지에 시달리던 당시 사람들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분배받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가파르게 오르는 부동산을 사는 길이었다는 것이다.

윤홍식 교수는 "박정희 시대가 밉건 곱건 좋고 나쁨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그 시대의 분배체계를 설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봤다"며 "'기능적 등가물'이라는 관점에서 박정희 시대의 분배체계를 분석하다보니 그런 해석이 나왔다"고 답했다.

'기능적 등가물'은 한 사회가 지속되기 위해서 필요한 기능이 채워지는 방식은 다양하다는 뜻을 담고 있는 개념이다. 이 경우 박정희 시대에 분배 기능을 하는 복지체제가 없었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복지체제를 대신하여 분배 기능의 일정 부분을 담당했다는 이야기이다.

3당 합당이 없었다면 우리는 다른 길을 갈 수 있었을까

<기원과 궤적>은 우리 시대를 개발국가의 복지체제는 해체되었지만 대안적 복지체제는 아직 형성되지 않은 시기로 본다. 윤 교수가 보기에 대안적 복지체제의 형성을 가로막은 정치적 사건은 3당 합당이다.

이 대표는 "87년 이후 노동자들의 임금과 고용을 늘리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도 있었는데 3당 합당을 통해 보수·지역 연합이 다수파가 되면서 (한국이) 노동을 배제하는 체제를 선택했다고 분석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한국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1987년~1989년으로 본다"며 "87년 민주화가 권위주의 세력을 배제한 민주화였다면 3당 합당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우리 자본주의의 길은 달랐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그 근거로 "1990년을 중심에 놓으면 그전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산업 연관관계가 계속 높아졌다"는 사실을 제시하며 "그런데 3당 합당 이후 이(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성과 분배, 자본과 노동 간 성과 분배)를 깨고도 성장할 수 있는 자본의 정치체제가 생겼다"고 이야기했다.

3당 합당을 계기로 등장한 자본의 정치체제는 임금의 증가와 증세가 필요한 복지의 증가를 바라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 시대의 복지체제는 형성되지 못했다.

▲ 참여연대가 주최한 <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궤적> 북 토크가 열리고 있다. ⓒ프레시안(최용락)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환경에 맞는 분배체계는?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복지체제는 어떤 관점에서 만들어가야 할까.

이 대표는 '환곡이라는 분배체계가 상품화폐 발달이라는 시대적 상황에 조응하지 못한 것이 조선에 위기가 온 요인의 하나'였다는 분석에 대해 언급하며 "지금 공장에서 노동자를 고용하고 충분한 임금을 지급하는 시스템이 바뀌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용을 통해 분배하는 복지 체제를 유지하면 위기가 오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윤 교수는 "생산 비용과 거래 비용의 외부화가 디지털과 결합하며 가속화되고 있다"며 "수동적일지 모르나 자본주의 600년의 역사에서 이윤생산방식이 변화했는데 역전시킨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변화하고 있다면 역전시키기보다는 그 성과를 어떻게 분배할지 이야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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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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