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다방면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가운데 하나는 트럼프가 약속한 한미군사훈련 중단의 실천이다. 한미 양국은 트럼프의 '중단' 발표 이후에도 군사훈련을 축소해서 진행해왔고, 북한은 이를 "근본 문제"의 하나로 지목하면서 중단을 요구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한미 양국은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 모든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할 필요가 있다. 이는 남북·북미 대화 재개의 유력한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역적인' 제재 완화의 필요성
조건부 한미연합훈련 중단이 대화 분위기 조성에 기여한다면, '영변+알파(제2의 우라늄 농축 의혹 시설에 대한 현장 방문과 핵실험 및 장거리 로켓 발사 중지 문서 확약)와 대북 제재 완화'를 둘러싼 북미간의 이견 해소와 최종 상태(end state)에 대한 당사자들의 합의는 대화의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이 둘은 상호보완적이다. 비핵화의 약 50%에 해당하는 '영변+알파와 제재 완화'에 합의·이행하면 최종 상태에 다가설 수 있고, 또한 최종 상태에 가급적 빨리 합의해야 첫 단계 이행조치의 합의와 이행에 유연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제재 완화를 둘러싼 북미간의 심각한 이견 해소에 있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에 따른 제재 완화는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북한의 의도에 대한 불신도 만만치 않다. 북한이 대폭적인 제재 완화를 받아내면서 영변만 폐기하고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와 핵물질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이 핵무기와 핵물질 폐기와 관련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입장을 밝힌 바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의구심에 한몫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후술할 최종 상태에 대한 합의이고, 또 하나는 '가역적인' 제재 완화이다. 이는 '스냅 백(snap back)'을 도입하자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위반하면, 완화하거나 해제했던 대북 제재를 원상복구하겠다는 것을 합의문에 명시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벌칙 조항은 제재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북한이 '하노이 노딜' 이후 '스냅 백'을 언급한 바 있다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또한 영변 핵시설 폐기는 불가역적이 성격이 짙은 반면에 스냅 백은 언제든 되돌릴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에게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 가운데 하나이다.
최종 상태를 위하여
비핵화의 최종 상태에 대한 합의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 체결을 '한국식 해법'의 요체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는 남북한이 "비핵지대 내" 당사자들로 조약을 체결하고,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공식적인 핵보유국들이 "비핵지대 외" 당사자들로 이 조약에 참여하는 구도를 일컫는다. 이러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이게 가장 완벽에 가까운 북핵 문제 해결 방안이라는 점이다. 북한이 과거와 현재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하더라도 미래의 잠재력까지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한에는 미래에도 기술, 자원, 인력이 남아있게 될 것이 때문이다. 비핵지대 조약 체결은 북한의 이러한 잠재력이 핵무기 개발로 이어지는 것을 봉쇄하는 데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조약이 체결되면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뿐만 아니라 남북한 핵검증 체제 구성에 따라 한국의 검증도 받아야 한다. 또한 북한의 비핵화 약속에 국제법적 구속력도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곧 북한의 조약 위반 시 더욱 강력한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핵 역사상 이러한 전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전임 정부 때보다 강력한 합의를 원하는 트럼프 행정부에게도 분명 매력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비핵지대 조약 체결이 미국의 대북 핵위협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핵무기와 그 투발수단을 완전히 없애지 않는 한, 북한이 요구해온 "미국 핵위협의 근원적인 해소"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미국의 완전한 핵폐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비핵지대 조약이 필요하다. 이 조약을 체결하면 미국의 대북 핵 불사용 및 불위협 약속에는 국제법적 구속력이 부여되고, 미국이 한반도에 핵무기 및 그 투발수단을 배치, 전개, 경유할 수도 없게 된다. 이는 곧 평화협정 체결시 가장 뜨거운 감자라고 할 수 있는 주한미군 문제 해결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남북미중이 '전략 자산 없는 주한미군'이라는 상호 만족할 수 있는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여지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는 한국의 안전보장 측면에서도 큰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 이후에도 중국과 러시아의 핵위협에 대비해 미국의 핵우산은 계속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 이후에도 핵우산이 존재한다는 것은 비핵화 달성에 커다란 장애물이 될 뿐만 아니라 "완전한 비핵화"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을 상대로 핵위협을 가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도 과도한 위협 인식이다.
한반도 비핵지대는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일말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 비핵지대 창설은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핵보유국들의 남북한에 대한 소극적 안전보장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로는 동북아 다자 안보의 초석을 놓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이 체결되면 일본 역시 비핵지대 조약 참여에 강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3+3', 즉 남북한과 일본이 '지대 내' 국가로, 미국, 중국, 러시아가 '지대 밖' 국가로 동북아 비핵지대 창설의 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러시아가 중거리핵전력폐기(INF) 조약 파기를 기정사실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접근은 대단히 중요하다. 미국이 중단거리 지대지 미사일을 만들면 한국과 일본은 유력한 배치 후보지가 될 수밖에 없는데, 한반도, 더 나아가 동북아 비핵지대 창설은 이러한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 체결을 비핵화의 최종 상태(end state)로 삼으면서 북한과 미국을 설득하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우선 북한에게는 단계적 해법에 집착하지 말고 포괄적이고 과감한 해법도 모색해야 한다고 요구해야 한다. 핵심은 북한이 마지막 단계로 상정해온 핵무기 및 핵물질 폐기 방법과 시한을 이에 걸맞은 상응조치와 더불어 최대한 빨리 합의하는 것이다.
가령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핵물질을 러시아나 중국과 같은 제3국으로 이전하고, 이전이 완료되는 것과 동시에 남북미중 평화협정 체결, 북미간의 대사급 관계 수립, 대북 제재의 완전한 해제 등을 이행하는 것에 합의하는 것을 추진해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을 상대로는 '선택과 집중형 FFVD'를 제안해야 한다. 비핵화 자체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생화학무기 및 탄도미사일 폐기까지 포괄하는 '빅딜'은 불가하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다고 북한의 탄도미사일 및 생화학무기 문제를 외면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들 문제는 "단계적 군축"에 합의한 남북한의 판문점 선언과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평화체제 완성 단계에서 다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은 생물무기금지협약(BWC)에는 가입한 상태라는 점에서 이 조약의 준수를 요구할 수 있다. 또한 평화협정 체결시 북한이 화학무기금지협약(CWC)에 가입하겠다는 공약을 명시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런 상상을 해본다. 훗날 역사책이 이렇게 기록되길 기원하면서 말이다.
"2020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미중 정상들이 모여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식을 가졌다. 네 정상은 곧바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해 푸틴 대통령의 영접을 받으며 북한의 마지막 핵무기를 실고 나온 러시아의 특별열차를 맞이했다. 같은 시각 유엔 안보리 이사회에선 대북 제재를 완전히 해제하기로 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관계가 정상화되었다고 선언했고, 이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은 이렇게 화답했다. '70년 동안의 조미간의 적대 관계를 평화 관계로 전환시킨 국가 핵무력의 역사적 소임은 이것으로 끝났다. 이제 국가 핵무력의 완전한 폐기를 엄숙히 선포한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핵무기와 핵위협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기 위해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 체결을 제안했고 다른 정상들도 이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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