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형 'FFVD' 만들어 트럼프와 담판 짓자

[정욱식 칼럼] 한미정상회담에 바란다 (상)

문재인 대통령이 4월 11일에 이어 한 달여 만에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다시 만난다. 트럼프가 6월 말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방한하기로 한 것이다.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대단히 중요하다. 길게는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짧게는 하노이 노딜 이후 지속되어온 대북 협상의 교착상태를 타개할 방안을 반드시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교하면서도 창의적인 '한국식 해법'을 만들어 미국과 북한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선택과 집중형 FFVD'


미국의 공식적인 해법은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되는 비핵화(FFVD)이다. 백악관도 한미정상회담을 발표하면서 FFVD가 핵심 의제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식 FFVD는 과유불급이다. 폐기 대상으로 핵뿐만 아니라 모든 탄도미사일과 생화학무기, 그리고 이중용도 프로그램까지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너무 커서 잡을 수 없는 것(too big to grasp)'이어서 하노이 노딜의 결정적인 사유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미국이 공식적으로 FFVD를 철회할 것이라고 기대하긴 힘들다. 한미관계의 현실을 고려할 때, 한국이 FFVD와 완전히 다른 "완전한 비핵화" 방안을 내놓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한국식 해법'이다. '선택과 집중형 FFVD'를 만들어 이를 한미 공동의 안으로 발전시켜보자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형 FFVD'는 말 그대로 핵 문제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비핵화, 즉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핵물질, 그리고 핵시설과 핵탄두가 장착된 탄도미사일을 폐기 대상으로 삼고, 이에 걸맞은 상응 조치를 제시하자는 의미이다. 트럼프도 비핵화와 빅딜은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기 때문에 설득을 통한 공감대를 형성할 여지는 있다.

▲ 지난 4월 11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만난 문재인(오른쪽에서 두 번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이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영변을 주목하라, 다시!

동시에 우리는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보다 정교한 논리를 갖출 필요가 있다. 그 근거의 일부는 북한이 하노이에서 이미 제시한 제안에 담겨 있다. 이는 FFVD의 일부 내용을 충족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트럼프에게도 정치적 선물이 될 수 있기에 반드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트럼프가 FFVD에 집착하는 데에는 두 가지 생각이 깔려 있다. 하나는 지난 25년간의 북핵 협상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약속했다가 번번이 이를 뒤집었다는 것인데, FFVD를 통해 북핵 문제가 재발되는 것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이는 미국의 일방적인 역사 해석이다.)

또 하나는 트럼프가 탈퇴한 이란 핵협정보다 강력한 합의를 원한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한 공식적인 이유는 이란에 우라늄 농축 활동의 여지를 남겨놨고 탄도미사일 활동도 제한을 가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그러면서 북한과의 합의는 이란 핵협정보다 "우수할 것"이라며 'FFVD'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북한이 제시한 '영변+알파'에는 이러한 트럼프의 정치적 계산을 일부 충족시켜줄 내용이 담겨 있다. 우선 트럼프 행정부가 그토록 증오해온 과거의 협상안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1994년 제네바 합의부터 2007년 6자회담의 10.3 합의까지 북한은 '영변 살라미 전술'을 펴왔다. 동결→불능화→폐기로 나누면서 그때마다 에너지 지원과 경수로 제공과 같은 경제적 보상을 요구했었다. 그것도 일부 핵시설로 한정하면서 말이다.

반면 하노이에선 동결과 불능화를 거치지 않고 바로 폐기를 언급했다. 그것도 일부가 아니라 모든 핵 시설의 폐기를 제시했다. 무엇보다도 일체의 경제적 보상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대신 경제제재의 대폭적인 완화를 요구했는데, 이는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재정적 지출을 요하는 경제적 보상과는 결이 다른 것이다.

이게 FFVD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우선 과거에 북미 간, 혹은 6자회담의 합의가 깨지면서 북한이 핵 활동을 재개한 중심지가 바로 영변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동결 상태를 해제하거나 불능화된 시설을 복구하거나 우라늄 농축 공장을 신설하는 방식 등으로 말이다. 그런데 하노이 제안처럼 영변 핵시설이 모두 폐기되면 북한이 이곳을 기반으로 핵 활동을 재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우리가 미국을 이해시키고 설득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이다.

북한의 제안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그토록 갈망하는 이란 핵협정보다도 "우수한 것"도 담겨 있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우선 북한은 영변 폐기 대상에 우라늄 농축 시설도 포함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알파도 제시했다. "장거리 로켓 시험 발사를 영구적으로 중지한다는 확약도 문서 형태로 줄 용의를 표명"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이란 핵협정에는 없는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인 것이다.

70~80% 대 40~60%

기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을 전후해 문재인 정부는 상기한 내용을 중심으로 미국의 FFVD와 교집합을 만드는 데에 주력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잘 보이지 않았고, 대신 미국과의 이견을 노출시키고 말았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랬다.

하나는 영변 핵시설 폐기의 가치 평가이다. 문재인 정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영변 핵 시설이 전면적으로, 완전히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진행 과정에 있어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평가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부분적인 폐기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또 하나는 영변 핵시설이 북한의 핵 능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대변인은 하노이 노딜 직후 "영변을 폐기하면 그게 (전체 비핵화의) 70%든 80%든 그때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정부 안팎의 여러 사람들도 비슷한 평가를 내놓은 바 있다. 반면 필자가 3월 하순 면담한 국무부 관리들은 "영변 핵시설은 40~60% 정도를 차지한다"는 입장이었다.

냉정하게 본다면, 문재인 정부의 평가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 우선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더라도 비핵화의 핵심인 핵무기와 핵물질은 남아 있기 때문에 불가역적인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북한은 무기화가 가능한 핵물질을 포함해 60개 안팎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는데, 매년 5~6개 분량의 핵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 영변 핵시설이 북핵 능력의 70~80%를 차지한다는 주장도 납득하기는 어렵다.

미국에 비해 '하드파워'가 크게 부족한 우리에게 이를 상쇄할 수 있는 힘은 '소프트파워'에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전문성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갖춘 외교력이 있어야 한다. 모쪼록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이 외교력이 발휘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선택과 집중형 FFVD'를 갖고선 말이다. (다음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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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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