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토탈 사고 유증기에 발암가능물질 스티렌 포함됐나?

[안종주의 안전사회] 한화토탈 유증기 유출사고가 일깨운 것

한화토탈 대산공장에서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유증기와 유해물질 누출 사고는 2012년 구미 휴브글로벌 불산 누출 사고 이후 가장 많은 주민들에게 악영향을 준 사건으로 꼽힐만하다. 구미불산 사고처럼 노동자 사망은 없었지만 노동자 8명과 인근 주민 3백여 명이 기름 성분과 스티렌(추정) 등의 유해물질에 노출돼 부상과 두통, 어지럼증 증세 등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는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지난 17일 일차 사고에 이어 18일에도 같은 사고가 반복했다. 사용하고 남은 기름을 재활용하기 위해 보관하던 저장탱크에서 유증기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저장탱크는 보통 섭씨 50도 정도로 온도가 유지되지만 사고 당시에는 100도에 육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쪽은 탱크 온도 상승으로 인한 폭발을 막으려고 물을 뿌렸고 이 물이 탱크의 뜨거운 열로 인해 화학반응을 일으켰다고 밝혔다. 탱크에는 일정 온도가 넘으면 폭발 방지를 위해 외부로 자동으로 반응물질을 내보내는 안전밸브가 열리게끔 장치가 돼 있다. 그 결과 뜨거워진 유증기가 탱크 밖으로 분출하는 사고가 일어났다고 사건 경위를 회사는 설명하고 있다.

한화 쪽은 "사고 후 유독물질 유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공장과 인근 대기질을 측정한 결과 공기 중 유독물질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인근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지역주민, 협력업체 및 회사 직원들도 별다른 이상 증세를 보이지 않아 모두 귀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 확대를 바라지 않는 회사의 입장이어서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시기상조다.

환경부의 발암가능물질인 스티렌 포함 가능성 제기 주목해야

회사 설명과 달리 환경부는 유증기 내에 스티로폼 등의 원료이자 발암물질 가능성이 있는 스티렌단량체(styrene monomer) 등이 유증기 안에 포함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해물질 누출사고가 나면 고용노동부와 환경부 등 관련 규제·감독기관이 신속하게 공장 안팎의 공기 중 유해물질 검출 여부와 농도 등을 조사·측정하게 되어 있다. 이번 사고 때 관련 기관이 이를 실시했는지, 얼마나 신속하게 이것이 이루어졌는지는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

만약에 사고 직후 공기 중에 스티렌이 일정 농도 이상 검출됐다면 주민 건강조사나 장기건강추적조사 등 사후대응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스티렌은 눈에 접촉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피부 접촉, 섭취 및 흡입의 경우에도 유해성을 지니고 있다. 스티렌은 신경독성이 있어 시력과 청각 기능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스티렌은 발암가능물질로도 간주되고 있다. 스티렌은 호흡 등을 통해 사람 몸에 들어오면 산화로 인하여 스티렌옥사이드로 대사된다. 이 산화스티렌은 독성물질이며, 돌연변이 유발성 및 발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스티렌이 사람들에게서 위장관, 신장 및 호흡기 계통에 독성이 의심된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 국립독성학프로그램(The National Toxicology Program)도 스티렌을 '인간발암물질로 추정된다'고 기술했다.

세계보건기구 산하의 국제암연구소(IARC)도 스티렌을 인체발암물질, 즉 그룹 1에는 속하지 않지만 인체 발암가능성이 있는 그룹2A로 분류하고 있다. 현재 세계 각국의 다양한 규제기관은 스티렌을 가능한 또는 잠재적 인간발암물질로 말하고 있다.

물론 스티렌의 발암성에 대해서는 반론도 있다. 2012년 덴마크 환경청은 스티렌 유해성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스티렌으로 인한 암 우려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미국 EPA도 아직 스티렌에 대한 암 분류를 하지 않고 있다.

스티렌은 중합반응을 통해 스티로폼(폴리스티렌) 형태로 만들어져 컵라면, 사발면 용기와 포장 충진재로 널리 쓰인다. 폴리스티렌은 인체 유해성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스티로폼의 통상적인 사용으로 인한 유해성이나 발암성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유출 유증기 내 다른 유해성분은 없었는지 정밀 조사 필요

한화 쪽이 유증기 안에 유해물질은 없다고 밝힌 것과 달리 스티렌을 포함한 다른 독성 성분이 유증기 안에 들어 있을 수 있다. 기름 성분에는 톨루엔, 벤젠 등 유해성 내지는 발암성을 지닌 다양한 성분의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 들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와 주민들이 불안해 할 수 있는 요소를 이번 사건은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또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저장탱크의 온도가 올라간 원인 등을 신속하게 규명해야 한다. 원인 규명이 확실하게 이루어질 때까지 해당 공정은 가동을 중단하는 게 마땅하다.

또 이번 사고 발생 직후 공장 내부 직원과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 명령과 유출 물질에 대한 정보 따위를 얼마나 신속하게 전달했는지도 면밀하게 조사해야 한다. 만약 유출 물질이 독성이 매우 강한 것이었을 경우 자칫 참사로 번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유독물질 유출이 발생했음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2년 9월 27일 밤 경북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구미 제4 국가산업단지에 있던 불소 화학제품 생산업체인 ㈜휴브글로벌 구미 공장에서 일어났던 사고를 꼽을 수 있다.

당시 탱크로리에 실린 불산가스를 공장 내 설비에 주입하던 중 노동자의 실수로 탱크로리의 밸브가 열리면서 이 가스가 유출되어, 공장 노동자 5명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18명이 부상을 당했다. 주민 4백여 명도 중경상을 입은 바 있다. 공장 인근 마을 농민들이 재배하던 벼와 과수나무, 농작물, 가축 등에게도 상당한 피해를 주었다.

한화토탈 대산공장 유증기 유출 사고는 우리들에게 공장이 위험하면 지역주민들도 위험할 수 있다는 명제를 다시 한번 깨우치게 했다. 공장 노동자가 안전하지 못하면 인근 주민들도 안전하지 못하다. 공장의 안전이 곧 주민의 안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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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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