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평화 어지럽히는 트럼프-네타냐후 동맹의 희생자들

[김재명의 월드포커스] 이스라엘 건국 71년에 부쳐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 친구가 사진 하나를 보내왔다. 동예루살렘 쪽으로 바람을 쐬러 갔더니 성벽 위에 전에 없던 볼거리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미국 국기(성조기)가 펄럭이는 문양을 배경으로 '트럼프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Thank You President Trump)라는 글자가 대형 빔프로젝터 스크린으로 성벽을 수놓고 있다는 얘기였다.

5월14일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이스라엘에선 국토대행진, 야외 음악회, 전시회를 비롯한 여러 형태의 요란스런 이벤트가 벌어지는 와중에 미국 대통령에게 고맙다는 문자 메시지가 빔프로젝트로 선보인 것이다.

사진을 보내온 유대인 친구는 팔레스타인과의 평화공존만이 이스라엘이 살길이라 믿는 소수의 유대인에 속한다. 그의 눈에는 이스라엘의 극우-보수-종교 세력을 지원하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곱게 비칠 리가 없다. 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끈끈한 유착을 가리켜 "적어도 당분간은 깨뜨리기 어려운 현실이기에 답답하기만 하다"고 친구는 이메일에 덧붙였다.

▲ 이스라엘 건국기념일 기념으로 예루살렘 성벽에 빔프로젝터로 쏜 트럼프에 대한 감사 인사 ⓒ김재명

극우-보수-종교 세력의 재집권 도운 트럼프

지금부터 꼭 71년 전(1948년 5월 14일) 중동 지도 한복판에 새로운 국가가 그려졌다.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한 그날부터 지금껏 중동에 평화로운 날은 없었다. 늘 어디선가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집이 헐리고 피가 피를 부르는 폭력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폭력의 중심엔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 그리고 친이스라엘 일방주의를 걸어온 미국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해마다 30억 달러의 군사원조를 공짜로 이스라엘에게 건네주어 왔고, 이스라엘은 그런 미국을 뒷심 삼아 주변의 중동 아랍인들을 눌러왔다.

최근 들어 미-이스라엘 동맹은 더욱 강화된 모습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사이의 유착은 더 이상 끈끈할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지난 4월 이스라엘 총선에서 네타냐후의 극우-보수-종교 연합 세력이 가까스로 과반수를 넘겨 승리한 것도 따지고 보면 트럼프의 거듭된 지원 사격 덕분이다.

그 보기를 꼽자면, △국제사회의 세찬 비판을 무시하면서 미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겼고(2018년 5월 14일) △팔레스타인 헤브론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과 불편한 관계에 있던 유네스코(UNESCO)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탈퇴했고(2019년 1월 1일)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이른바 6일 전쟁) 때 빼앗은 뒤 지금껏 점령중인 골란고원(국제법상 시리아 영토)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포고문에 서명했다(2019년 3월 25일).

트럼프의 중동 정책은 지난날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공화당 출신이냐 민주당 출신이냐를 떠나) 보여 왔던 중동정책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한마디로 노골적인 친이스라엘 일방주의이다. 이스라엘에서 지난 10년 동안 정권을 잡아 온 네타냐후로선 트럼프의 전임자인 조지 부시나 바락 오바마보다 트럼프가 더없이 고마울 것이다. 특히 오바마와는 이스라엘 정착촌 철거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냉랭한 관계를 이어오지 않았던가.

"내가 총리에 다시 오른다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유대인 정착촌을 이스라엘 영토에 합병하겠다"

네타냐후는 4월 총선을 앞둔 보수 유권자 층의 표심을 다지려고 이런 광기를 부렸다. 국제사회의 세찬 비난과는 달리 유대인 정착촌 확장에 대해 눈을 감아온 트럼프가 그의 뒷심이 아니라면, 보이기 어려운 광기였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는 이스라엘이 전쟁(1967년 제3차 중동전쟁)으로 차지했기에 국제법에 따라 언젠가는 원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1967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스라엘 군이 점령지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못 박은 바 있다(유엔안보리 결의안 242).

2개 국가 해법 내버렸다


지난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으로 1996년 팔레스타인에 자치정부가 들어선 뒤로 중동평화협상을 말할 때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2개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역대 미국 행정부의 정책도 그러했다. 이스라엘도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2개 국가 해법'을 부정하지 않았다. 트럼프 집권 이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 협상은 물 건너간 모습이다. 여기엔 여러 요인들이 깔려 있지만, 네타냐후와 트럼프가 2개 국가 해법을 노골적으로 뭉갠 탓이 크다. 이즈음 네타냐후와 트럼프는 2개 국가 해법을 아예 입에 담지 않는다.

네타냐후는 지금의 팔레스타인 점령 상황을 그대로 고착화하는 이른바 '현상 유지를 위한 시간 끌기' 전략을 지녔다.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 자체를 부정해온 그의 마음속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란 없다. 네타냐후-트럼프의 유착이 빚어내는 최대 희생자는 다름 아닌 팔레스타인 민초들이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280만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억압(유대인 정착촌 확장, 8미터 높이의 분리장벽 등)으로 생존권을 위협 받으며 일상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팔레스타인 가자(Gaza) 지구의 180만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으로 말미암아 '하늘만 뚫린 감옥'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르는 상황이다.

실업률 52%,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

지난 5월 1일 노동절을 앞두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통계국이 밝힌 바에 따르면, 가자지구의 실업률은 52%에 이른다. 전년도 실업률이 44%였던 점에 견주면 그곳 사람들의 살림살이 형편이 갈수록 더욱 나빠지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전 세계 사람들은 걸핏하면 가자지구에서의 유혈 충돌이 벌어졌다는 소식에 익숙해 있다.

유혈 충돌이 왜 그치지 않을까 헤아려 보면, 그 밑바닥엔 절망감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이스라엘 군의 총격을 무릅쓰고 돌을 던지며 시위를 벌이다가 죽고 다치는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의 마음속엔 "이런 한계 상황에선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깊은 절망감이 깔려 있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 5000달러쯤에 이르지만 팔레스타인은 겨우 3000달러에 머물러, 소득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팔레스타인 현지 취재 때 만났던 자치정부 경제무역부의 한 실무자는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들의 기준으로 보면, 팔레스타인 사람 2명 중 1명이 절대빈곤 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절대빈곤의 국제적인 기준은 한 사람이 하루 1.25달러(구매력평가 기준)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절대빈곤의 책임은 고스란히 이스라엘 몫이다. 서안지구에서 만난 한 유대인 정착민으로부터 "아랍인들(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유대인들보다 게을러 못 산다"는 말을 듣는 순간 하도 어이가 없어 나도 모르게 푹~하며 웃음을 터트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중동평화 어지럽히고 한국에도 악영향

트럼프-네타냐후 유착은 팔레스타인 사람들뿐 아니라 지구촌 사람들에게도 해악을 끼치고 있다. 미 오바마 행정부의 주도 아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P5+1)이 이란과 핵협정(정식 명칭: 포괄적 공동계획 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2015년)을 맺은 바 있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 협정만으론 이란의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며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그리고는 "2019년 5월부터 어떠한 국가도 이란 석유를 수입해선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야말로 21세기 패권 국가 미국의 일방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어렵게 또는 고상하게 말할 것도 없이 "이로써 트럼프의 미국은 국제사회의 깡패"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문제는 트럼프의 조치가 한국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2015년 핵협상이 타결되기 전인 지난 2010년 당시 미국 부시 행정부는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한국의 동참을 요구했었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동맹이란 이름 아래 석유를 뺀 이란과의 대부분의 교역을 중단시키고, 서울에 있는 이란 멜라트 은행 한국지점 문을 닫도록 하며 미국의 비위를 맞춘 바 있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 가운데 이란산의 비중은 약 8%. 문재인 정부가 그 요구에 안 따른다면? 트럼프가 내지르는 강압책으로 이런저런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 뻔하다. 국내 업계는 지금의 상황을 내다보면서 일찌감치 석유 수입선을 다변화했다고 한다. 이란 석유 수출량의 절반 가량을 들여오는 중국조차 움츠리는 모습을 보면서 잘못 돼도 한참 잘못 됐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유대인들의 손에 놀아나는 세계

이런 상황의 뿌리에는 결국 이스라엘이 있다. 미국의 최우선으로 챙겨주는 동맹국인 이스라엘은 중동의 군사 강국인 이란을 경제적으로 붕괴시키려 한다. 남미의 반미 국가인 베네수엘라의 경제 붕괴를 노리는 미국과 닮은꼴이다. 9.11 테러 뒤 미국이 벌인 잇단 군사작전으로 중동에서 이스라엘을 위협할만한 군사력을 지닌 국가는 이란 단 하나뿐이다. 그런 이란이 핵무기를 만들어 이스라엘을 공격한다? 국제정치학자들이 말하는 합리적 선택이론을 들먹일 것도 없이 제정신이 박힌 이란 지도자라면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이란의 군사적 위협을 막겠다며 폭격기를 실은 항공모함 전단을 중동으로 출진시키는 등 법석을 떠는 상황이다. 미국의 보수 매체들은 날마다 이란 위기설을 증폭시키며 전쟁의 북소리마저 둥둥 울려댄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느긋한 미소를 짓는 사람은 다름 아닌 트럼프의 친구 네타냐후이다.

지정학적으로 이란은 미국과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다. 사정거리 3000km의 샤하브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 중인 이란이지만, 미국의 본토를 위협할만한 처지도 못 되고 능력도 안 된다. 그런데도 미국의 트럼프는 왜 이란의 핵개발 문제에 그토록 과민반응을 보일까. 결국 이스라엘의 극우-보수-종교 연합세력을 이끄는 네타냐후가 바라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네타냐후를 위해 이란을 압박하고, 한국의 문재인 정권은 트럼프의 요구를 뿌리치지 못하고 이란 석유 수입을 포기하는 모습이다. 결국 유대인들의 손에 놀아나는 셈이다. 트럼프-네타탸후 동맹이 중동평화뿐 아니라 세계평화를 어지럽히는, 참으로 이상하고 답답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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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명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kimsphoto@hanmail.net)는 지난 20여 년간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 세계 20여 개국의 분쟁 현장을 취재해 왔습니다.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중앙일보>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미국 뉴욕시립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국민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22년까지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저서로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오늘의 세계 분쟁> <군대 없는 나라, 전쟁 없는 세상> <시리아전쟁>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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