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어 나갔는데, '원청무죄 하청유죄'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로 6명 하청 노동자 사망했지만 원청은 무죄

2017년 노동절 당시, 하청 노동자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친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 사고에서 원청인 삼성중공업 관리자들은 전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반면, 현장 노동자들은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회사의 안전관리 소홀보다는 현장 노동자의 크레인 오작동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법원이 판단한 셈이다.

창원지법 통영지원 형사2단독 유아람 부장판사는 7일,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삼성중공업 전·현직 직원과 하청업체 대표·직원 총 15명 중 골리앗 크레인 신호수였던 이모(48) 씨 등 크레인 조작에 관련된 직원 7명에게만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반면, 업무상 과실치사상·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조선소장(전무) 김모(63) 씨 등 안전보건 관리직 직원 4명과 삼성중공업 법인에는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재판에서 안전관리의 최고책임자인 삼성중공업 대표이사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 경남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타워 크레인이 전날 골리앗 크레인과 충돌사고로 엿가락처럼 휜 채 근로자 31명의 피해가 발생한 선박 건조 작업장 쪽으로 맥없이 넘어져 있다. ⓒ연합뉴스

휴식 취하다 하청 노동자 6명 사망

2017년 5월 1일 발생한 크레인 충돌 사고는 골리앗 크레인이 이동하면서 또 다른 크레인과 부딪치면서 발생했다. 골리앗 크레인과 부딪치면서 쓰러진 크레인이 쉬고 있던 노동자를 덮쳤고 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주목할 부분은 당시 사고 사망자가 모두 하청 노동자라는 점이다. 당시 삼성중공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절이라 출근하지 않았다. 삼성중공업은 노동자의 날인 1일부터 7일까지 휴무를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부 하청 업체에서는 공사 기간을 맞추기 위해 휴무일임에도 작업을 진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사고는 크레인이 넘어진 쪽에 노동자들의 휴식공간인 흡연실이 있어 여느 사고보다 사상 규모가 컸다. 사고 당시 사상자들 대부분은 흡연실 안과 밖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공교롭게도 이날 크레인이 쓰러진 시각은 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었다.

원청 관리자에게 면죄부 준 재판부

재판부의 이번 판결은 노동자의 안전관리에 책임을 지고 있는 원청 관리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크레인 충돌 사고와 관련해서 크레인을 운전한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사고가 난 곳은 하루에도 몇 번씩 크레인이 통과하는 지역임에도 그간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던 점에 비춰, 신호수 등 크레인 신호·조작 노동자들이 순간적으로 집중력을 유지하지 못해 사고가 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면서 원청인, 즉 삼성중공업의 안전 관리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유를 두고 "산업·안전 총괄 책임자 등은 전체적인 환경을 구축하는 등 의무가 있을 뿐 개별 중장비를 관리·감독하고 현장을 직접 확인할 주의·감독 의무는 없어 산업안전관리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한, 안전규정 등이 미비한 점이 확인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사고가 업무상 과실에 의해 발생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사고 당시, 크레인 충돌방지 장치만 있었다면 그런 대형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역시 크레인 충돌방지 장치가 다른 조선소에도 없다는 점을 들어 원청 관리자가 이를 설치하지 않았다고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청 노동자들이 지속해서 죽는 이유

사실, 이번 재판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이 됐던 일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재사망이 발생해도 직접 책임이 있는 관리자만 처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레스에 끼어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그 프레스의 안전점검을 하지 않은 누군가를 처벌하는 식이다.

결국, 처벌은 죽은 노동자의 동료이거나 현장소장, 확장하면 공장장 정도만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실질적인 사업주, 즉 원청 관리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법으로 경영책임자, 즉 원청 관리자를 처벌하려면 크레인 작동에 관리자가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를 제출해야 하는데, 직원이 수천, 수만 명 있는 대기업에서 이를 찾아내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직접 증거가 있더라도 자기들끼리 은폐하면 찾아낼 방법이 없다.

결국, 지금처럼 모든 원청 관리자들은 법망에서 빠져나가게 된다. 하청 노동자들이 지속해서 일하다 죽는 이유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