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에서 '기업처벌법'을 보다

[안종주의 안전사회] 노동자가 안전해야 시민도 안전하다

아침 한 장의 사진이 나를 울컥하게 만든다. 28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있었던 장면을 한 조간신문이 다룬 것을 보았다. 지난해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안타깝게 산재로 희생된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의 모습이 사진에 담겼다. 28일은 세계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었다.

이날 모란공원에서는 김용균 씨 묘비와 추모 조형물 제막식이 열렸다. 김용군 씨가 태안 화력발전소 안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을 노란 색으로 형상화한 것이었다. 김미숙 씨는 왼손에 휴대폰을 든 채 오른손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들의 왼쪽 뺨을 울먹이며 어루만졌다.

모란공원에는 대한민국에서 산재로 희생된 많은 노동자들의 묘소가 있다. 15살 어린 나이로 서울 영등포구 협성계공에서 일하다 1988년 7월 수은중독으로 숨진 문송면 군의 묘소도 있다. 또 원진레이온에서 일하다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쓰러져 투병 끝에 1991년 1월 숨진 김봉환 씨도 이곳에서 잠들어 있다.

이들을 포함해 거의 대부분의 산재(직업병) 희생자들은 억울하게 숨져갔다. 기업주의 무관심과 노동자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불법 행위로 이들은 온전한 삶을 살지 못했다. 가족들은 그 뒤 오랫동안 힘든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김미숙 씨도 그렇고 삼성전자 백혈병 희생자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의 삶도 그러했다.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단지 숨만 쉬고 있을 뿐이었다.

희생자들의 넋은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을 바탕으로 달랠 수 있을 터이다. 살아남은 동료와 가족에 대한 위로도 가해자들에 대해 가해 정도에 걸맞은 처벌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약간이라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산재사망 사업주 실형 처벌 일 년에 한두 명 그쳐

2016년 산재 통계를 보면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해 기업이 문 벌금액은 평균 432만 원에 지나지 않았다. 또 지난 10년간 산재사망 사고를 일으킨 사업장 책임자 중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전체의 0.5%에 그쳤다. 이는 산재 사망사고를 일으킨 기업이 연간 4백 곳이라면 2명 정도만 실형을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대부분은 솜방망이 처벌이나 벌금을 받은 셈이다.

이날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등 산재 사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노동자와 노동단체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하루빨리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 지금의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우리 사회의 산재 희생자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란 판단에서다.

김용균 씨 사망을 계기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전면 개정됐다. 원진레이온 대참사를 계기로 한번 전면 개정됐던 산안법이 28년 만에 전면 개정된 것이다. 하지만 이 전면 개정 산안법 또한 허점이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김용균 씨가 일했던 전기사업설비의 운전과 설비 점검, 정비 업무, 긴급복구 업무가 정부의 도급 승인 대상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이런 설비에서 하청·비정규직이 위험에 노출된 채 일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영국,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도입 뒤 중대 산재 대폭 줄어

이들이 영국처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목 놓아 요구하는 배경에는 이런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지금은 고인이 된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2017년 4월 발의한 시민·노동자 재해에 대한 기업·정부 책임자 처벌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산안법을 위반하거나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종사자와 이용자 등이 숨지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 등으로 되어 있다.

경총 등 기업주 단체 등과 기업들은 이런 법안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핑계를 들먹이고 있다. 하지만 영국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도입한 뒤 산재 사망이 대폭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경영 위축 운운은 그리 염려할 바가 못 된다고 볼 수 있다.

노동자가 안전해야 시민이 안전해진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은 그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전만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의 안전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민과 지역 사회, 나라 전체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하고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산과 들에 온갖 꽃이 만발하고 숲이 밝은 연초록 푸름으로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봄날의 아침에 신문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자전거 타는 김용균 씨와 그 조형물을 어루만지면서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애틋하게 보내는 어머니 김미숙 씨의 모습을 보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조속 처리를 국회가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봄바람에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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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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