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어김없이 너희들 생각이 나"

[세월호 참사 5주기] 세월호 생존 학생 장애진 씨 '기억 편지' 전문

세월호 생존 학생 장애진 씨는 16일 경기도 안산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식'에서 국민들에게, 정치인들에게, 언론인들에게 보내는 당부의 글과 함께 친구들에게 전하는 편지를 낭독했다.

장 씨는 꾹꾹 눌러 쓴 A4 세 장 분량의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습관처럼 울음을 참은 채.

다음은 장 씨의 편지 전문이다.

▲ 세월호 생존 학생 장애진 씨.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세월호 생존 학생 모임 '메모리아' 대표 장애진입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5년이라는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한 이유를 아직도 밝히지 못해 그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가 같이 걸어온 5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숨겨지고 감춰졌던 것들을 우리는 그 시간 동안 조금씩 찾아내고 있습니다. 그 중 여전히 감추고 있는 것 하나, '대통령의 7시간'. 그 시간을 30년간 봉인하기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30년이 지나면 저희는 50대가 되어 있을 겁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가 포기할 거라는 생각으로 긴 시간을 묶어 놓은 것일까요? 시간을, 잘못을 감추고 빠져나가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마십쇼. 정말로 결백하다면, 이렇게까지 숨길 필요가 있었을까요?

정치인 중 몇몇은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정작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국민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비치도록 하며 서로의 사이를 이간질하였습니다. '정치적으로 보지 않았더라면 진상규명을 위해 여러 당이 모여 노력해 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이 자리를 빌려 말합니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모든 분.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 시선'이 아닌 '이웃의 시선'으로 바라봐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처음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꾸려졌을 때 수사권·기소권도 없이 조사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마저도 당시 정부에 의해 강제 종료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국민들 덕분에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꾸려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수사권·기소권도 없는 상태로 조사받게 할 수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닙니다. 조사된 내용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지만, 책임을 져야할 사람은 책임을 지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아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왜 돌아오지 못하였을까요? 그 이유를 밝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아마 국가가 더 잘 알지 않을까요? 언론과 국가에 묻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 피해자 가족들은 위로와 치료를 받아야 하는 대상인데, 왜 왜곡된 이야기로 피해자들이 더 상처 입게 만드셨나요? 왜 피해자가 책임자를 나서서 찾고 죄를 물어야 할까요? 왜 피해자 스스로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밝혀내야 할까요? 도대체 왜? 피해자가 외쳐야 하는 세상은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요?

아직도 우리에게는 '세월호 생존자'라는 단어가 무거운 죄책감으로 남아있습니다. 어떠한 사유로 인해 피해자가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사회가 된 것일까요?

대한민국은 국민의 안전을 도맡아 책임지고 본인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상을 밝히는 것이 오래 걸릴 걸 알고도 시작하였습니다.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벽을 부수어도 그 뒤에는 복잡한 미로가 있었습니다. 그 미로에서 탈출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미로가 출구를 감추고 있을 뿐. 그 출구로 나올 수 없다면, 우리는 또 다른 출구를 찾아 이 미로에서 벗어나고 말 것입니다.

아름다웠던 날에 함께했던 소중한 사람들을 기억하며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친구들에게 전하는 편지.

너희들에 대한 그리움은 약간의 죄책감과 닮아있다고 생각해.

잘못과 실수. 너희를 아프게 했던 일들만 떠오르는 이유는 너희를 다시 만나 용서를 빈다는, 그다음이라는 게 없기 때문이겠지.

나는 매일 보내지 못하는 편지를 쓰고, 용서받을 수 없는 사과를 해.

용서해 줄, 괜찮다고 말해 줄 너희가 없으니 나는 너희의 인생을 살아가며 죄를 갚아 나갈게.

다만 마지막에 너희가 내게 지어주었던 웃음이, '있다 봐'라는 인사가 내 마음 속 한편에 자리잡아 다음이라는 것이 언젠가 있을 것처럼 느껴지더라.

하루 하루가, 내 생일이 돌아오면 어머니는 언제 선물을 안겨주실까 하는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그런 날처럼 여겨져.

결국 나의 인생도 너희가 언제 돌아올까 하는 기대와 실망으로 점쳐진 환상 같다고. 아직도 그렇다고.

매년 4월이 되면 이 환상을 더 짙어져 안개가 낀 사방을 헤매는 기분이야.

너희가 없는 우리 생활이 이렇다는 것을 전해주고 싶지만 이 말은 너희에게 닿을 수 없는 말이 되어 버렸어.

안녕? 이렇게 말하는 거 되게 어색하다. 너희와 웃고 떠들던 게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어. 흘러가는지 모른 채 살아온 것 같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짜 일어난 일인지 잘 모르겠더라.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

그래도 너희들이 다시 돌아올 수는 없겠지. 너희가 돌아오지 못한 이유를 찾으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아무도 그 문은 열어주지 않더라. 그 안에 무엇이 있길래.

봄이 오는 신호가 보이면, 어김없이 너희들 생각이 나. 벚꽃잎이 흩날리면 그것에 좋아하던 모습이 떠올라. 그런데 요즘 벚꽃을 보면 좀 힘들어지는 느낌을 받았어. 그저 피고 지는 것이 아름답기만 하던 꽃이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가 탔던 배가 인양되고 이번엔 바로 세워졌어. 최근엔 그 배를 보러 갔는데 말도 안 되게 크더라. 나는 우리가 탔던 배 안에 들어가는 게 괜찮을 줄 알았어. 그런데 아무 이유 없이 몸이 떨리고 눈물이 차오르더라. 우리가 탔던 배는 다 녹슬었고 너희들은 돌아오지 못했는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바다는 너무나 잔잔하고 고요해.

쉬고 싶어 혼자 여행을 가봤어. 햇빛이 내려앉은 바다를 바라보니, 너희들 생각이 나. 너희들도 바다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으며 좋아했겠지. 함께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저 우리 곁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게 너무 큰 바람인 걸까.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우리를 갈라놓은 걸까.

너희가 그리워서 그냥 울고 싶은 날이 있어. 돌아오는 4월 인터뷰할 때 강인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해. 울게 되면 여론의 부정적인 반응이 생각나 울음을 참게 되더라. 그게 습관이 되어 버렸나 봐. 너희가 생각날 때도 습관처럼 울음을 참게 돼. 그래도 눈물은 흐르더라.

너희에게 용서를 바라지는 않을게. 진실이 밝혀지는 날이면, 너희에게 사과할 기회를 줄래?

지금 내가 쓴 글, 잘 듣고 있지? 지금 여기 우리 앞에 와있다 생각해.

그 당시 무능력했던 어른이 되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할게. 먼 훗날 소중한 너희들에게 가게 되는 날,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어 너희를 만나러 갈게.

우리도 잊지 않을 테니 너희들도 우리를 기억해줘."

마지막으로 한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를 말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거짓이란 벽에 갇힌 진실은 물처럼 잔잔하고 고요해 보였지만, 아무도 모르게 벽의 아주 작은 틈새를 찾아 조용히 세상을 향해 흘러나오고 있다."

5년이 지난 2019년 4월 16일 화요일
성인이 된 친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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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

프레시안 이명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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