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다운' 중재 첫발 뗀 文대통령, 김정은 설득 과제

한미 정상 "3차 북미 정상회담" 긍정적…구체적 합의 없어 불투명

남북미 정상이 11일을 전후로 '포스트 하노이' 정국에 대한 각자의 패를 일부 공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자력 갱생을 강조하며 핵 개발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의 여지를 열어놨다. 북미 정상 모두 대화의 여지를 열어놓는 동시에 장기전에 돌입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으로 요약되는 '조기 수확' 방안을 제시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일(현지 시간)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 2시간가량 단독 정상회담과 확대 정상회담을 연달아 열고, '포스트 하노이' 정국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단독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하노이 회담에 대한 평가 → 북한 내부 동향에 대한 의견 교환 → 비핵화 협상 추진 방향, 3차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방향 순으로 논의했다.

한미 정상은 먼저 하노이 북미 회담에 대해서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지만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밝혔다.

전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 회의를 열고, '자력갱생'과 더불어 '새로운 전략 노선'을 언급했다. 북한의 동향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한미 정상은 "새로운 전략 노선이란 2018년 4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위원회에서 핵 병진노선을 포기하고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매진한다는 노선을 유지한 것"이라고 보고 "미국과의 대화를 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관계는 아주 좋다"며 "앞으로 두고 봐야 하겠지만, 희망하건대 좋은 결과를 낳기를 바란다"고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에도 대화의 여지를 열어놨다. 문 대통령에게는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서 또는 남북 간의 접촉을 통해서 한국이 파악하는 북한의 입장을 가능한 한 조속히 나에게 알려달라"고 요청했고, 문 대통령은 "조만간 4차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 오후(현지 시간)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단독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진 확대 오찬에서는 △북미 대화를 재개하는 모멘텀을 만드는 방안 △남북 관계 증진이 비핵화 협상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 하에 앞으로 남북 협력 증진 방안에 대한 의견 교환 △동북아 지역 전반에 걸친 의견 교환 △한미 동맹 전반에 대한 폭넓은 의견 교환이 있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특히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대북 강경파들이 참석한 확대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 방안'을 위한 '조기 수확' 방안을 제안하며 남북 경제 협력이나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에 들어가기 앞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 "지금은 적기가 아니지만, 올바른 시기에 엄청난 지지를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 두 정상의 의견이 다른 것 아니냐는 질문에 "허심탄회한 논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의 최종적인 상태(end state)에 대해 한미 정상이 의견 일치를 본 것은 성과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스몰딜이 있을 수 있다. 단계적인 조치를 밟을 수 있겠지만, 현 시점에서는 빅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빅딜이란 바로 북한이 핵 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화의 정의를 대량살상무기(WMD)까지 확대했던 데서 '핵무기 포기'라는 현실적인 목표로 되돌린 것이다.

문 대통령도 "한국은 미국과 함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의 최종적인 상태(end state), 비핵화의 목표에 대해 완벽하게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비핵화 단계나 상응 조치 방안에서는 이견을 보였을지언정, 트럼프 대통령이 '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이라는 큰 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뜻을 같이한 점도 긍정적이다.

다만, 미국과 북측 모두 대화의 여지를 열면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는 점은 문 대통령에게 남은 과제다. 김정은 위원장은 전날 당 회의에서 '자력 갱생'이라는 말을 27번이나 언급했고, 트럼프 대통령 또한 한미 정상회담에서 "3차 북미 정상회담은 빠른 과정이라기보다 단계적 수순을 밟아야 한다. 빨리 진행된다면 적절한 합의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요한 것은 대화의 모멘텀을 계속 유지시켜 나가고, 가까운 시일 내에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심어주는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까운 시일 내'를 강조한 것은 그래서다. 문 대통령은 또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결단이 필요한 대목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펜스 부통령 등을 먼저 만나며 '톱다운 방식'의 타개책을 강조했다. '대북 강경파'인 볼턴 보좌관과 펜스 부통령에게 트럼프 대통령 중심의 톱다운 대화에 힘을 실어달라고 당부한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에 대해 허심탄회한 의견 교환이 있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 있는 미국 행정부 고위 인사를 모두 만나 폭넓게 이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대통령의 구상을 전달한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한미 정상회담에 돌입하기 전 모두 발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엄청난 규모의 미국 군사 장비를 구매하기로 했다"며 "문 대통령에게 감사하다"는 '돌발 발언'을 했다. 한국 정부에 한미동맹의 대가로 일종의 '청구서'를 들이미는 한편, 미국 국민에게 자신의 외교 성과를 과시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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