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강경파들의 '전가의 보도', 검증을 극복하는 방법

[정욱식 칼럼] 한반도 문제, 쟁점과 해법 (5) 검증 문제

나는 앞선 글에서 "하노이 선언이 "다른 미래"의 시작이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전쟁'의 본격화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현상 유지 세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다른 미래"는 주한미군 없는 미래이다. 그리고 이들은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검증 문제를 유력한 실탄으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과거의 전례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전망이 결코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검증 문제로 북미가 충돌한 사례는 크게 세 번이 있었다. 첫 충돌은 1990년대 초반에 있었다.

1992년 1월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협정에 가입한 북한은 그해 5월 IAEA에 약 90kg의 플루토늄을 신고했다. 하지만 미국 군부와 중앙정보국(CIA)은 10kg 정도로 추정하고는 북한의 미신고 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요구했다.

북한이 주권 침해를 들어 이를 거부하자, 한미 국방장관은 중단키로 했던 '팀 스피릿' 훈련은 재개키로, 추진했던 주한미군 감축은 중단키로 했다.

진실의 문은 15년 후에 열렸다. 2008년에 북한이 넘겨준 핵 가동일지를 미국이 정밀 분석한 결과 북한의 플루토늄 신고가 정확했다는 잠정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는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목록에서 제외한 결정적인 사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플루토늄 불일치' 문제를 제기했던 미국 강경파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남북관계와 북일관계의 급진전은 차단하고 감축키로 했던 주한미군 전력은 오히려 강화시킨 것이다.

두 번째 충돌은 2001~2002년에 벌어졌다. 미국의 대외정책 주도권을 장악한 네오콘들은 제네바 합의를 파기시킬 구실을 호시탐탐 찾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북한이 특별사찰을 수용하지 않으면 중유 제공과 경수로 건설을 중단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중유와 경수로 중단은 곧 제네바 합의의 파기를 의미했다.

그런데 당시 북한의 미신고 시설에 대한 특별사찰 요구 자체가 지나친 것이었다. 제네바 합의에선 특별사찰을 "경수로 사업이 상당 부분이 완료될 때, 그러나 주요 핵심부품의 인도 이전에" 실시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경수로의 공정률은 30%를 맴돌고 있었다. 경수로 완공에 반드시 필요한 북미 원자력협정 체결은 미국의 거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제네바 합의는 2002년 10월 발생한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의혹 논란으로 파기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실 끝에 매달려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세 번째 충돌은 2008년에 발생했다. 2007년 10.3 합의에 따라 북한은 핵 신고를 했지만, 한미일의 대북 강경파들은 강력히 반발했다. 신고 대상에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과 시리아로의 핵확산 전력, 그리고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이 빠졌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라늄 농축 의혹은 북미간의 추가 논의를 통해 풀기로 했었고, 북한의 핵발전소 수출설은 단순한 의혹에 불과했다. 또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은 초기 신고 대상에서 제외키로 북미간에 합의된 터였다.

그러나 한미일의 강경파들은 북한의 신고가 부정확하고 불완전하다며 강력한 검증을 요구했다. 전방위적인 사찰과 시료 채취와 같은 강제 사찰까지 망라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9.19 공동성명의 2단계 이행조치인 10.3 합의를 넘어선 것이었다. 강도 높은 사찰은 3단계에서 하기로 했던 것이다. 한미일 강경파들이 경기 중에 골대를 옮긴 셈이다. 그 결과 6자회담은 좌초되고 말았다.

▲ 지난 2007년 올리 하이노넨 국제원자력기구(IAEA) 부총장(가운데 붉은 넥타이)과 칼루바 치툼보 안전조치국장 등 4명으로 구성된 IAEA 실무대표단이 북한 핵시설 폐쇄를 위한 사전 협의를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모습. ⓒ연합뉴스

이러한 전례에 비춰볼 때, 그리고 과거보다 한층 복잡하고 다양해진 북핵 프로그램을 고려할 때, 검증은 가장 합의하기 어려운 영역이자 가장 큰 갈등 유발 요인이다. 그래서 신뢰가 중요하다. 신뢰가 깊어질수록 검증도 완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신뢰구축에는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듯이 검증 역시 마찬가지이다. 단계적 검증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북 강경파들은 이러한 현실을 수용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북한의 속임수에 또 넘어갈 것'이라며 맹공을 퍼부을 것이다. 이러한 저항과 반격을 최소화하려면 단계적이면서도 철저한 검증 방안이 필수적이다. 북한도 이 점에 있어서는 과감하고 또한 유연해져야 한다. 그래야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단계적이고 철저한 검증이란?

1단계 검증은 이미 폭파된 풍계리 핵실험장, 북한이 폐기 의사를 밝힌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그리고 미국의 상응 조치를 전제로 폐기 의사를 밝힌 영변 핵시설이 우선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북한이 이들 시설에 대한 봉인이나 불능화를 넘어 폐기 의사를 밝힌 만큼, 검증과 폐기를 동시에 진행하는 방안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과 관련된 시설이 군사적 용도로 전용되지 않도록 철저한 감시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 두 가지, 즉 북한의 핵무기 및 핵물질과 미신고 의혹 시설에 대한 검증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들에 대한 검증을 1단계부터 실시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1단계에선 이들 문제에 대한 검증 로드맵에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핵화의 본질에 해당하는 핵무기와 핵물질에 대해서는 북한이 1단계에서 '총량'을 신고하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북한의 비핵화의 진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반면 북한은 핵탄두의 위치까지 신고하지 않아 민감한 군사 정보 공개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점에서 상호 만족할 수 있는 접근이다. 또한 미신고 의혹 시설에 대해서는 현장 방문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미국 일각에서 지목한 비밀 우라늄 농축 의혹 시설 소재지인 강선 방문을 1단계에서 실시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2단계에선 추가적인 핵무기 생산 동결 검증이 핵심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않겠다고 밝힌 만큼, 이러한 정치적 선언을 확인할 수 있는 검증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핵탄두 연구개발 및 제조 시설에 대한 사찰단의 접근과 감시, 핵탄두 기술자들에 대한 면접과 관련 자료 검토 등이 확보되어야 한다.

아울러 2단계에선 북한이 1단계에서 신고한 핵무기와 핵물질 총량에 대한 1차적인 확인 작업도 개시되어야 한다. 북한이 관련 문서를 제출하고 관련국 전문가들이 이를 검토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문서에는 플루토늄과 농축 우라늄, 그리고 삼중수소 등의 구체적이고 정확한 생산량, 6차례에 걸친 핵실험에서 사용한 핵물질의 종류와 분량,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물질의 종류와 분량, 핵무기 제조에 사용된 핵물질의 종류와 양 등이 정확히 기술되어 있어야 한다.

3단계 검증의 핵심은 핵무기 및 핵물질에 대한 완전한 검증과 특별사찰의 제도화이다. 핵무기의 종류와 수량, 그리고 여기에 사용된 핵물질의 종류와 양을 확실히 검증하기 위해서는 관련 시설 방문뿐만 아니라 관계자 면담과 핵무기 해체 및 분석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결국 핵무기 및 핵물질 폐기 단계에서 다뤄질 수밖에 없다.

특별사찰의 제도화는 불일치 문제를 해소하고 미신고 의혹 시설에 대한 사찰 권한을 확보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북한이 기존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협정을 대폭 강화한 추가의정서를 서명·비준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비공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존재 확인을 비롯한 핵 신고의 정확성과 완전성을 검증할 수 있는 토대가 구축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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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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