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제재 '유지'보다 '완화'가 강력한 이유

[정욱식 칼럼] 한반도 문제, 쟁점과 해법 (3) 대북 제재

수일 앞으로 다가온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포함해 향후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의 성패는 대북 제재 문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5년 동안 북핵 문제가 풀리지 않았던 본질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제재를 바라보는 당사자들 사이의 근본적인 시각 차이가 컸던 데에 있었다.

미국은 대북 제재를 북한의 핵 개발이 초래한 결과이자 핵포기를 강제할 수 있는 핵심적인 수단으로 간주했었다. 반면 북한은 제재는 "강대국들의 횡포"이자 미국이 공약했던 북미관계 정상화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며, 제재가 강해질수록 핵과 미사일 능력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맞섰다.

지난해 6월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의 풍경도 본질적으로는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은 대북 제재 해결은 북미관계의 새로운 수립,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완전한 비핵화, 미군 유해 송환으로 구성된 북미공동성명의 "예외"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1차 정상회담 이후 제재의 강도를 높이기도 했었다. 북한이 이에 반발했음은 물론이다. 1차 회담 이후 북미 협상의 동력이 떨어졌던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제재 문제였던 것이다.

작용과 반작용

그런데 올해 1월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워싱턴 방문 및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 이후 미묘한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월 22일 "지금은 민간 부문이 역할이 없지만, 만약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중요한 단계를 만들어내고 올바른 조건이 형성된다면, 민간 부문은 북한이 진출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2월 14일에 "제재 완화의 대가로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우리의 전적인 의도"라며, "나는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데에 매우 희망적"이라고 강조했다. 제재에 대해 폼페이오의 입장이 유연해졌다는 점은 '먼저 완전한 비핵화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검증이 이뤄진 뒤 제재를 해제한다는 뜻이냐'는 계속된 질문에 즉답을 피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질문에 담긴 내용은 폼페이오가 작년까지 스스로 밝혀왔던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 지난 18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만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댄 스카비노 트위터

하지만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도 있기 마련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제재에 유연한 입장을 시사하자 이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과 로버트 메넨데즈 민주당 상원의원이 폼페이오에게 항의와 경고를 담은 서한을 보낸 것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2월 11일 발송한 서한에서 대북 제재 완화 움직임을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 "제재를 포함해 북한에 대한 한미 양국 간 접근법의 차이는 동맹을 훼손하고 안보를 직접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문재인 정부가 제재 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을 비난하면서 "북한에 대한 일방적·다자적 제재, 그리고 어떻게 그 제재가 시행돼야 하는지에 대한 동일한 인식을 공유하기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 설득당하지 말고 오히려 한국을 압박해 대북 제재를 굳건히 해야 한다는 취지인 것이다.

대북 제재 완화 조짐에 대한 반감은 이 서한을 소개한 <워싱턴포스트>의 조시 로긴의 칼럼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2월 14일자 칼럼에서 "한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압박을 성급하게 완화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며, "이는 진정한 비핵화에 나서도록 하려는 미국의 마지막 기회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기회"를 살리려면

단언컨대, 미국이 이번에도 '제재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정말로 "마지막 기회"마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지난 역사를 복기해보면 북핵 해결에 실패한 이유는 미국이 약속한 제재 해결을 시늉만 내거나 습관적으로 제재를 강화시켜왔던 데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 완화 시사를 일제히 성토하고 있는 미국 의회, 주류 언론, 싱크 탱크,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보수 진영의 태도는 극히 유감스러운 것이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대북 제재가 절정에 달했던, 그러나 "국가 핵무력 완성"을 향한 북한의 전력질주가 있었던 2017년까지는 제재가 효과가 별로 없다는 점을 인정했었다. 그러다가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고 2차 회담도 다가오면서 대북 제재가 마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대북 제재가 완화되기 시작하면 이를 돌이킬 수 없고, 그 결과 북한은 제재 해제의 단물만 빨아먹고 비핵화는 포기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당치 않은 주장이다. 제재는 풀었다가도 얼마든지 다시 조일 수 있다. 지난 25년 간의 북핵 역사가,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가 파기한 이란 핵협정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모든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에도 북한의 이행 여부에 따라 제재를 다시 부과할 수 있도록 명시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비공식 핵보유국들인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의 사례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이들 나라가 미국 등 국제사회와 핵포기 협상을 한 사례 자체가 없다. 핵보유 자체가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1998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하면서 유엔 안보리가 제재를 일부 부과했지만, 곧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 본질적인 이유는 이들 나라가 핵포기를 공약한 적도 없었고, 미국이 이들 나라와 사실상의 동맹을 추구하면서 제재를 이행하지 않았었던 데에 있다. 북한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들이다.

부분적인 대북 제재 완화와 북한의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 획득의 맞교환은 적어도 세 행위자, 즉 문재인 정부와 김정은 정권,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 모두에게 '남는 장사'도 아니다. 이런 식의 봉합은 이들에게 정치적 자산이 아니라 부채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북 제재 유지·강화가 아니라 완화·해제가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는 더욱 강력한 수단이다. 일단 역사적으로 이러한 사례 자체가 없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에 담겼던 "정치적·경제적 관계의 완전한 정상화" 약속은 곧 흐지부지되었다. 1999년 북미간의 베를린 합의에 따른 대북 제재 완화도 상징적인 수준에 그쳤다.

2005년 9.19 공동성명 채택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는 듯 했지만,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BDA) 제재 카드를 꺼내들면서 사문화되었다. 2008년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제외하고 적성국 교역법도 종료키로 하면서 제재도 크게 완화될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미국은 별도의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제재를 유지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가 함의하는 바는 크다. 북한은 협력의 대가로 얻은 것이 거의 없다고 여겨왔던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의 비핵화 이행조치들과 상응하는 제재 완화 및 해제는 북한의 대미 불신을 완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더구나 비핵화를 하나둘씩 이행하면서 얻게 되는 가시적인 성과는 비핵화 지속의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 신뢰와 이익이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통해 비핵화를 향해 뚜벅뚜벅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도 안심하기 어렵다면 안전장치도 마련해둘 수 있다. 대북 제재 완화 및 해제와 관련해 '스낵 백(snap back)'을 도입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이는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위반하면, 완화하거나 해제했던 대북 제재를 원상복구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벌칙 조항은 제재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핵무기와 핵위협 없는 한반도"를 만들겠다는 김정은의 다짐은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들에게도 전달된 것이다. 또한 김정은은 인민들을 향해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해왔다. 이에 따라 비핵화와 경제발전, 그리고 다른 수단에 의한 안보, 즉 관계정상화와 평화체제 수립을 통한 안보 달성은 김정은 시대 북한 국가전략의 3대 축이다.

그런데 비핵화를 추구해서 좋아진 경제와 안보 환경이 비핵화를 하지 않아 또다시 나빠지면, 김정은 체제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제재 유지·강화보다 '스냅 백'을 전제로 완화·해제가 비핵화 달성에 훨씬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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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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