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란 무엇인가

[정욱식 칼럼] 한반도 문제, 쟁점과 해법(1) 비핵화와 비핵지대

흔히 한반도 문제의 해결 구도는 북한 비핵화와 미국 주도의 상응조치로 설명된다. 이게 핵심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게임의 법칙은 이처럼 단순하지 않다. 북미 간에는 비핵화의 정의와 목표에 대한 동상이몽이 여전히 존재한다. 더구나 한국이 원하는 비핵화는 오리무중이다.

이와 관련해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1월 31일(현지 시각) 스탠퍼드 대학에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선 비핵화에 관한 구체적인 정의나 공유된 합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은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되는 비핵화(FFVD)"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주창해왔지만, 북한이 이에 동의한 바도 없다고 했다. 오히려 그는 비핵화에 관한 "공유된 이해"와 "상호 수용할 수 있는 결과"는 앞으로 논의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비건이 지난 6~8일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와 "12개 이상의 의제"를 논의했다고 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비핵화의 개념과 목표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동시에 그는 합의가 어려운 난제들이 있다고도 했는데, 비핵화를 둘러싼 동상이몽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리고 이는 실무협상에서 합의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이 요구해온 "미국의 대북 핵위협의 근원적인 해소"를 위해서는 핵무기에 관한 독점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미국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동상이몽의 실체는 이렇다. 미국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FFVD나 CVID로 간주하려고 한다. 하지만 북한은 이 자체도 받아들이기 힘들 뿐만 아니라, "조선반도 비핵화는 북과 남의 영역 안에서뿐만 아니라 조선반도를 겨냥하고 있는 주변으로부터의 모든 핵 위협 요인을 제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선 물론이고 우리 사회에서도 비핵화에 관한 불균형이 너무 심하다. 북한의 비핵화 방안에 관해서는 백가쟁명이 벌어지고 있는 반면에, 미국의 대북 핵위협 해소 방안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금기시하는 경향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균형이 완화되지 않으면 "완전한 비핵화" 실현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역사상 최초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사진은 회담 이후 공동성명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AP=연합뉴스

우리가 원하는 비핵화는 무엇인가?

문재인 정부의 태도도 아쉽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에 대한 한 외신기자의 질문에 대해 아래와 같이 답변했다.

"김정은이 비핵화를 말해도 비핵화가 미국이 말하는 CVID와 다를 것이고 그래서 믿지 못하겠다는 그런 견해가 많은 것으로 안다. 일단 김정은은 나에게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나, 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김 위원장이 직접 만난 각국 정상들에게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완전한 비핵화와 전혀 차이가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미국 등 국제사회가 말하는 비핵화와 김 위원장이 말하는 비핵화가 결코 다르지 않다는 취지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설명을 여러 차례 내놓은 바 있다. 외신을 중심으로 비핵화의 개념에 대해 북한과 미국의 입장이 다르다는 취지의 보도가 연이어 나오는 상황에서 이를 불식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렇게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북미 간 비핵화의 정의에 대한 간극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문제도 있다. 한국이 추구하는 비핵화는 무엇이냐는 것이다. 미국이 말해온 CVID나 FFVD에 문재인 정부도 동의한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건 북한에만 적용되는 것인가? 아니면 한반도 핵문제의 또 하나의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핵정책에도 적용되는 것인가?

여기서 남북한 정상이 합의하고 천명한 "완전한 비핵화"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한반도"라고 할 때, 현재 한반도에 핵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는 북한이다. 이에 따라 핵무기 없는 한반도는 주로 북한의 의무 사항에 해당된다. 하지만 핵위협 없는 한반도는 한미동맹의 의무 사항과 무관할 수 없다. 핵위협 없는 한반도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미국의 핵전략 및 한미간의 확장 억제 전략도 수정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비핵화의 정의와 목표를 타자들, 즉 북미간의 협상에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되면 언제든 역진 가능성을 잉태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원하는, 그리고 인류 보편적인 가치에 부합하는 비핵화의 정의와 목표를 공론화함으로써 대안을 제시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지대조약이 필요한 이유

유력한 대안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의 최종적인 목표를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 체결에 두는 것이어야 한다고 본다.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은 남북한이 "비핵지대 내" 당사자들로 조약을 체결하고,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공식적인 핵보유국들이 "비핵지대 외" 당사자들로 이 조약에 참여하는 구도를 일컫는다. 이러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게 가장 완벽에 가까운 북핵 문제 해결 방안이라는 점이다. 북한이 과거와 현재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하더라도 미래의 핵까지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한에는 미래에도 기술, 자원, 인력이 남아있게 될 것이 때문이다.

비핵지대 조약 체결은 북한의 이러한 잠재력이 핵무기 개발로 이어지는 것을 봉쇄하는 데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조약이 체결되면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뿐만 아니라 남북한 핵검증 체제 구성에 따라 한국의 검증도 받아야 한다.

또한 북한의 비핵화 약속에 국제법적 구속력도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곧 북한의 조약 위반시 더욱 강력한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핵 역사상 이러한 전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전임 정부 때보다 강력한 합의를 원하는 트럼프 행정부에게도 분명 매력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둘째, 미국의 대북 핵위협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핵무기와 그 투발수단을 완전히 없애지 않는 한, 북한이 요구해온 "미국 핵위협의 근원적인 해소"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미국의 완전한 핵폐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비핵지대 조약이 필요하다.

이 조약을 체결하면 미국의 대북 핵 불사용 및 불위협 약속에는 국제법적 구속력이 부여되고, 미국이 한반도에 핵무기 및 그 투발수단을 배치, 전개, 경유할 수도 없게 된다. 이는 곧 평화협정 체결시 가장 뜨거운 감자라고 할 수 있는 주한미군 문제 해결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남북미중이 "전략 자산 없는 주한미군"이라는 상호만족할 수 있는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여지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셋째, 동북아 다자 안보의 초석을 놓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이 체결되면 일본 역시 비핵지대 조약 참여에 강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3+3', 즉 남북한과 일본이 '지대 내' 국가로, 미국, 중국, 러시아가 '지대 밖' 국가로 동북아 비핵지대 창설의 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러시아가 INF 조약 파기를 기정사실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접근은 대단히 중요하다. 미국이 중단거리 지대지 미사일을 만들면 한국과 일본은 유력한 배치 후보지가 될 수밖에 없는데, 한반도, 더 나아가 동북아 비핵지대 창설은 이러한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당장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 체결을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이를 공론화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간의 동상이몽을 완화하고 공동의 목표를 정립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평화협정에 비핵지대 조약 창설을 명기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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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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