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일본보다 못한 한미 동맹 관계

[기고] 한미동맹 관계 정상화없이는 한반도 평화 요원하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분단 이후 최대의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기대를 갖게끔 한다. 온갖 무지갯빛 추측이 춤을 춘다. 빅딜이 있으리라는 사람, 북미 간 종전선언이나 평화체제 이행을 위한 로드맵이 나온다거나, 향후 남북 간 교류가 본격화 될 것에 대비해 대북 사업을 준비한다는 사람들도 보인다. 미군 감축이나 철군 가능성 등에 대한 언급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비핵화와 관련해 굳건한 한미동맹을 강조하면서 남북 간 거리 좁히기와 교류 협력의 물꼬를 트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청와대는 운전자론을 앞세우면서 조심스런 행보를 보인다. 그런데도 미국이나 국내 보수층은 남북관계가 비핵화보다 빨리 진전되는 것 같다고 기회만 있으면 지적하고 경고한다.

비핵화를 앞둔 시점에서 분명해지는 것은 비핵화에 대해 북미 간에 기본적인 개념 정리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협의나 협상이 이뤄지기 위한 첫 단계가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 비핵화에 대한 북미간의 시각이 일치해야 그 이후의 논의가 가능함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지금까지 비핵화를 놓고 드러난 양자 간 차이는 미국은 북한만의 비핵화를, 북한은 남한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문제도 포함되는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한다는 점 정도다. 두 시각 차이를 극복하는 건 간단치 않다. 북한 핵이 불법이지만 남한에 대한 미국의 핵 지원이나 주한미군은 합법이라서 두 가지를 동일선상에 놓고 대화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북한은 미국의 핵위협이 자체 핵무기 개발의 원인이라는 점을 앞세워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한다. 양쪽의 견해가 접점을 찾기 힘들다는 것은 한 눈에 보인다.

단계적, 동시 이행으로 나뉘는 비핵화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 또한 간단치 않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측근 가운데는 비핵화가 향후 10~2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내다보는 이도 있다. 더구나 공화당, 민주당 의원 상당수가 트럼프의 비핵화 추진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트럼프가 갖가지 스캔들에 연루되면서 민주당은 트럼프 탄핵, 기소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미 정치권의 난기류는 비핵화 추진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양자 간 합의가 어느 선까지 나올지 속단하기 어렵다.

다음, 한미 동맹 문제다. 미국 조야는 기회만 있으면 주한미군이 한반도 평화체제 달성 이후에도 동북아의 안전을 위해 현상 유지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미 의회는 주한미군을 2만2000명 이하로 감축 시 반드시 의회 동의를 받도록 법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트럼프는 미국 고립주의 정책을 앞세워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도 언급한 바 있지만, 그 실행 여부는 불투명하다. 문제는 주한미군의 주둔 근거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중국은 고고도방위미사일시스템, 즉 사드 문제를 내세워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를 취한 바 있고, 지금도 한국행 단체 관광 일부를 제한하고 있다. 그 결과 중국 관광객의 해외 방문국 순위에서 사드 이전에 3위였던 한국이 지금은 15위로 내려앉았다. 중국은 한미동맹이 현재와 같이 유지될 경우 안보상 불이익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국 관광 제한으로 한미동맹의 약한 고리인 한국을 압박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언론은 북한 관광을 촉구하는 보도를 대대적으로 하고 있는데, 유엔 대북 제재에 관광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노린 것과 함께 여러 가지를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한미군 계속 주둔에 대해 한미는 물론 북한도 이의를 제기치 않는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중국은 한국을 계속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대비, 즉 한미동맹의 정상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미국이 옛 소련과 맺었던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폐기를 주장하고 나온 데는 한국 등에 중거리핵무기를 배치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노림수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동맹과 관련한 미국의 한국 압박은 더 가중될 전망이다.

▲ 지난 2017년 11월 7일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캠프 험프리스에서 한반도 상황과 관련한 브리핑을 듣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한미동맹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는 미 군사력을 한국에 배치하는 것을 미국의 '권리(right)'로 규정해 놓았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은 이 4조의 부속협정 성격이고 방위비분담금협정(SMA)은 SOFA 5조 1항(미측은 한측에 부담을 과하지 아니하고, 주한미군 유지에 따른 경비를 부담한다)의 예외적, 특별 조치를 규정한 협정이다. 이처럼 SOFA와 SMA의 성격은 그 상위법인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의 특성을 담고 있어 미국이 갑, 한국이 을인 한미동맹의 기울어진 운동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국내 보수 전문가들이 입을 모으는 주한미군 현상 유지도 간단치 않다. 우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면 유엔군은 철수해야 한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1953년 11월 조인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그 위상을 보장받은 뒤, 1978년 11월 창설된 한·미 연합군사령부(CFC) 소속이 되면서 정전협정과 관계없이 계속 남한지역에 주둔할 장치를 확보했다. 한미 두 나라는 2018년, 전시작전지휘권을 한국군이 갖게 될 경우 주한미군 사령관이 CFC 부사령관을 맡는 것으로 합의했으나, 그렇게 되어도 CFC 부사령관은 한국군 CFC 사령관이 행사하는 권한보다 더 강력하고 독립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합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해외파병 역사에서 외국군의 지휘를 받지 않는 것을 최대의 전통으로 자랑하고 있다.

최근 한미가 합의한 제10차 방위비분담금 협상은 인상 요인이 무엇인지 불투명한 가운데 이전보다 8.2%(1조 389억 원)증액되어 1조원이 넘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이한 발언도 이어지고 있는데 한국 측에서는 이렇다 할 반론이 나오지 않는다. 현재 주한 미군이 사용하지 못한 방위비분담금의 미 집행액은 약 9422억 원에 달하고 이와 별개로 방위비분담금 중 미국이 현금으로 지급 받아서 10년 이상 사용하지 못한 현금 군사건설비 약 2884억이 주한미군 계좌에 그대로 남아있다.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은 총액 규모로 하는 주먹구구식 방식인데 비해 일본의 경우 지원 분야를 규정해 지출항목을 구체적으로 협상하는 방식이다. 한미 군사관계가 얼마나 기울어진 운동장인지가 드러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불평등성은 필리핀, 일본의 미국과의 군사동맹 내용을 보면 더 확연히 드러난다. 필리핀과 미국의 상호방위협정에 따르면 미국은 필리핀에 영구적인 군 주재나 군사기지를 만들 수 없고, 핵무기의 필리핀 진입도 금지된다. 미군은 이 협정에 따라 필리핀 정부가 허가하는 지역, 주로 필리핀군에 의해 소유, 통제되는 지역과 시설만을 이용할 수 있다. 환경 보호 조치 등에서도 미군은 필리핀 법규 등을 준수해야 한다. 이 협정은 10년이 시한이며 어느 한 쪽이 종료의 의사를 통보한 뒤 1년이 지나 폐기될 때까지 유효하다. 한국이 한미 군사 관계를 필리핀-미국의 군사동맹과 같은 평등한 관계로 정상화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중국이 사드 보복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현재와 같이 미국이 갑인 군사동맹 관계는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역행할 여지가 크다.

한반도 또는 북한 비핵화 논의 과정에서 한국이 돌다리도 두드리는 식으로 신중한 태도를 취할 뿐 주권국으로서 당당한 협상 조건을 내세우지 못하는 데는 불평등한 한미동맹 관계가 그 원인의 하나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장악하고 있는 유엔군사령부가 남북철도 및 도로 개설 작업에 제동을 거는 작태를 보인 적이 있다. 미국이 주요 문제에서 한국은 안중에 없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로 미뤄 보아 향후 남북한 관계 개선이 진전된다 해도 미국이 한미군사동맹을 앞세워 그것을 무력화할 개연성을 부인할 수 없다. 국가 간 관계에서 궁극적인 근거는 조약이나 협정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향후 남북한이 군사적 충돌이나 전쟁 불가를 외친다 해도 미국이 한국에 대한 군사적인 ‘권리’를 행사하려 덤벼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야 한다.

북미, 남북한 관계 등에 대해 미국 정치권과 언론은 모든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미국 이익 극대화를 주장하는 논리를 펴고 있는데 반해 한국의 정치권과 언론은 독자적인 논리나 주장을 거의 내놓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은 미국의 입장에서 비핵화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태도를 되풀이 하고 있다.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이야기하면서도 국가보안법의 개폐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 이런 식으로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 정착에 적극 기여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당을 포함한 정치권, 학계, 시민사회 등이 적극 나서서 한미동맹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 정상화에 노력하고, 국보법과 같이 국제사회가 지탄하는 악법 폐기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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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전 한겨레 부국장, 전 한성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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