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나무처럼 살다 가신 김복동 할머니"

슬픔 속 제1372차 수요시위… "그 삶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는 떠났지만 평화비(위안부 소녀상)가 서 있는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는 이번주 더 많은 시민들이 모였다. 이들은 할머니의 못다 이룬 뜻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30일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372차 정기 수요시위가 열렸다. 이날 시위는 한 날 별세한 김복동 할머니와 이 모 할머니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됐다. 시위 현장의 앞쪽에는 김복동 할머니의 영정 사진이 놓여 있었다.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은 수요시위 경과보고에서 "할머니께서 고단한 삶을 마감하시면서 일본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받지는 못하셨지만, 그 뜻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아신다면 훨훨 날아가실 수 있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30일 제1372차 수요시위가 열렸다. 고 김복동(왼쪽) 할머니의 영정이 시위 현장 앞쪽에 놓여있다. ⓒ연합뉴스

한 사무총장은 "월요일(28일) 오전에 이 모 할머니가, 그리고 저녁에 김복동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두 분 모두 (연세가) 90이 넘으셨다. 참으로 오랜 시간 힘들게 사셨다. 그 삶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김복동 할머니에 대해 "본인의 피해임에도 불구하고 50년 동안 말 한마디 못하고 스스로 죄인인 듯 힘겹게 사셨는데, 1990년대 초반 피해 사실을 알리고 일본이 범죄를 저지른 것이며 공식적으로 사죄와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셨다"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애썼던 고인의 삶을 회고했다.

한 사무총장은 "김복동 할머니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문제 해결이 난망해 보이자 이 일을 괜히 시작했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고 한탄하신 적이 있다"며 "저희도 수요시위가 1372차까지 올 줄 몰랐다. 그렇지만 그 오랜 세월 동안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았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그는 "전시 성폭력 문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전 세계에서 자행되고 있는 현재진행형 범죄"라며 "김복동 할머니는 그런 피해를 받은 여성들에게도 용기를 주시고 어떻게 싸워 나가야 할지 지침이 되어 주셨다"고 말했다.

한 사무총장은 "김복동 할머니는 그렇게 자신의 아픔을 딛고 큰 나무와 같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이는 우리뿐만 아니라 콩고, 우간다, 이라크 등의 피해 여성들에게 '우리도 저렇게 싸워야겠구나'라는 마음을 갖고 활동하게 만들었다"며 고인을 애도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성명을 통해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이자, 여성 인권운동가이신 김복동 할머니께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워달라 말씀하시며 일본 정부를 향한 강한 분노를 표현하셨다고 한다"며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따라서 우리 정부도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문제 해결에 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올해는 3.1운동이 100주년을 맞이한 해이다. 하지만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할머니들은 아직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지 못했다"며 "할머니들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도 싸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김복동 할머니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함께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 1372차 수요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와 이 모 할머니를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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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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