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교수가 알려주는 이 결정적 장면

[최재천의 책갈피] <서민 교수의 의학세계사>

"너무 많은 양의 소변을 본다." 독일의 학자 게오르크 에버스 소유라서, '에버스 파피루스'라 이름 붙은 B.C. 16세기 이집트 파피루스에는 당뇨병 증상이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미라 속에서 발견된 이 문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의학 문서가 됐다. 내용은 꽤 구체적이었다. 어린이 요실금에 대한 부분이다. "점토를 끓이면 작은 알갱이가 되는데, 요실금을 호소하는 아이에게 이걸 줘라. 나이 많은 아이는 그냥 삼키게 하라."

'본업은 의대 교수, 부업은 지식탐험가'라는 서민 교수가 이번엔 〈의학세계사〉를 이야기한다.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느낌이 올 것이다. 책 속에는 길잡이가 따로 있다. 알프스에서 발견된 5,300년 전의 신석기 시대인, '외치'다. 단조로움을 극복하는 기제가 됐다.

통속적인 한국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의 임신을 알리는 장면이 있다. 입덧이다. 아침에 더욱 심해서 '아침병'이라고도 불린다. '입덧을 좀 줄일 수는 없을까?' 1950년대에 진정제로 만들어진 '탈리도마이드'가 입덧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1956년 크리스마스 날, 독일의 소아유전학자 비두킨트 렌츠는 그날 태어난 여자아이의 팔다리가 유난히 짧은 것을 발견했다. 1961년경에 이르자 비슷한 사례가 그냥 넘기기 힘든 정도가 됐다. 기형아를 출산한 엄마들이 하나같이 탈리도마이드를 먹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연구결과를 제약회사에 알린 뒤 판매를 중단하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엄마들의 증언만 있었을 뿐 확실한 증거가 없었기에, 제약회사의 약 판매를 제지하지는 못했다. 그때쯤 기형아는 1만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만큼은 예외였다. 전적으로 프랜시스 켈시라는 미 식품의약품안전청(FDA) 심사관 때문이었다. 그는 임상시험이 부족했다고 보고 약의 미국 내 판매허가를 거부했다. 세상은 이 사건으로 FDA와 같은 기구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약의 시판을 허용하는 데 있어 임상시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여기까지라면 보통 의학사 책과 유사할 것이다. 서민 교수는 역사와 오늘을 설명한다. 그래서 요즘 통용되는 임상시험 과정을 알린다. 먼저, 전(前) 임상시험이다. 신약후보물질을 동물에게 먼저 사용해보는 과정이다. 다음은 사람이 대상이다. 총 4단계로 이루어진다. 단계별로 엄격해지고, 마지막 4단계는 시판 후 약에 대해 전반적인 조사과정이다. 그리고 나치의 생체실험과 '뉘른베르크 강령'을 덧붙인다.

▲ <서민 교수의 의학세계사>(서민 지음) ⓒ생각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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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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