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군사력 줄이자더니 국방비 11년만 최대 인상?

[정욱식 칼럼] 남북한 선군협력과 국방개혁 2.0의 엇박자

4월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 공동선언을 계기로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그 중심에는 남북한의 '선군(先軍) 협력'이 자리잡고 있다. 이전까지 가장 지체되었던 군사 분야에서 먼저 획기적인 돌파구를 만들어내겠다는 의지가 고스란히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평양 공동선언의 1조를 군사문제 해결로 두면서 '군사 분야 이행 합의서'를 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명시한 것은 이러한 의지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이는 두 가지의 도그마를 극복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군비통제 도그마'이다. 이전까지는 정치적 신뢰구축→군사적 신뢰구축→군비통제가 마치 군사 문제 해결의 교과서처럼 간주되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치적 신뢰구축과 군사적 신뢰구축, 그리고 초보적인 운용적 군비통제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또 하나는 '선 비핵화 도그마'이다. 남북한의 군비통제는 비핵화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것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선언적으로 다짐한 상태에서, 그러나 비핵화 초기 단계에 군사문제 해결을 도모하고 있다. 이는 적어도 남북한 사이에서 부전(不戰)의 맹세와 불가침 약속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함으로써 비핵화 실현에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미가 담고 있다.

기실 군사 분야는 유엔 및 미국의 대북 제재가 촘촘하게 짜여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한국이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러한 구조적 제약, 즉 남북경협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과거 햇볕정책의 핵심 기조였던 선경후정(先經後政, 경제협력을 먼저 추진해 정치군사 문제의 해결도 도모한다는 의미)이 선정후경(先政後經)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이고도 미래지향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당장 제기되는 문제가 있다. 국방개혁 2.0과의 엇박자가 바로 그것이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이번 군사 분야 합의서에선 "단계적 군축"과 "무력 증강" 문제는 추후 협의 과제로 담겨두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의 국방부가 7월 27일 발표한 '국방개혁 2.0'의 내용을 보면 올해 남북한이 합의한 사항과 상당한 긴장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킬체인과 한국형미사일방어체제(KAMD)와 대량응징보복으로 이뤄진 '삼축체계'는 "정상적"으로 추진키로 했는데, 이는 남북 정상과 북미 정상이 합의한 "완전한 비핵화"와 모순된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한반도 안보 환경의 진전 여부에 따라 일부 조정될 가능성을 열어놓겠다"고 한 만큼, 더 늦기 전에 전면적인 재조정에 나서야 할 것이다. 즉,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 삼축체계를 계속 추진하기보다는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추동하기 위해서라도 삼축체계의 축소지향적인 조정이 요구되는 것이다.

국방부는 또한 대규모 국방비 증액 계획도 거의 그대로 유지키로 했었다. 국방부는 2019년 국방예산으로 올해 대비 8.6% 증가된 46조 9000억 원을 요구하는 등 5년간 국방개혁에 필요한 예산을 약 270조 7000억 원으로 추산했다. 별다른 변동 없이 이러한 계획이 추진되면 2023년 한국의 국방비는 60조 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고, 일본의 국방비마저 추월하게 될 것이다. 이는 남북한이 합의한 "단계적 군축" 정신과 부합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부는 국방개혁 2.0을 전면적으로 조정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크게 두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는 국방정책 목표의 재설정이다. 북한 급변사태나 한반도 유사시 무력 통일을 달성하겠다거나 유사시 속전속결식으로 평양을 점령하겠다는 식의 국방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방 목표는 비현실적이고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자해적이기까지 하다. 유사시 평양점령이나 무력 통일을 추구하는 것은 한반도를 끝나지 않는 전쟁으로 내몰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여 대안적인 국방 목표가 필요하다. 두 단계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 단계는 평화체제-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의 과도기적인 목표로서 '방어 충분성', 혹은 '억제 충분성'을 고려해볼 수 있다. 북한을 점령할 수 있는 수준의 군사력 건설을 자제하면서도 북한의 공격을 억제할 수 있는 수준의 군사력 및 군사 태세 정비가 이에 해당된다.

그 이후, 즉 평화체제-비핵화가 실현되는 단계에선 남북한 '공동안보', 혹은 '협력안보'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 특히 이 단계에 접어들면 남북 연합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남북 연합 시대에 걸맞은 남북 군사협력 방안도 다양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는 국방비 동결이다. 가령 향후 5년간 국방비를 올해 수준인 43조 4000억 원으로 동결하고, 2029년을 목표 연도로 삼아 현재 GDP 대비 2.5% 수준을 2.0% 수준으로 맞춰나가자는 것이다. 이러한 국방비 조절 계획은 판문점 선언과 평양 공동선언의 이행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하면서도 대북 억제력 유지 및 미래 불확실한 위협 대비에도 부합할 수 있다.

국방비 조절은 '인간안보' 증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향후 5년간 국방비를 점차적으로 GDP 대비 2.9%로 늘릴 때와 동결할 때에의 누적액의 차이는 약 60조 원에 달한다. 또한 그 이후에 GDP 대비 2.0% 수준으로 맞춰나가면 10년간 누적액의 차이는 250조 원 안팎에 달할 것이다. 누적액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지게 됨은 물론이다.

이렇게 절약한 예산을 복지, 교육, 일자리 창출, 자영업 지원책, 미세먼지를 비롯한 환경 대책에 사용한다면, 국가안보의 내실을 기하면서도 인간안보도 튼튼하게 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다.

오늘날 한반도에는 커다란 기대와 절망이 교차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높은 반면에 민생 위기의 절망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그래서 평화배당금이 필요하다. 평화를 공고히 하면서도 지금까지 전쟁 대비에 써왔던 예산의 일부라도 민생 문제 해결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 이 글은 김종대 의원실과 참여연대 공동주최로 10월 2일 국회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의 시대, 국방개혁 2.0 평가> 토론회에 제출한 토론문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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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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