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1월 초에 '당일치기'라도 서울 답방해야"

[정세현의 정세토크] "비건, 판문점서 최선희 만났을 가능성"

지난 19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방한했다. 인천국제공항에 들어서자마자 대북 인도적 지원 카드를 꺼내며 북한과 협상에 대해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낸 비건 특별대표는 20일 판문점을 전격 방문했고 이어 21일 한미 워킹그룹 회의를 통해 오는 26일로 예정된 남북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이 예정대로 열리게 됐다고 밝혔다.

비건 특별대표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미국이 정치 일정이 있어서 좀 쫓기게 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정 전 장관은 "그동안 미국은 북한에 비핵화 상응조치에 대한 아무런 전망도 주지 않으면서 일단 압박하는 식으로 일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북한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단식 농성과 비슷하게 버티다 보니 인도적 지원과 같은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또 비건 특별대표가 판문점에서 북한 관계자와 접촉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관측했다. 그는 "비건 특별대표가 오전 10시에 판문점에 올라갔다가 오후 1시에 나왔다고 하던데 이정도 시간이면 누군가를 만나고 왔을 수 있다"며 "비건 특별대표가 19일에 입국하면서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았나. 이 메시지가 북한으로 하여금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게 만들지는 않을지라도, 비건-최선희의 만남을 성사시킬 정도는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내 서울 방문과 관련, 정 전 장관은 "서울에서 꼭 2박 3일 동안 있을 필요는 없다"며 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생각을 직접 들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은 "지난 5월 26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의 정상회담처럼 하루만 해도 된다. 사실 2박 3일 동안 정상회담을 한다고 해도 실제 회담은 하루에 다 하지 않나"라며 "남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야기를 정확히 듣고 가는 것이 김 위원장의 전략 수립에도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뜻을 실무진한테 듣는 것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듣는 것이 훨씬 더 깊이 있는 내용을 전달받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실무진으로부터 보고를 받으면 부정확한 내용이 전달될 수도 있다"며 "내년 1월 2일에 북미 정상회담을 할 것이 아니라면 1월 초에 서울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인터뷰는 21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판문점에 들렀습니다. 미국에서는 애초에 비건 특별대표의 판문점 방문을 공개하지 않으려 했다고 하는데요. 일단 공식적으로는 공동경비구역(JSA)의 변화된 모습을 시찰하기 위해 간 것이라고 하던데 비건 특별대표가 이 시점에 판문점에 간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세현 : 사실 시찰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비건 특별대표가 오전 10시에 판문점에 올라갔다가 오후 1시에 나왔다고 하던데 이정도 시간이면 누군가를 만나고 오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든 누구든 북한 관계자를 만나고 온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비건 특별대표가 19일에 입국하면서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았습니까? 이게 북한에 전달하는 메시지가 됐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메시지가 북한으로 하여금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게 만들지는 않습니다만, 비건-최선희의 만남을 성사시킬 정도는 됐을 수 있습니다. 또 양측 실무진들의 만남으로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간의 회담 동력이 살아난다면 이는 정상회담 동력으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정치 일정이 있어서 지금 오히려 좀 쫓기게 된 것 같습니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에 비핵화 상응조치에 대한 아무런 전망도 주지 않으면서 일단 압박하는 식으로 일을 진행해왔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단식 농성과 비슷하게 버티다 보니 인도적 지원과 같은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려면 미국이 북한의 대북 제재를 완화해주겠다는 일종의 보장이 필요하지 않은가요?

정세현 : 북한 입장에서는 그런 부분에 대한 탐색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비건 특별대표는 제재 완화에 대해 확실하게 보장해줄 수 있는 인사는 아닙니다. 김영철-폼페이오의 회담에서나 그러한 그림을 그릴 수 있죠. 그래서 비건 특별대표가 제재 완화 등의 이야기가 아닌 인도적 지원 이야기를 꺼낸 것으로 보입니다.

또 미국 입장에서도 이제와서 유엔 안보리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완화를 공식적으로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인도적 지원 문제부터 꺼내보는 것이죠. 어제 실제로 비건-최선희 만남이 이뤄졌다면 어디까지 이야기가 됐는지가 중요합니다. 즉 최선희 부상의 반응이 어땠는지가 앞으로 북미 간 협상을 전망해볼 수 있는 핵심 요인입니다.

트럼프 정부는 10월 이후에 제재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폼페이오 장관이 새해에 빠른 시일안에 정상회담을 하자고 했고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2차 북미 정상회담 전에 북한에 핵목록을 요구하지 않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미국이 북한에 무엇을 해줄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었죠.

이런 상황에서 김영철 통전부장이 이들의 공개된 발언만 믿고 다시 뉴욕에 갈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사전 탐색 작업이 필요하고, 그 채널은 비건-최선희가 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미국이 북한에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치를 주지 않을 경우 북한이 '플랜B'를 생각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는데요.

정세현 : 북한은 지난 11월 8일 김영철 통전부장과 폼페이오 장관 간 고위급회담이 불발된 이후 자력갱생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또 유엔에서 북한에 대한 인권결의안이 채택된 것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고요.

그러다 지난 16일 북한 외무성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은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도된 담화에서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제재 압박과 인권 소동의 도수를 전례없이 높이는 것으로 우리가 핵을 포기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타산하였다면 그보다 더 큰 오산은 없다"면서 "오히려 조선반도 비핵화로 향한 길이 영원히 막히는 것과 같은 그 누구도 원치 않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스티브 비건(왼쪽)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21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워킹그룹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런 언행을 보면 북한이 실제로 '플랜B'를 준비한 것 같긴 합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국가라면 어디든 '플랜B'는 가지고 있는 겁니다. 이걸 실제로 사용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죠. 그런데 아직 가동단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또 북한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자신들이 이른바 '벼랑 끝 전술'을 쓰면 미국이 뒤에서 슬그머니 다가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걸 노리고 '플랜B'를 드러내고 있는 것일수도 있죠.

즉 북한이 '플랜B'를 가동할 수 있다는 식으로 메시지를 내놓으면 미국이 움직일 거라는 북한의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비건 특별대표가 한국에 오자마자 인도적 지원이라는 메시지를 꺼내기도 했고요. 결과적으로 미국의 대북 판단은 틀렸고 북한의 대미 판단은 맞은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북핵 문제를 역사적으로 되돌아보면, 미국이 그동안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고차원적인 전략을 쓴 것 같지만, 사실 실제로 전략이라고 말할 것도 별로 없었습니다. 북한이 죽기살기로 덤비면 슬그머니 뒷문을 노크하는 경우가 많았죠.

프레시안 : 북미 간 협상이 지지부진 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내년 1~3월에 비핵화가 본 궤도에 오르느냐가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요.

정세현 : 미국 하원의 다수당이 민주당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그런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민주당이 하원을 열자마자 그러지는 못하겠지만, 트럼프 대북 정책에 하나 둘 씩 제동을 걸 가능성은 높습니다. 그러니까 민주당이 사사건건 제동을 걸기 전에 북미 간 2차 정상회담을 해야 하고, 이를 통해 비핵화와 상응 조치에 대한 로드맵이 나와줘야 합니다.

북미 2차 정상회담에서는 일단 중요한 원칙만 합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너무 구체적인 부분까지 합의하려고 하면 그건 '액션 플랜'이나 다름없으니, 정상 수준에서는 테두리만 정해주고 뒤이어 북미 고위급 회담을 열어서 구체적 플랜을 짜야 합니다. 이게 2월 내에 이뤄지는 것이 가장 좋죠.

물론 실제 이렇게 된다고 해도 구체적인 이행에는 난관이 많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력을 가지고 밀고 나갈 수 있는 것부터 밀고 나가기 위해서라도 내년 초에 정상회담이든 합의든 일정한 결과물이 있어야 합니다.

프레시안 : 합의 이행과 관련해서 북핵 검증에 중국이 같이하면 검증 절차가 보다 원활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는데요.

정세현 : 미국 단독 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 핵 시설 검증에 들어가면 객관적으로 검증이 완료됐음에도 북한에 "더 있는 것 아니냐, 숨기고 있는 것 없냐"라는 식으로 나올 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우려하는 지점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그래서 북한은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치가 없을 경우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여기서 중국이 검증에 함께하면 미국이 일방적으로는 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면 북한도 미국 단독으로 하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심할 수 있고요. 그렇게 되면 검증 과정이 보다 부드럽게 진행될 수 있겠죠.

김정은, 당일치기라도 서울 와야

프레시안 : 올해도 이제 열흘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요. 연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남한 방문도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보입니다.

정세현 : 그런데 서울에서 꼭 2박 3일 동안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지난 5월 26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했던 정상회담처럼 하루만 해도 됩니다. 사실 2박 3일 동안 정상회담을 한다고 해도 실제 회담은 하루에 다 하지 않습니까? 비행기로 이동하면 큰 번거로움 없이 진행할 수 있습니다.

▲ 지난 5월 26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북한이 김정은 위원장의 안전이라든가 아니면 김 위원장의 방남을 반대하는 남한의 시위를 목도할 것이 우려돼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면 한라산을 간다든가 하는 행사를 대폭 축소하고 정말 회담만 하면 됩니다. 아침에 와서 오전에 회담하고 같이 점심 먹고 오후에 떠나는 식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계속 강조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에 오면 말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진정성 측면에서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도 그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죠.

또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서도 남한에 왔다 가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워딩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고 북한의 이야기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건 남한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남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야기를 정확히 듣고 가는 것이 김 위원장의 전략 수립에도 도움이 됩니다. 이야기를 정확하게 들어야 비핵화 프로세스를 시작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어떤 상응 조치를 받아낼 수 있을지 제대로 전망하지 않겠습니까?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뜻을 실무진한테 듣는 것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듣는 것이 훨씬 더 깊이 있는 내용을 전달받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실무진으로부터 보고를 받으면 부정확한 내용이 전달될 수도 있습니다. 김 위원장이 정확한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여과 없이 트럼프 대통령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내년 1월 2일에 북미 정상회담을 할 것이 아니라면 1월 초에 서울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프레시안 : 김 위원장이 결국 올해 내려오지 않는다면, 신년사를 통해서라도 무엇인가 입장을 내놓지 않을까요?

정세현 : 북미 정상회담이 완전히 물 건너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도 미국 측의 온당한 자세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보낼 겁니다. 갑자기 핵-경제 병진 노선으로 돌아가겠다, 미사일 발사하겠다는 식의 어리식은 언행은 하지 않을 겁니다.

북미관계에서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남북관계에서도 '우리 민족이 마주잡은 손을 놓지 말고 민족의 번영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프레시안 : 북미 간 협상이 교착 상태이긴 하지만 제재 아래에서라도 남북관계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일부에서는 유엔 안보리 제재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북한에 원유를 보내자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정세현 : 제재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자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실현되기 어려워 보입니다. 지난 8월 남북 철도 연결을 위한 북한 지역 철도 시범 운행을 실행하려다가 취소된 이유가 철도에 기름을 싣고 들어가는 것에 대해 미국이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유를 지원하겠다고요? 쉽지 않을 겁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 편만 들어서는 안됩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잡아 놓았는데 미국이 여기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북핵 문제는 이 문제의 출제자인 미국이 "이정도면 됐어"라고 판단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수험생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면 안됩니다. 출제자와 수험생 양쪽을 왔다갔다 하면서 출제자가 후하게 채점해주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가동 문제도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 미국에 사안 별로 풀어가자는 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미국이 남북관계와 관련해 계속 발목을 잡아두는 것으로 비춰지면 국민들이 미국에 대해 달리 생각할 수 있으니, 한미관계를 계속 긍정적으로 이어 나가려면 일정 부분 조치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 문제를 접근할 필요도 있습니다. 우리 중소기업들의 생명선이나 다름없는 대북 진출은 허용해줘야 하지 않겠냐, 금강산 관광만 해도 현대뿐만 아니라 협력업체들이 많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남한 민생에도 영향이 있다고 설득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양해를 구하는 자세로 하나씩 가져가야 합니다. 그렇게 미국의 체면을 세워줘야 미국도 북핵 문제 해결에서 심통을 부리지 않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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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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