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관사의 죽음…진단서 없어 산재 아니다?

[추적] 1년 3개월 전 스스로 삶 마감한 고 이재민 기관사 사건 그 후

지난해 3월, 정신질환을 앓던 기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가 큰 주목을 받았다.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고, 기관사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처우에 대한 얘기들이 공론장에 등장했다. 그 후 1년 3개월이 지났다. 해결된 것은 없었다. 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악몽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이라는 소견을 밝힌 전문가들이 있음에도, 근로복지공단은 두 차례나 산재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두 번에 걸친 산재 불승인…왜?

지난해 3월 12일 오전 7시 55분 무렵, 업무 교대를 한 고(故) 이재민 기관사는 선로로 내려가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5·6·7·8호선)의 승무일지에 따르면 전날 오후 4시에 출근해 저녁 운행을 끝내고 오후 9시 이후 기지로 들어가 취침한 이 기관사는, 그다음 날 새벽 5시에 정상적으로 출근해 자살 직전까지 주어진 모든 업무를 마친 것으로 돼 있다. 전날 밤, 52.3Km, 51개 역에 달하는 5호선 긴 지하 터널(전 구간 지하)을 달리며 5시간 정도 홀로(1인 승무제) 운전석에 앉아 있던 그가 운행 중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증빙된 것이 없어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그가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아왔고, 두 차례나 병원을 찾아 정신과 진료를 받았으며, 병가를 낼 때 "공황증"이 있다고 회사 측(서울도시철도공사)에 밝혔다는 점이다. 그러고 나서 갑자기, 골프 연습을 하러 간다는 말을 남긴 채, 그는 충동적으로 선로에 내려가 맞은편에서 오는 지하철에 몸을 던졌다.

산업재해 여부를 따지는 근로복지공단은 이 기관사의 유가족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를 통지했다. "재해 내용, 의무 기록 등을 볼 때 전형적인 공황 발작을 경험할 경우 당연히 나타나야 할 기술이 없는 등 공황장애를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낮고, 사망 사고 전 공황장애의 진단이 없으며, 사후에 공황장애가 추가돼 공황장애로 인한 증상이 불명하여 불인정된다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판정에 따라 유족 급여 및 장의비(를) 부지급 처분하였다"는 것이다.

"공황장애의 진단 기준에 미흡하고 일반적으로 공황장애는 증상 자체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인데 그런 점이 부족해 공황장애의 진단은 확실치 않음"이라는 전문위원의 소견도 붙였다. 이 기관사의 유족은 재심의를 청구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지난 7월 20일 산재보험재심사위원회는 근로복지공단의 주장을 인정해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은 정당하다"는 이유로 유족의 재심사청구를 기각했다. 유족들은 절망감을 느꼈다.

▲ 많은 기관사들이 공황장애와 유사한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프레시안(박세열)

생전에 질환 호소…그런데 "특별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었다"?

이 기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약 10개월 전인 2011년 5월 24일, 병원 진료를 통해 사실상 공황장애를 확진받았다는 것이 유족과 노조의 주장이다. 당시 이 기관사는 회사에 "공황증"이라는 사유를 통보한 후 병원 치료를 받았었다. 그러나 산재불승인 재결서에 따르면 공단 측은 당시 "(이 기관사가 병원 치료를 받은 후 제출한) 진단서의 병명은 '어지러움, 긴장 두통, 기음양허증'으로 확인돼 (공사 측이) 피재자(이 기관사)의 정신질환에 대한 특별한 관리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고 적고 있다. "공황증"이라고 해서 살펴봤으나 "공황증"이 아니었다는 논리다.

이 치료와 관련해 그해 6월 2일 발행된 진단서에는 임상적 추정 병명으로 '어지러움', '긴장 두통', '기음양허증(기와 음이 모두 소진돼 열이 나고 숨이 차며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마르는 증상을 수반)' 등이 적혀 있다. 공단은 이를 토대로 이 기관사가 공황장애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설사 이 기관사 진단서에 적시된 병명인 기음양허증과 공황장애가 다른 질병이라고 전제하더라도, 당시 병원 치료를 받고 온 이 기관사에 대해 사측이 "정신질환에 대한 특별한 관리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었다"고 한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수백 명을 실은 지하철을 운행하는 기관사의 '어지러움', '긴장 두통', 심지어 '기음양허증' 관련 사항은 승객의 안전 문제와 직결된다. 사측은 열차 운행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을 방치한 셈이며, 공단은 그런 사측을 두둔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기관사를 진료한 주치의를 포함해 여러 전문가들은 당시 이 기관사의 상태와 관련해 열거된 증상들이 "공황장애를 앓을 때 나타나는 전형"이라고 지적한다.

이 기관사는 목숨을 끊기 한 달쯤 전인 2012년 2월 15일, 재진을 받았다. 당시 경희대 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 주치의사는 이 기관사 사망 직후 "공황장애가 자살률이 높은 정신질환 중의 하나로 직무 스트레스가 공황장애를 유발했으며 이에 자살의 인과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소견을 제시했다. 사망 전 공황장애에 근접한 증상을 보였던 이 기관사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유에 대해 전문의가 '직무 스트레스->공황장애->자살'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소견은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게 근로복지공단 측의 주장이다. "사망 후 내려진 진단이므로 공황장애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기관사의 자살은 '예상할 수 없는 충동에 의한 자살'이지만, 사전에 공황장애 판단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의 죽음은 개인적인 것이 됐다. 헛된 가정이지만, 그가 자살에 실패했다면 그는 자살 시도를 입증한 뒤 공황장애 판정을 받아낼 수 있었을까? 이를 통해 향후 있을 자살에 미리 대비할 수 있었을까?

▲ 근로복지공단 측에서 밝힌 사망 사유. ⓒ프레시안(박세열)

현직 기관사의 호소 "열차 운전 중 발작 일으키는 경우도 있는데…"

두 번에 걸친 산재 불승인. 이 기관사의 유가족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으로 재심사청구 기각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을 냈다. 그리고 4일, 첫 심리 기일에 출석했다. 양재동 행정법원 앞에서 만난 이 기관사의 부인 김수현 씨(가명)는 초췌한 표정이었다. 언론 노출을 꺼리는 표정도 역력했다.

"아이들이 5학년, 3학년인데, 학교도 옮겼어요. 언론에 (아이들 아버지 일이) 노출되다보니까, 동네에서는 소문이 나죠. 그게 아이들에게는 안 좋다고 하더라고요. 주변분들이 다 알아보시니까. 얘들은 이 사실 자체를 몰라요. 아빠가 교통사고가 났다, (그래서 돌아가셨다) 그렇게 알고 있죠. 자세한 내용을 몰라요."

김 씨는 경제적으로도 힘겹게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김 씨는 현재 한 달 수입이 150만 원이라고 밝혔다. 친정어머니가 도움을 준다고 했다. 그 도움이 없으면 두 아이를 키우며 생활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백발의 친정어머니도 이날 세상을 떠난 사위의 산재 인정 여부를 두고 벌어지는 법원의 첫 심리를 지켜봤다. 간단한 신분 확인과 자료 제출, 다음 심리 기일 확정 등 짧은 절차가 끝났다. "아이들이 걱정"이라는 친정어머니는 이런저런 일을 도와주고 있는 동료 기관사들에게 연신 "감사하다"고 말했다.

"기관사들이 열차 운행 도중 발작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몇 년 전, 한 번 그런 사고가 있었어요. 기관사가 운행 도중 숨이 막히고 발작 증세가 일어나 '지금 운행을 멈추지 않으면 내가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렸습니다. 내리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갔습니다. 차량 직원(정비사)이 대신 투입돼 몇 정거장을 운행했습니다. 그런데 병을 호소한 기관사는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아십니까? 회사에서 '니가 생각이 있는 XX냐'라고 하더랍니다. 아파 죽을 것 같은 사람한테…. 그 기관사는 결국 전직을 했습니다. 만약 터널 공간에서 시속 60Km로 지하철을 운전하다 갑자기 발작이 난다면…그것은 누구의 책임인가요?"

심리가 끝나고 법원 앞에서 만난 동료 기관사 김영민 씨(가명)는 분통을 터뜨렸다. 근로복지공단이 내린 산재 불승인 판단의 주요 근거는 공황장애 진단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조 측은 "과거 공황장애에 대한 산재 승인 사례가 있어 이에 준거해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산재 여부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증명을 해내야 하는데, 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기관사들로서는 "어이없는 일"일 수밖에 없다.

위기의 지하철 기관사
① "동료들 연이어 자살…이젠 나도 날 못 믿겠다"

② 사람 잡는 1인 승무제…공황장애 15배, 트라우마 8배
③ 192명 사망 '대구 참사', 승무원 1명만 더 있었어도…
④ 자살한 기관사의 마지막 기록, "미친 듯이 지적 확인"
⑤ 업무 관련 스트레스로 기관사 자살, 산재 아니다?

한인임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은 "공황장애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 몇몇 질병만 산재로 인정하는 근로복지공단의 협소한 해석이 계속되는 것 같다"며 "기관사는 다양한 이유로 장애를 겪을 수 있고 그것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멀쩡한 사람도 정신병자가 되는"(한 기관사) 열악한 근무 환경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공황장애가 산재로 인정받은 후 공단 측에서는 산재 인정 사례를 더 늘리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한 연구원은 "이재민 기관사의 경우 부인과 재결합을 했고 새 출발을 하려고 골프 연습까지 시작했는데, 주어진 근무를 멀쩡하게 다 소화한 후 스스로 철로로 내려갔다고 하는 것은 이미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볼 수밖에 없다"며 "그런 부분들을 당국이 전혀 감안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성호 노조 사무국장은 "시민 안전이 제일 큰 문제"라고 말했다. 윤 사무국장은 "러시안룰렛도 아니고, '내가 탄 지하철 기관사가 병이 없는 사람인가 아닌가'가 승객들이 따질 수 있는 문제인가"라고 묻고 "이건 기본적으로 관리자의 책임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재민 기관사 사건이 이런 식으로 취급받으면 제2, 제3의 희생자가 나올 경우 억울한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이재민 기관사에 대한 산재 불승인이 난 가운데, 서울도시철도공사 노동조합은 올해 초 역시 자살로 생을 마감한 황선웅 기관사에 대한 산재 신청을 했다. 이재민 기관사의 산재 승인 여부는 황선웅 기관사의 산재 승인 여부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프레시안(박세열)

홀로 남은 부인 "전직 신청 때 회사에서 대책 내놨다면…"

"정말 억울한 건 신랑이 (자살하기 한 달여 전인 2012년) 2월에 회사에 공식적으로 전직 신청을 했는데, 그때 회사에서 아무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간 신랑이 공황장애라고 회사에 알렸고 (회사에서) 면담 신청이 없어서 저희는 '아 아프니까 (전직이) 되는구나' 했었죠. 그런데 발표가 났는데 제외가 된 거예요." (이 기관사의 부인 김 씨)

전직 신청은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공단 측은 "인력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상호 전직 희망 직렬 간 정원 대비 현원을 고려하여 선정했고 1대1 전직을 원칙으로" 했는데 이 기관사의 경우 "우선순위에서 밀려 전직이 되지 않았다"는 회사 측의 설명을 인용했다. 그러나 윤성호 사무국장은 "이재민 기관사는 아프다며 병가도 쓰고 연차도 썼지만, 회사에서는 구조조정이나 숫자 맞추는 일로 생각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기관사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질병 때문에 전직 신청을 했음에도, 그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동료 기관사는 "질병이 있어도 아프다고 말하기 힘든 상황이 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회사를 그만두거나 직종을 바꾸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그건 초등학생 두 자녀를 둔 젊은 가장이 선택하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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