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취업'이 몰고온 사이비 전성시대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 진짜·가짜 구별 안 되는 나라

나라가 온통 사이비(似而非) 천국이 되어 가는듯한 느낌이다. 사회 전반의 현상이기도 하지만, 특히 정치판에서 그것은 정도(程度)를 지나치고 있는 듯하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대선을 전후한 정권교체기를 맞이하며 더욱 발호(跋扈)하는 양상이다.

다 알다시피 이 나라에서는 그 현상의 한 복판에 언론이 있다. 권력의 곁에 시립(侍立)한 채로, 그 권력의 기득권을 지켜주며 자기들의 배타적 이익을 챙기기 위해, 여론 조작이라는 사이비 행각을 일삼고 있는 게 언필칭 이 나라 주류 언론들의 본 모습이다. 멀리 살필 것도 없다. 쉬운 예로 대선 때 다른 곳도 아닌 중추 국가기관인 국가정보원의 선거 불법 개입 사실이 부분적으로 드러나고 있을 때, 이 나라 신문방송들이 보여준 사이비 행태를 우리는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사건 자체는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는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가 국가기관까지 정치공작에 끌어 들이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언론들은 "국정원 여직원이 대통령 선거를 좌우할 정치공작을 한다는 게 믿기느냐"는 박 후보의 항변을 여과 없이 총력을 다 해 나팔 불어 주었다. 바로 그 사건에 대한 경찰의 수사는, 그게 언제적 이야기 인데 지금도 끝없이 미적거리고, 추적하거나 꾸짖는 보도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그런 게 바로 사이비 행태다.

"우리가 조사해서 다 알고 있다" "대선에 나오면 죽는다"고 안철수 캠프 쪽 금태섭 변호사를 '협박'하던 '새누리당 공보위원 정준길 씨 사건' 때도 주류 언론들은 그랬다. "협박은 없었고, 정치적인 이유로 금 변호사가 우정을 배신했다"는 투로 사건을 몰고 갔다. 박근혜 당시 후보도 "정 씨는 협박을 하고 말 위치에 있지 않은 사람"이라며 "구태(舊態)"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한 택시 운전사의 증언으로 '거짓말'과 '협박정황'은 쉽게 드러나 버렸다. 그 정준길 씨는 지금도 TV 시사프로에서 안철수 씨를 '흠집 내는' 방송을 하는 것이 목격되고 있다.

MB와 최시중 씨는 대선을 앞두고 종편 4개와 보도 전문채널 한 개를 허가해 주었다. 그 TV 방송들이 대선 과정에서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눈부신 활약을 했다. 이른바 '정치평론가'라며, 적지 않은 낯선 얼굴들이 열심히 여당 후보를 도운 것 모르는 사람 별로 없다. 보편타당성과 공정함이 필수덕목이어야 했다. 국민의 재산인 전파 앞에서 겸허하게 바른 자세를 보여야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편들기' 경쟁을 밥 먹듯 했다. "사이비 경연대회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방송사에서는 기자들이 노조 성명을 통해, "편파방송을 일삼는다"며 특정 정치평론가의 출연금지를 요구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한 지상파 방송에서도 '선수급(級)' 특정 정치평론가에게 시사프로를 맡기려 했다가, 기자들이 편향성을 문제 삼아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무산되기도 했다.

ⓒ연합뉴스

대선 이후 인수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상상을 초월한 '윤창중 씨 발탁'은 일부 '평론가'들과 '해설가'들을 적지 않게 고무시킨 듯하다. '간택 받음'을 통한 '취업'을 노렸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안철수 후보는 지역(노원병)에서도 좋은 소리를 못 듣고 있는 것 같다>거나 <말도 없이 미국에 간 건 잘못이다>라는 터무니없는 소리도 들렸다.

노원병 선거구에서 안철수 후보를 좋지 않게 말하는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미국으로 출국(대선 투표일인 12월19일)하기 일주일 전 쯤 언론을 통해 발표된 '출국예정' 사실을 못 들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출국하던 날 안 씨가 투표 종료 후 발표를 전제로 국민들에게 남긴 메시지 내용을 알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그것을 일반화 된 보편적 사실인 것처럼, 전국에 방송되는 TV 화면을 통해 말하고 매도하는 건 '정치평론가'나 '해설가'의 도리가 아니다. 사이비들이 하는 짓이다.

대선 때 새누리당 후보를 위해 만들어진 십알단(십자군 알바단)처럼, 고용된 것으로 보이는 알바 댓글 부대가 여론조작을 위해 뛰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직도 있다. 사전에 보면 '사이비'란 〈겉으로는 그것과 같아 보이나 실제로는 전혀 다르거나 아닌 것을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바야흐로 사이비들의 전성시대다. 가짜와 짝퉁들의 전성시대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 일선에서의 사이비 논란도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도저히 질 수 없게 돼있는 선거에서 패배한 민주당의 책임도 사실 따지고 보면, 사이비들 때문이었다. 이념도 정책도 전략도 전술도 없이, 대권이 눈앞에 굴러들어오는 것으로 착각하고 사이비들은 덤볐다. 손에 잡히는 떡을 빼앗기지 않으면서 혹시라도 다른 계파가 공을 세우지 않나 견제하는, 패거리 문화가 지배한 해괴한 선거판이었다. 기득권을 내려놓는 겸허한 모습을 많은 국민들은 그토록 간절히 원했지만, 상왕(上王)들이나 이·박 체제나 친노 486들 모두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게도 구럭도 다 잃어 버렸으나, 요즘 보면 민주당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 같다. 국민들의 배신감이 어느 정도인 줄을 어림조차 못하고 있는 듯하다. 당내에서는 심지어 "안철수가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아서 선거에 졌다"는 어처구니없는 소리까지 나왔다. 이제 와서 야권의 살 길로, 문재인 전 후보와 안철수 씨가 만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모르시는 말씀이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전 후보가 노원병의 안철수 후보를 지원 할 경우, 안 후보의 지지율이 더 내려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게 바로 민심이다. 국민들의 눈에 민주당 쪽 사람들은 아무에게도 보탬이 안 되는 '사이비 정치세력'으로 비쳐지고 있다고 극단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그 같은 냉엄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을 시발점으로 삼고 출발해야 살 길이 나온다는 점을 민주당은 깨달아야 한다. 정치쇄신을 외치는 '안철수 현상'이 왜 힘을 얻고 있는지 바로 볼 필요가 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 과정에서도 사이비 논란은 있었다. 자칭 원로니 지성인이니 명사니 하면서, 중간지대에 서 있는 것처럼 거짓행세를 한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뒤로는 특정 후보 쪽과 미리 줄을 대고 그 쪽으로 여론을 몰고 가곤 했다. 누구누구인 줄 시중에는 다 소문이 나있다. 당당하고 떳떳함을 팽개치고 몰래 그럴 일이 아니었다.

새누리당 내부에도 오래된 사이비 논란이 심각한 화두가 되어 있다. 일찍이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 때부터 박정희 정권에 이어, 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여당 국회의원의 주된 역할은 거의 거수기 노릇이었다. 청와대 쪽에서 버튼을 누르면 대부분 찍 소리도 못하고 그저 손을 들어 지시에 따르는 게 여당 국회의원들 이었다. 거수기는 꼭두각시고 꼭두각시는 바로 제 목소리 없는 사이비 국회의원 아니냐는 자조 섞인 탄식은 그래서 끊임없이 나왔다.

'태생적인 사이비 논란'이라는 소리도 들렸다. 박근혜 정권 들어서도 '소통부재' 불평과 함께 그런 이야기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150명이 넘는 거대 국회의원 집단에 바른 목소리도 별로 없다. 부동산 대책이나 추경이야기도 신문을 보고서야 알았다고 했다. "거수기 노릇이나 하란 말이냐"는 불평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장관들 인사문제를 놓고는 할 말들이 많은 것 같다. "사이비들이 너무 많다"는 투덜거림이다.

아닌 게 아니라 쌀에 뉘가 너무 많이 섞인 것으로 보인다. 잇단 낙마에 이어 모든 장관인사가 매듭지어지지 않았는데도 '사이비' 시비가 그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항쟁'으로 인정하고 잘못을 사과한 제주 4·3사건을 "북의 지령으로 일어난 무장폭동내지는 반란"이라 매도하던 사람이 다른 국가기관도 아닌 국가정보원장이 되었다. 제주 4·3항쟁은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시절 추념일 지정을 약속한 사건이다.

박정희 씨를 '민주화의 일등공신'으로 추켜세운 그는 "역사상 사람을 죽이지 않은 독재자는 없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도 했다. 5·16쿠데타와 박정희 씨가 생사람들 죽인 인혁당 사건부터도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 사과한 사건이었다. 따라서 이는 박근혜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정부의 국가정보원장이 서로 견해를 달리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쯤 되면 단순 사이비가 아니라 뒤죽박죽 정권"이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다.

박근혜 정부 내각의 핵심 구호인 '창조경제'란 말을 놓고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의 장관 내정자가 무슨 뜻인지 설명을 못하는 모습도 보인다. 주무장관이 모르는 말이라면 '창조경제' 자체도 그냥 사이비일 수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모래밭에서 찾은 진주"라 한 해양수산부장관 내정자는 인사 청문회에서 어업의 국내 총 생산비율을 묻자 "모르겠습니다 하 하"했다. 국내 항만권역이 몇 개냐는 물음에는 "권역까지는 잘 … "이라 답했다. 개그 콘서트 이야기가 아니다.

오죽하면 새누리당 국회의원도 "준비되지 못하고 책임지지 못하는 모습"이라 했다. 어느 모래밭에서 '발굴'해 왔는지는 몰라도 해수부장관 내정자는 사이비 진주인 것으로 보인다. 바라건대 진짜와 가짜가 구별 안 되는 나라는 아니었으면 한다. '사이비'들의 득세를 예고하는 신호탄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그래서 크다.

국민행복과 국민통합 정권이라 했던가. 박근혜 정부가 진정성 팽개친 사이비 정권이 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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