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비리, 폐쇄성 그리고 정명(正名)

[기고] 공무원 제도,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가?

채용비리,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최근 우리 사회에서 공직사회의 채용비리 문제가 크게 물의를 빚고 있다. 그런데 독일 공무원 채용에서는 정실 채용 등 인사비리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바로 연방 내무부와 연방 차원의 인사독립기구인 연방 인사위원회의 존재 때문이다. 연방 인사위원회는 부처별 채용을 종합적으로 심의, 감독, 결정하며 특히 특별채용을 중점적으로 검토한다. 또 각 기관별 채용전형위원회도 충실히 그 기능을 수행한다. 프랑스에서도 공무원의 정실 채용을 방지하기 위해 임용을 결정하기 전에 임용자문위원회의 의견을 수렴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도 하루바삐 이러한 인사위원회를 정확하게 운용해야 한다. 이름만 번지르르한 그런 허명(虛名)과 기만의 형식적 기구가 아니라 실제로 정명(正名) 그대로 이름에 걸맞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을 하는 기구가 절실하다.

외부 전문가의 공직 진입이 장려돼야 한다

채용비리로 떠들썩한 뒤에 감춰진 사실이 있다. 바로 우리 관료조직의 철저한 폐쇄성이다. 우리 공무원 조직은 외부로부터의 진입을 철저히 봉쇄하면서 폐쇄된 ‘자기들만의 리그’를 운용하고 있다. 더구나 채용비리와 같은 명분을 앞세워 이러한 폐쇄성은 더욱 강화된다. 외부에 아무리 탁월한 능력이 있어도 그리고 국가를 위해 공헌하고 봉사하고 싶어도 공직 진입은 사실상 차단된다. 이로부터 사회와 유리된 권위적이며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군림하는 관료집단이 배태된다.

이러한 점에서 프랑스의 공무원제도는 시사하는 바 크다. 프랑스 공무원채용 제도에 '제3의 시험'이라는 제도가 있다. 40세 미만이고 전문직 또는 지방자치단체 의원으로 8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자, 사단법인에서 책임자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자에게 응시자격을 주는 방식이다. '제3의 시험'은 국가 사회에 봉사한 경험이 풍부한 외부 전문가의 공직 진출을 촉진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프랑스의 유명한 국립행정학교(ENA) 신규 입학의 10%가 이 제도를 통해 선발되며, 법관을 양성하는 국립법관학교 그리고 지방행정학교도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는 현실에서 불운해 실패를 맛본 사람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제공하는 '패자부활전'의 의미도 크다.

공무원 채용에 시험 방식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 공무원 채용제도는 인사권한의 분권화와 자율화를 그 특징으로 한다. 1996년 채용위임입법으로 각 부처별 채용권한이 주어졌다. 각 부처는 공개시험을 통해 공무원을 채용하며, 1994년부터 화이트칼라 110종을 대상으로 필기시험을 폐지하고 서류전형과 면접만으로 채용했다. 이밖에도 경쟁이 없이 직접채용과 제외직 채용 방식도 병행하고 있다.

미국 공무원체계 구성을 보면, 먼저 장차관 등 최고관리자(Executive Schedule)는 약 1000명으로서 대부분 정치적으로 임명되며 상원의 동의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고위 공무원단(Senior Executive Schedule)은 약 8,000명으로 그 중 10%는 정치적으로 임명된다. 그 외 일반직(General Schedule)은 1~15 등급까지 분류된다. GS-13 이상이 관리자이고 각 직무별로 올라갈 수 없는 상한선이 있다.

또한 '대통령 공공관리 펠로우 프로그램(PMF: Presidential Management Fellow program)'이라는 고급공무원 임명 제도도 시행된다. 이 프로그램은 공공정책 분야에 우수한 석․박사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1977년 카터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의해 도입된 제도다. 우수한 젊은이를 선발해 미래 지도자를 육성하는 프로그램으로서 인사관리처가 지정한 약 300개의 대학원에서 매년 400명 이상을 선발한다. 주로 GS-9 이상 등급에 임용되며, 후보자들은 구두발표, 집단토론, 논술을 통해 평가를 받는다.

개방적인 미국 공무원 체계에 비해 폐쇄적인 우리나라 공무원 제도는 잠재적으로 정부에서 일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세부적인 전문성 부족이 두드러진다. 더구나 순환보직으로 인해 그 특성은 더욱 강화된다.

프랑스에는 시험을 거치지 않고 임용권자 재량으로 외부 민간인을 경력직 고위공무원으로 임명하는 특별채용 방식도 있다. 이는 출신 배경을 다양화함으로써 공무원 구조의 폐쇄형 임용을 완화시키고 공무원 충원의 민주화에 기여하기 위해 도입됐다. 프랑스 공무원제도는 순환보직에 기반을 두지 않고 전문성에 중점을 둠으로써 국민과 언론으로부터 업무에 관한 신뢰가 높다.

한편 독일은 각 부처별로 자율적으로 공무원을 채용한다. 다만 계급군별로 시험방법이 달라 고위직 공무원은 서류전형 합격자에 대해 100% 주관식 필기시험과 면접, 그룹토의를 치르도록 한다. 중급직은 주로 면접을 통해 선발하고 단순직은 서류전형에 의한다. 시험은 단순한 지식보다 공직자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역량 검증에 집중된다. 또 종합적 사고와 주요 시사분석, 상황 대응능력을 중점적으로 검증하게 된다.

있어야 할 곳에 정확히 있고, 해야 할 일을 정확히 해야 한다

미국 연방공무원은 2015년 현재 410만 명이다. 우리와 달리 교사와 경찰관은 주 정부 공무원으로 분류돼 연방 공무원 통계에서 제외된다. 그리해 미국은 공무원 1인당 담당하는 국민은 76.8명으로서 우리의 312.5명에 비해 훨씬 많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2014년 말 현재 공무원이 545만 명으로 전체 국민의 8%를 점하며 이는 전체 일자리의 25%를 정부가 고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 대법원의 대법관은 대법원장을 포함해도 불과 14명에 불과하다. 이렇게 '소수정예' 규모로 된 데에는 숫자의 희소성에 의한 특권의 유지가 그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독일의 경우 대법관수는 300명이 넘는다. 이들 대법관들은 노동, 의료, 특허 등 각 분야별 전문 법관들로서 국민들의 사법서비스 요구에 보다 적절하고 정확히 대응하게 된다.

며칠 전 한 여성판사가 과로사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 법원이 비난을 많이 듣고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 법관수는 국제적 기준으로 볼 때 대단히 적은 숫자이다. 우리나라 법관 정원은 2013년 10월 말 현재 2739명으로서 인구 10만 명당 5.37명에 불과하다. 우리와 유사한 법제를 가지는 독일이 24.5명, 스위스 16.5명, 프랑스 11.9명 등이다. 사법서비스의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마련되는 체제를 구축해나가야 한다. 희소성으로 특권을 유지하겠다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은 하루바삐 극복돼야 할 것이다.

한편 미국 의회에는 3000명이 넘는 규모의 회계감사원이 있다. 이 조직은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모든 기관과 사업에 대한 회계와 감사를 상시적으로 실행한다. 이 기구의 신설 비용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이 기구의 설치로 인해 절감되는 국가예산은 설치비용보다 엄청나게 많은 것으로 입증됐다. 또 미국 의회는 이 조직의 존재로 국가 예결산에 주도권을 쥘 수 있으며, 시끄러울 뿐 형식적일 뿐인 국정감사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게 된다.

앞에서 언급했던 채용비리 방지를 위한 인사위원회 역시 반드시 그리고 정확하게 존재해야 한다. 진정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위해 국가의 올바르고 정확한 역할이 실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적확한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이 설치되고 인원이 확보돼야 한다.

공무원,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명실상부(名實相符), 정작 중요한 것은 있어야 할 곳에 정확히 있고,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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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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