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구조조정의 다른 이름, 글로컬대학 30이라는 '계륵'

[대학문제연구소 논평] 공공적 대학체제 구축과정과 결합해야

5년간 최대 1000억 원을 지원하는 정부의 '글로컬대학 30' 선정이 마무리되면서 지방대학들의 명암이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선정된 대학들은 국가적 지원을 등에 업고 혁신을 추진할 기회를 얻은 반면 선정에서 탈락한 대학들은 존립의 위기까지 느끼는 박탈감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선정된 대학들도 갖가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 단기간에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 그만큼 졸속으로 추진된 탓에 구조적 제약과 현실적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지방대학을 살리겠다는 명분 아래 시행된 사업이 정작 지역 내부의 경쟁과 분열을 부추긴 역설적 상황, 그것이 글로컬대학 30의 어두운 일면이다. 이 사업은 이제 버리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계속 끌고 가기엔 실속이 없는 '계륵(鷄肋)' 같은 존재가 됐다. 그러나 이미 시작된 사업을 폐기할 수는 없는 만큼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있다.

시장주의 대학정책의 소산으로서의 글로컬대학 30

애초 글로컬대학 30은 지역과 대학의 상생을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그 정책의 기저에는 전 정부의 이주호 교육부가 주도한 시장주의 대학정책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자율'과 '경쟁'을 내세우고 '선택'과 '집중'을 강조해온 시장주의적 접근법은 겉으로는 혁신의 언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가의 대학정책 실패의 결과인 지방대의 몰락 상황에 대한 구조조정의 책임을 지역에 전가하는 논리로 작동한다.

취지 자체는 지방대를 살리고 지역을 활성화하자는 것이나 권역별로 지방의 대학들을 한정된 예산을 두고 경쟁하게 함으로써 대학 상호 간의 생존투쟁의 양상을 띠었다. 돌이켜보면 과거 정부들이 시행한 누리사업이나 지방대특성화 사업 등 목적성 사업을 중심으로 한 지방대 지원정책 또한 대규모 재정투입에도 불구하고 지방대의 몰락추세를 막지 못한 것은 물론 실질적으로도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글로컬대학 30의 본질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는 이미 구조화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그리고 각 권역들 간의 불균형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호남권은 산업기반의 취약성과 인구유출이라는 이중의 구조적 위기에 놓여 있고, 영남권은 상대적으로 산업기반이 있음에도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수의 과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강원권은 학령인구 감소속도가 전국에서 가장 빠르거니와 인프라의 취약성으로 대부분 대학들은 자체생존이 어려운 여건이다. 이같은 불균형구조 자체는 그대로 둔 채 이루어지는 목표지향적 사업 추진은 한정된 조건 내에서 권역별 생존경쟁을 제도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지방대 살리기인가, 구조조정 시나리오인가

교육부는 지역 소멸을 막고 지방대를 살리는 방안으로 글로컬대학 30을 제시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지방대 구조조정의 다른 이름"이라는 냉소적 반응이 퍼져 있다. 한정된 예산을 일부 대학에 몰아주면 여타 대학들의 경영 위기가 더 악화할 것은 자명하다. 이같은 예산 몰아주기 식 사업 자체가 인구 감소로 존립이 어려운 대학들의 폐교 수순이라는 자조적인 관점도 없지 않거니와 실제로 탈락 대학들은 대개 학생 모집난에 빠질 위험이 더 커졌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전문대가 이 사업에서 거의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사업의 문제점을 축약적으로 보여준다. 전문대는 지역산업의 실무 인력을 공급하는 핵심 기반인데 글로컬 체제에서 제외되면서 지역균형 발전의 기본 구조부터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지방을 살린다는 명분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방향이다.

선정된 대학들도 사정은 녹록지 않다. 거점국립대들은 대학마다 차이는 있되 상대적으로 인프라와 재정 여건이 나은 편이지만, 대다수 사립대 글로컬 사업 선정대학들은 매칭펀드 부담과 지역과의 산업 연계의 한계로 목표 달성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 예상된다. 지방 산업이 위축된 현실에서 산학을 중심으로 하는 혁신은 공허한 구호로 끝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선정대학과 탈락 대학 모두 그 나름의 위기를 겪는 상황이 글로컬대학 30을 '계륵의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글로컬대학 30과 연계하여 추진되고 있는 라이즈(RISE: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제) 또한 유사한 한계를 지닌다. 지역이 주체적으로 대학 정책을 주도하고 활로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열기도 했지만 중앙정부의 책임을 회피하고 구조조정의 난제를 지역에 떠넘긴 측면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업·인구·경제 여건이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지역 단위에서의 해결방안을 추구하게 한다면, 결과적으로 한정된 자원을 두고 지역 내에서의 상호 경쟁을 부추기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결국 글로컬대학 30과 라이즈 체제는 모두 시장주의 논리 위에서 설계되었다는 점이 그 본원적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도태'를 강요하는 구조가 그것이다. 이 구조 속에서 대학은 혁신의 주체라기보다 정책 실험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공공적 대학체제 개편에 흡수해 활용해야

그렇다면 글로컬대학 30은 폐기되어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는 것이 이 사업이다. 이미 막대한 예산이 배정되었고 제도로 자리 잡은 만큼, 이를 중단하는 것은 지역과 대학 모두에 혼란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로 두면 시장주의 대학정책의 후유증은 치유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초점은 이 '계륵'을 어떻게 활용해 대학개혁을 위한 실질적인 영양소로 바꿀 것인가, 즉 이 사업의 재구조화에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방향의 전환이다. 즉 지금까지의 시장주의적 대학정책의 기조를 폐기하고 공공적 대학체제 개편의 방향에 맞게 지방대 정책을 재설계하는 것이다. 역대 정부의 교육부는 학령인구 감소국면에서 시장주의적 경쟁논리에 따라 대학을 구조조정함으로써 지역소멸과 지방대 위기의 추세를 만들어왔다. 이같은 기조를 공공적인 방향으로 전환하고 서울 중심의 대학서열체제를 혁파해나가는 과정과 결합하지 않으면, 글로컬이든 라이즈든 결국 예산낭비로 귀결될 것이다. 글로컬 대학 30에 선정된 대학이든 탈락한 대학이든 공공적 대학체제 개편이라는 큰 구도 속에서 각각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거점국립대의 역할 재정립이다. 거점국립대학은 단순히 지역의 '일류대'가 아니라 권역 전체의 연구 거점이자 지역 내의 협력 허브로 정초해야 한다. 글로컬 사업예산 또한 정부가 구상 중인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과 연계하여 거점국립대를 각 지역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하는 데 비중을 두어 배정하고, 이를 토대로 지역사회 및 여타 지방대들을 연결하는 중심으로 자리잡도록 해야 한다.

둘째는 권역별 고등교육 네트워크 체제 구축이다. 글로컬 선정 대학뿐 아니라 비선정대학 및 전문대까지 포함하여 지역의 고등교육 기관들이 상호 생존경쟁이 아닌 협력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지역에서의 고등교육 네트워크 체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정한 경쟁은 필요하지만 강자 독식이 아니라 대학들 간의 협력과 분업을 통해 지역에 필요한 연구역량을 키우고 인력을 양성하게 하는 방식이 지역을 살리는 길이다.

셋째는 대학의 특성화를 통한 대학체제 재편이다. 각 지역마다 거점국립대의 대학원을 강화하여 권역 내에서 통합운영하는 한편 여타 국공립대와 사립대들을 교육중심 혹은 직업교육 중심으로 특성화하여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분담하도록 한다. 지역소멸 추세에 대처하기 위해 각 지역에 여러 형태의 고등교육기관이 존립하여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전국 대학을 캘리포니아 주립대 체제처럼 연구중심·교육중심·직업 및 평생교육중심의 3분체제로 재편하는 것도 유력한 해법이 될 것이다.

이제 대학정책의 패러다임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의 경쟁적 논리로는 지방대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대학 간 협력과 연대 및 지역사회와의 연계가 그 핵심이다. 즉, 시장의 논리가 아닌 사회적 책임의 논리로 대학정책의 기조를 세우고, 왜곡된 대학체제를 재구축해야 할 시점이다. 글로컬대학 30 사업이 '계륵'으로 남느냐, 아니면 교육부의 정책기조 전환과 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느냐는 신정부의 대학개혁 방향 및 의지에 달려 있다.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부, 국가교육위원회 등에 대한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최교진 교육부 장관이 기관보고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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