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문희상 국회의장 공관에서 열린 여야 5당 대표 부부 동반 만찬에서 이 대표는 "지금 논의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따르면 제1당은 비례대표를 많이 가져가기 어렵다"며 "직능성 전문성을 가진 비례대표 영입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할 경우, 다음 총선 때 민주당이 지역구에서 의석을 다수 확보하면 비례대표 몫이 줄어들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의미다. 이 대표는 현재 당 지지율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적용했더니 다음 총선에서 민주당이 얻는 비례대표 의석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왔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근거로 들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 측이 이 대표가 이 같은 발언을 했다고 확인해줬다. 심지어 이 대표는 현행 선거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비례대표 의석수만 더 늘리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지난달 1일 기자간담회에서 "연동형 비례제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던 기존 입장을 뒤엎는 것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민주당의 2016년 총선 공약이자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당선 뒤에도 여러 차례 "비례성과 대표성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편을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자신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반대한다고 전한 언론 보도를 "잘못된 보도"라고 부인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말이 오갔는지에 대해선 "나중에 기자간담회를 하겠다"고 20일 밝혔다.
하지만 민주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꿀 절호의 기회가 왔고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모르는데, 유불리를 따지며 말을 싹 바꾸고 있다"고 이 대표를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국민의 눈에 뻔히 보이는 기회주의적 행태로는 결코 정치개혁과 경제개혁도 사회개혁도 불가능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20년 집권론과 연동형 비례제의 불화
진위 논란에 휩싸인 이해찬 대표의 발언은 민주당의 속내를 대표한다. 민주당은 20일 의원총회를 열고 선거제도 개편 문제를 논의했으나 원론적 학습에 그쳤다. 강병원 원내대변인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중대선거구제, 의원정수 문제 등이 어떤 내용인지에 대해 의원들의 이해를 구하기 위한 설명이 있었다"고만 전했다.
정당득표율과 의석점유율의 괴리를 줄일 수 있는 연동형 비례제 도입이 진척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거부감 때문이다.
현행 선거구제는 병립형이다. 지역구 의원을 뽑는 소선거구제와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되는 비례대표제가 따로따로 운용된다. 지역구 의석(253석)에 비해 비례대표 의석(47석)이 적은 데다 정당득표율이 연동되지 않아 민심을 제대로 반영한 의석 배분이 이뤄지지 못하는 문제가 반복됐다. 지난 총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의 정당득표율은 25.54%였으나 123석(41%)을 가져갔다.
이와 달리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에 비례해 국회 전체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선거에서 얻은 정당득표율을 기준으로 각 정당의 의석수를 먼저 할당하고, 지역구 의석이 할당된 의석에 모자라면 비례대표 의석으로 맞춰준다. 반대로 지역구 의석이 할당 의석에 근접하면 비례대표 몫이 작아진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도 정당득표율에 따라 원내 교섭단체 규모로 성장할 수 있는 제도적 바탕이어서 다당제를 견인하는 속성도 있다. 반면 현행 병립형 선거구제는 양당제를 지탱한다. 거대 양당은 정당득표율보다 많은 의석을 차지해온 구조를 선뜻 깨려하지 않는다.
특히 2020년 총선에서 단독 과반을 확보해 문재인 정부 입법 과제들을 해결하고 20년 집권의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는 이 대표의 지론과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어긋난다.
하지만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민주당의 미적지근한 태도에 소탐대실이라는 지적이 많다. 민주당의 강세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장담할 수 없고, 양당제의 균형추가 한국당으로 기울면 정당 득표율을 훨씬 웃도는 의석을 한국당이 가져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득을 쫒다 정치개혁을 이룰 절호의 기회를 놓치면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여야 5당대표 만찬 자리에서 문희상 의장도 "지금 민주당 지지율이 그대로 갈 것 같으냐"며 이 대표의 주장을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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