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서울 답방이 바로 임팩트있는 '입체적 종전선언'

[기고] 문재인 정부, 연내 김정은 서울 답방 추진해야 한다

한반도에 다가오던 봄기운이 잠시 주춤하는 양상이다. 북미고위급 회담은 연기되었고,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 양측의 줄다리기는 장기전 징후를 보이고 있다.

그 틈에 미국 내 강경세력은 북한 악마화에 나서고 있다. 북한이 숨겨진 16개 미사일 기지에서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는 지난주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미국 조야 강경세력의 합작품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군산복합체와 연결된 정보기관이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에 정보를 주고, 전문성은 떨어지면서 과대포장된 북한전문가들이 수준 떨어지는 보고서를 내고, 북한을 의심하는 언론은 이를 생각 없이 받아쓰는 구조 속에서 나온 기사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미 밝혀져 있는 미사일 기지에 대해 '숨겨진 기지' 운운하고, 탄도미사일 기지를 운영하는 것이 무슨 대단한 합의 위반인 양 법석을 떨었다.

2002년 10월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우리는 고농축우라늄보다 더한 것을 가질 권한이 있다'고 말한 것을 미 정부 내 강경파가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보유를 인정했다'는 내용으로 <유에스에이 투데이>에 흘려주면서 제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된 역사를 새삼 상기시켜준다.

그 틈에 미국이나 한국 내 북미대화 회의론자들은 스멀스멀 영역을 넓히려 하고 있다. 체질적으로 북한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도 있고, 북한과의 대결 구도라야 먹을 게 많은 사람들도 있다.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하고 관련국이 많은 만큼 한반도 문제는 한 번 모멘텀을 잃으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해빙 물줄기의 퇴행을 막아줄 커다란 동력이 필요한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은 그러한 동력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것으로 여겨진다. 예고된 이벤트이면서도 실제 성사되었을 때의 '임팩트'는 매우 클 것으로 생각된다. 좀 더 깊이 보면, 김정은 답방이 어떤 이슈보다 우선순위에 놓여야 하는 이유는 여럿이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입장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첫째, 김정은의 답방은 '입체적 종전선언'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을 시작으로 2007년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지난 9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평양시민들의 환대를 받았다. 전쟁을 한 당사국으로 이 정도만으로도 과거보다 큰 관계의 진전을 이룬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수반의 교환 방문은 또 다른 차원을 말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북측의 최고지도자가 서울 시민의 환영을 받는 날은 한국전쟁이 실제적으로 종결되는 날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말이나 글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웅변적인 종전선언이 되는 것이다.

둘째, 용렬한 '종북 프레임워크'를 훌쩍 넘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김정은이 답방하면 현충원을 방문해야 한다, 천안함 사과를 먼저 해야 한다 등등의 주장이 있다. 김정은은 전범 김일성의 손자이니 서울에 못 온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영원히 담쌓고 살자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남북관계 진전의 분위기 속에서 환영받는 답방이 이루어진다면 더 이상 흘러간 70년대 레코드판만을 틀고 있는 세력의 입지는 그만큼 약화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종북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면서 남북화해를 저지하는 움직임도 차차 힘을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셋째, 북미대화를 견인할 수도 있다. 북미대화가 속도를 못 내면서 정부가 추진하던 연내 답방도 기운이 좀 떨어져 가는 모양새인데, 거꾸로 생각해 볼 일이다. 서울 답방이 성사되고 남북관계가 더 진전된다면 북한은 좀 더 '대화 가능한 정상국가'로 인식되어 가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계속 선(先) 비핵화, 제재 우선을 견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넷째, 비핵화를 진전시킬 수도 있다.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비핵화에 관한 논의를 북한과 하려 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만을 비핵화의 협상 대상으로 여기고 응하지 않았다. 남측의 보수 정부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없었고, 비핵화에 따른 체제안전보장, 제재 완화, 경제적 지원 등을 미국정부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계속 비핵화 남북회담을 주장했으니 이는 진정성 떨어지는 억지에 불과한 것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북한의 인식은 다를 것이다. 경제적 지원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있을 것이고, 제제 완화·체제 안전보장과 관련해서도 적극적 중재 역할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서울 정상회담은 그런 점에서 평양공동선언보다 진전된 비핵화 합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이는 북미 협상을 재차 촉구하는 기능도 하게 될 것이다.

다섯째, 남북한의 약속을 지키는 의미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가까운 시일 내 답방'은 평양공동선언에 명기된 합의사항이다. 18년 전 6·15선언에서 합의했던 김정일 답방을 함께 지키는 의미도 있다.

남북 간의 바람직한 합의는 많았다. 그것들이 지켜지기만 했더라면 남북관계는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이제는 합의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단계로 가야 할 것이다. 더욱이 지난 9월 평양정상회담 당시 두 정상이 '연내 답방'에 합의를 해놓은 상황이다. 그러니 올해가 가기 전에 서울 답방을 꼭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대외정책은 여론에 휘둘리기 쉽다. 하지만 여론은 감성적인 경우가 적지 않다. 정당이나 사회단체들도 사적 감정과 이익에 따라 어떤 주장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민주사회의 지도자도 대외정책 추진에 관한한 리더십과 합리적 결단을 때론 해야 한다.

김정은 답방과 관련해서도 이런 저런 말들이 많다.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김정은 위원장의 단안도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결의가 상황을 이끌어 가는데 더 중요한 변수로 보인다. 남북·북미 관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결단과 리더십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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