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공공의료원, 갑자기 웬 '고급화'와 '수익성'?

[서리풀 논평] 공공병원, 만든다고 끝이 아니다

한국에 있는 공공병원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을 꼽으라면, 아마도 '성남시의료원'이 아닐까? 유명해진 이유는 다분히 정치적이다. 전임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시장 퇴임사가 이를 그대로 대변한다(☞관련 기사 : 이재명 성남시장 퇴임..."성남시의료원은 공공의료의 새 역사".

이 전 시장은 퇴임식에서 감사편지 낭독을 통해 "성남시민들이 직접 만든 공공병원, 성남시의료원은 공공의료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을 뿐 아니라 제가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 유명세는 미리 앞당겨 받은 것, 사실 병원은 아직 다 짓지도 않아 내년 하반기에나 개원할 예정이다(☞관련 기사 : 성남시의료원 개원, 내년 상반기서 하반기로 늦어진다). 진료도 하지 않는 병원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병원이라니, 한국 공공병원의 사회적 위상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할까.

오래 우여곡절을 겪은 이 유명 병원은 또 한 번 예상치 않은(아니면 이미 예상할 수 있었던) 도전에 직면했다. 개원하기도 전에 병원의 운영방침을 둘러싼 이견이 노출되고 점점 확대되는 것이 그것이다. 성남시의료원이라는 공공병원은 아직 그리고 점점 더 '문제적'이니, 좋은 의미로 더 유명해지기를 바란다.

그동안 경과와 논란 중인 사안의 내용은 성남시의료원이 출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의 성명을 참조하기 바란다(☞바로 가기 : 성남시의료원 공공성 후퇴, 수익성 강조하는 무늬만 공공병원 우려한다). 요약하면, 성남시의료원을 관장하는 성남시의 새로운 방침은 지금보다 병원 진료의 수준을 높여 '고급화'하고 '수익성'을 올리라는 것, 이런 방침이 공공병원의 지향과 가치에 어긋나지 않느냐는 것이 논란의 골자다.

우리 자신의 의견부터 밝히면, 우리는 성남시와 의료원의 새로운 운영방침에 동의하기 어렵다. 배경과 속사정은 차후 문제로, 그 어떤 명분으로도 고급화와 수익성은 공공병원과 공공보건의료가 지향하는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 방향으로 가면, 성남시의료원은 전혀 새롭지 않은 병원, 지금 있는 여러 공공병원과 비슷한 또 하나의 병원을 보태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앞날은 장담할 수 없다. 시민단체가 반대하고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성남시가 새로운 방침을 포기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궤도를 수정할지 명확하지 않다. 공공병원에 무엇을 기대하고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개인적인 것도(예를 들어 시장의 선호) 우연도 아니기 때문이다. 공공병원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할 수 있는지, 치열하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구조적이고, 그래서 정치적이다(여기서 정치는 당연히 넓은 의미다).

겉으로 보이기는 성남시의료원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핵심 권한과 권력, 시와 시장은 왜 고급 진료와 수익성 개선을 요구했을까? 개인적인 취향과 선택은 일부 있었다 해도 사소하고 부분적일 터. 이들은 자신의 정치적 토대, 권력 기반인 일부(또는 대다수?) 시민이 원하는 방향을 따른다 생각할 것이다.

아주 일부 환자나 질병을 제외하면 서울 강남의 유명 병원, '빅 5 병원'으로 갈 필요가 없을 정도의 수준, 암도 진료할 수 있는 병원, 경쟁력이 있는 고급 건강검진, 의료관광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정도, 대학병원과 비슷한 진료진 수준 등등. 언뜻 보면 병원 기능을 둘러싼 기술적·전문적 판단처럼 보이지만, 천만에 '시민의 기대'라는 기준은 지극히 정치적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부담이 적은 진료를 하는 병원, 이 또한 기술적·전문적 판단의 범위를 넘는다. 정치적으로 공공성 요구는 그 자체로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결정하자는 것으로, 문제는 누가 얼마나 강력하게 이를 요구하고 누가 이런 요구에 관심을 두는지 하는 것이다. 공공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공공병원이 무슨 일을 하기를 바라는가?

시와 시장의 권력이 시민권력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고(또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할 때, 그 권력관계는 공공성 실천과 실현에 불리하다고 봐야 한다. 많은 사람은 좋은 공공병원과 공공성을 경험한 적이 없고 따라서 이미 존재하는 기존의 이해(지식과 가치)를 벗어나기 힘들다. 상당수는 공공병원을 취약계층이 주로 이용하는 비효율적 기관이라 생각한다. 공공병원의 공공성으로부터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사람들조차 고급 건강검진과 최신 시설을 더 환영할지 모른다.

시가 요구했다는 수익성도 권력관계 속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재정을 배분하는 것은 완전히 정치적인 결정으로, 시와 시장으로서는 공공병원의 적자를 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지출이 많다고 판단한다는 뜻이다. 이 또한 기술적·전문적 차원이라 할 수 없으니, 중요성에 대한 판단은 모종의 불평등한 권력을 반영한다.

정치적으로는 한 가지 권력이 더 있으니, 성남시의료원이 가는 길에는 시민과 시 정부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이번에 저절로 드러난 대로, 병원의 운영방침을 둘러싼 결정에서는 성남시의료원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중요 행위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일상적 운영, 미시적 공공성에서는 이들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공공병원은 시민과 시 정부의 권력관계를 그대로 반영·집행하는 수동적 주체가 아니라, 어느 정도까지 독립적인, 부분적으로 자율적인 행위자이기 때문이다. 원장이 어떤지에 따라 병원의 공공성이 크게 달라지고, 직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따라 시민이 경험하는 공공병원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직원들의 임금체계가 어떤지는 공공병원의 공공성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관련 기사 : '성남시의료원의 바람직한 임금체계 모색을 위한 성남시민사회 토론회' 개최). 의사와 간호사, 행정직원이 공공병원의 가치에 관심이 없는데도 공공성을 실천할 수 있을까.

이 때문에 공공병원 조직과 그 구성원을 공공성의 가치에 맞추어 '공적 통제' 안에 두는 것은 또 다른 중요 과제다. 이 또한 공공병원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성 권력으로 부르고 정치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 공적 통제는 단지 개인적 특성과 지향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핵심. 조직 안에서의 공공성 실천과 실현은 개인 윤리와 노력, 다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와 제도로 규율해야 한다. 원장과 직원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

이 구조와 제도가 법률이나 규정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일은 당연히 공공병원이 해야지" 또는 "공공병원 직원으로 우리가 이래서는 안 되지" 등이 모두 확장된 제도다(어떤 학자는 이를 '규범적 제도'와 '문화·인지적 제도'라 부른다). 공적 가치에 충실한 제도가 만들어져야 개인 차원을 넘어 구조적으로 공공성을 실천할 수 있다.

결국 공공병원은 새로 만들거나 짓는 것으로,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제 사명을 다할 수 없다. 공공병원이 공공병원답게 되려면, '공공성의 정치'를 견디고 이겨 결국 공공성을 실천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선언하고 다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며, 끊임없이 경쟁하고 설득하며 동의를 받아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리는 이런 공공병원의 진화 과정이 ①시민, ②시의 정치와 관료체제, ③병원조직과 구성원의 '3중 공공화'를 통해야 가능하다고 본다. 그것도 개인 차원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구조와 제도로. 다르게 표현하면, 공공병원 하나의 공공성을 넘어 공공보건의료체계 전반의 공공성 강화가 핵심이다.

3중의 공공성 강화라 했지만, 당연히 서로 무관하지 않으며 협력과 경쟁을 반복하는 관계다. 기계적으로 같이 가는 것이 아니니, 어느 한 쪽이 앞설 수 있고 견인할 수도 있다. 때로 '총괄 기획자'가 이들 모두를 끌어당기기도 한다.

성남시의료원이 가는 길은 그야말로 초유의 길, 결코 쉬울 리 없다. 특히 우리가 해석한 공공병원의 정치로는 한국 사회에서 길을 처음으로 개척하는 중이다. 시민, 시와 시장, 병원 조직과 구성원 모두가 공공성을 키우고 실현하는 첫 단계 기획자 역할을 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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