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는 사회재난"…'빈 말' 아니려면

[안종주의 안전사회] 사회재난에 걸맞은 대응 필요

세상의 모든 것을 알려준다는 그 유명한 '마법의 거울'에게 한 서울시민이 물었다. "거울아! 거울아!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 거울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미세먼지야."

조명래 신임 환경부 장관은 취임사에서 "미세먼지를 사회재난"이라고 정의했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발암물질 미세먼지의 위협은 사회재난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발전소, 자동차, 공장 등 인간의 편리함과 문명 발전의 추구, 그리고 경제 성장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 미세먼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미세먼지 위험의 성격에는 자연현상에 의한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바로 황사다. 황사는 중국 대륙에서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까지 밀려들어온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의 급속한 공업화가 만들어낸 다량의 대기오염 물질이 미세먼지(또는 초미세먼지) 형태로 한반도를 습격해오고 있다.

미세먼지는 한마디로 자연재난의 성격과 사회재난의 성격을 두루 갖추고 있다. 조명래 장관이 미세먼지는 사회재난이라고 한 이면에는 자연재난인 지진 등과는 달리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위험을 없애거나 크게 낮출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미세먼지와 '재난 및 안전기본법'

하지만 우리나라의 법에는 미세먼지를 사회재난으로 보지 않고 있다. 대기오염 물질의 하나 정도로만 취급하고 있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의 제3조를 보면 재난을 국민의 생명·신체·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것으로 정의하고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나누고 있다.

자연재난은 태풍, 홍수, 호우(豪雨), 강풍, 풍랑, 해일(海溢), 대설, 한파, 낙뢰, 가뭄, 폭염, 지진, 황사(黃砂), 조류(藻類) 대발생, 조수(潮水), 화산활동, 소행성·유성체 등 자연우주물체의 추락·충돌, 그밖에 이에 준하는 자연현상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재해로 규정하고 있다.

이어 사회재난은 화재·붕괴·폭발·교통사고(항공사고 및 해상사고를 포함한다)·화생방사고·환경오염사고 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규모 이상의 피해와 에너지·통신·교통·금융·의료·수도 등 국가기반체계의 마비,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감염병 또는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른 가축전염병의 확산 등으로 인한 피해를 말한다고 정의한다.

자연재난과 사회재난 그 어디에도 미세먼지는 없다. 조 장관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미세먼지는 사회재난"이란 발언이 수사(修辭, 레토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에 걸맞은 후속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장을 주면서 미세먼지 해결을 신임 환경부 장관에게 주문했기에 더욱 그러하다.

총리 밑에 미세먼지 대응 태스크포스를 두고 또 이와 별도로 환경부 장관 밑에 비슷한 성격의 티에프를 둔다고 한다. 이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자칫 옥상옥 논란과 함께 비슷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서로 다른 조직, 그것도 상위조직(총리실)과 하위조직(환경부)에 둘 때 오는 비효율성과 부정합성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티에프가 아니라 행정부, 국회, 사법부 모두 나서야


미세먼지 문제 해결에는 모든 부처가 한 마음으로 달라붙는 자세가 중요하다. 재난은 마치 전쟁과 같은 것이어서 전략과 전술이 중요하고 모든 화력을 집중해 퍼붓는 것이 핵심이다. 육해공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청와대, 총리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환경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노동부, 지방자치단체 등이 완전한 하나가 되어 법과 제도, 예산의 지원 아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야 한다.

행정부뿐만 아니라 국회와 사법부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도 언제 우리가 미세먼지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지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는 마법의 거울도 모른다. 미세먼지 해결은 국민 모두의 소망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만약 미세먼지가 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날에는 낡은 경유 차량의 도심 진입을 금지한다면 분명 반발하는 집단이 생겨날 것이다. 석탄화력발전소나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는 조처를 내린다면 이를 반대하는 집단도 있을 것이다. 미세먼지 저감 정책을 둘러싼 갈등을 확대재생산하는 언론도 분명 있을 것이다.

미세먼지 해결에 왕도는 없다. 나무와 숲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정책에는 고통이 뒤따른다. 하루아침에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민들의 인내도 있어야 한다. 고통을 받는 이들에겐 다른 차원의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반대세력들도 동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돌아다니는 레미콘 차량은 미세먼지 오염의 주범은 아니지만 차량 한 대에서 내뿜는 미세먼지 양은 매우 많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오염원이다. 대다수가 연식이 오래된 낡은 차량이어서 더욱 그렇다. 유럽처럼 천연가스 레미콘 차량을 도입하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이 모이고 모여 미세먼지 걱정 없는 사회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미세먼지 모범 서유럽은 나는데 우리는 이제 걸음마

일부 유럽 국가들의 경우 최근 경유 자동차를 도로에서 보기 힘들다. 2040년부터는 모든 화석연료 차량을 판매 금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전기차, 수소차 등이 이들을 대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 국가들에서는 원자력과 함께 석탄과 석유를 사용해 전기를 생산하거나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도 대폭 줄어들고 있다. 그 자리를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들이 차지하고 있다.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는 재생에너지가 발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미 20%를 훌쩍 넘어섰다. 애초 에너지전환 계획 목표 시기보다 훨씬 더 일찍 달성한 것이다. 우리가 오는 2040년에 달성하겠다는 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 20% 목표를 선진 유럽 국가는 이미 달성하고 더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특단의 에너지 전환 대책 수립·시행에 여야, 언론 모두 하나 돼야

우리도 특단의 에너지 전환 대책을 세워 목표 달성을 위해 민관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여야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쟁 속에, 이념 구도 속에 태양광과 같은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조차 사소한 문제를 문제 삼아 가속도를 붙이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일이 연일 정당, 언론, 학계, 기업 등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세먼지는 재난임이 분명하다. 아직 정확하게 추정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지금과 같은 미세먼지 오염이 계속되면 머지않아 이로 인한 연간 추가 사망자는 적어도 수만 명이 될 것이다. 미세먼지 저감에 쏟아부어야 할 비용도 천문학적인 액수가 될 것이다.

따라서 미세먼지 주무부처인 환경부를 포함한 정부는 미세먼지를 사회재난에 걸맞게 대접해야 한다. 환경부 장관의 말이 빈말이 아니라면 먼저 법부터 바꾸자. 미세먼지를 법상 사회재난에 포함시키자. 가뜩이나 나쁜 경제에 설혹 주름살이 잠시 더 가는 일이 생기더라도 이를 감내하며 정책을 펴고 전략을 짜자.

그리하여 마법의 거울 앞에 선 서울시민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더라도 미세먼지란 대답이 나오지 않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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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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