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에 출간될 예정인 졸저 <비핵화의 최후>에 담긴 구절이다. 이 내용을 소개한 까닭은 북한의 "미신고"(이 표현은 결혼도 안 했는데 왜 혼인신고를 안했느냐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사일 기지를 둘러싼 최근 논란이 위와 같은 보이지 않는 전쟁의 속살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먼저 미국 주류 언론인 <뉴욕타임스>와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손을 잡았다. CSIS는 보고서 공개에 앞서 그 내용을 NYT에 전달했고 NYT는 1면 머리기사로 실어 판을 키워줬다.
그러자 국내의 보수 매체들은 '가짜뉴스'에 가까운 NYT의 보도와 CSIS의 보고서를 대단한 권위가 있는 분석인 냥 대서특필했다. 이를 본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정쟁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청와대가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기지 외에 다른 미사일 기지를 폐기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며 팩트를 말하자, 극우 보수 언론과 정당들은 일제히 "북한의 대변인"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CSIS의 돈줄
그런데 주목할 점이 있다. CSIS의 최대 후원자는 바로 일본과 미국의 거대 군수업체들이라는 점이다. CSIS 홈페이지를 보면 일본 정부는 작년 한해만도 최소 50만 달러를 기부한 것을 비롯해 일본의 기업, 재단, 개인 기부자들이 대거 명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CSIS의 주요 후원 기업에는 록히드마틴, 보잉, 노스롭그루먼, 레이시온 등 군수 산업체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이러한 기부자들에게 답례라도 하듯, CSIS는 일본 및 군수업체들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대변해왔다. 가령 CSIS는 2014년 11월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표기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또한 한국 내 사드 배치 논란 당시에도 마이클 그린 부소장은 중국을 방문해 여러 인사들을 만나본 결과 "베이징이 미국이나 한국이 사드 배치를 철회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며, "5월 선거 이후에는 (베이징이) 서울과 신속하게 관계 회복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가짜 뉴스'였다. 중국은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를 철회하거나 최소한 서두르지 않을 것으로 믿었었고, 문재인 정부마저 '임시 배치'에 나서자 한중관계는 험악해졌었다. 반면 한중관계가 회복된 계기는 정부의 '3불' 입장 표명에 있었다. 사드 배치는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일본 정부의 숙원 사업이었다는 점에서 그린의 위와 같은 행보는 예사롭지 않은 것이었다.
선택적 기억 상실?
국내의 극우 보수 진영이 집중적으로 문제삼고 있는 것은 청와대 대변인은 "삭간몰 기지 미사일은 단거리인 스커드 미사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는 상관이 없다"고 말한 부분이다.
NYT와 CSIS는 서울에서 135km 떨어진 황해도 황주 삭간몰 기지를 우려스럽다고 했는데, 청와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미국 사람들에게 날아가는 미사일이 걱정이지 한국 사람에게 날아오는 미사일은 상관없다는 얘기로 들린다"고 비난했다.
전형적인 선택적 기억 상실이다. 극우 보수 진영은 작년에 북한이 ICBM 보유에 임박해지자 마치 대한민국 안보에 종말이 다가온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었다. 요지는 북한이 미국에 ICBM 발사 위협을 가해 미국이 개입하지 못하게 해놓고 한반도 공산화에 나설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특히 "미국이 서울을 구하기 위해 워싱턴을 희생시키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도 믿을 수 없으니 독자적인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북한이 ICBM 시험 발사를 중단하고 ICBM 개발용 엔진시험장도 해제하기로 한 것은 대한민국 안보에 크게 기여하는 셈이 된다. (참고로 미국 합참도 8월에 북한의 이러한 조치에 힘입어 북한이 ICBM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 국내의 보수 진영은 청와대를 향해 '왜 ICBM만 걱정하느냐'는 식으로 공세를 퍼붓고 있다.
물론 북한의 중단거리 미사일이 상관없다는 뜻은 아니다. 언젠가는 풀어야 할 숙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미연합전력은 북한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또한 비핵화가 달성되어 핵탄두 장착이 불가능해지면 그 위협의 수위는 크게 반감된다. 아울러 남북한이 합의한 "단계적 군축"의 대상에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청와대도 이러한 취지를 밝힌 바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