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사태, 핵심은 '질'과 '불평등'

[서리풀 논평] 비리 유치원, 패러다임 전환 문제다

사립 유치원 비리 사건이 점점 범위를 넓혀갈 기세다. 바로 곁에 붙은 어린이집은 물론, 노인이 주 대상인 요양원도 부정과 비리의 태풍을 피하지 못할 것 같다. 먼저 할 말은 이런 사태 전개가 전혀 놀랍지 않다는 점. 누구나 알고 짐작했던 일, 언젠가 터질 고질병 같은 것이었다.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하던 문제가 드러났을 때,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호들갑을 떠는 것보다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방향 잡기가 더 중요하다. 화끈한(?) 대책이 아니라 밋밋하게 '방향'이라 표현한 것은 문제가 복잡할수록 단번에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정부 당국을 탓했지만, 사실 이런 종류의 사건은 정부에게는 정치적 기회다. 재정이든, 인력과 시설이든, 또는 국공립 유치원 증설이든, '숙원' 사업을 추진하는 둘도 없는 동력이 된다. 다만, 기회가 정말 기회인지는 평소 의지와 실력, 준비가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부랴부랴 교육부가 내놓은 대책에서는 '즉각 추진과제' 세 가지와 '제도 개선 과제' 세 가지를 망라했다(☞보도자료 바로 가기). 전자는 ① 유아의 학습권 보장 ② 국공립 유치원 확대 ③ 유치원 관리·감독 강화 등이고, 제도 개선과제는 ④ 학부모 참여 강화 ⑤ 투명한 회계 운영 ⑥ 사립유치원 교육의 질 개선 등이다.

언뜻 보면 할 수 있는 대부분 정책을 포함한 것처럼 보이고, 정치권과 학부모의 반응도 비교적 괜찮은 편이다. 대책의 내용과 이에 대한 반응은 정부와 학부모의 평소 문제의식과 준비 정도, 그 최고치를 반영한다. 그렇다면, 일부에서 걱정하는 대로 실행만 잘하면 다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우리는 정부 대책이나 일반의 관심이 문제의 절반만 건드리는 것이라 판단한다. 내놓은 정책이 그대로 실행되고 성과를 내더라도 절반만 성공하는 것이라면, 대책에서 빠지고 여론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나머지 절반은 무엇인가?

괜한 트집 잡기가 아니다. 단도직입, 우리가 생각하는 나머지(정확하게 표현하면 더 중요한) 과제는 교육의 질 향상과 불평등 완화이다. 교육부 대책에도 '질'이라는 항목이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질보다는 훨씬 좁고 약하다. 범위가 사립 유치원에 그치고, 그러다 보니 설립자와 원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교육 여건(학급 정원, 교직원 보수 등)을 개선하는 정도다. '불평등'은 아예 관심사에서 빠져 있다.

질 향상이 왜 중요한가? 유치원과 어린이집, 요양원이 모두 마찬가지지만, 다른 어느 것도 아닌 '질'이 본질이고 궁극이기 때문이다. 보육과 교육, 요양의 궁극적 목적과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는 것이 바로 좋은 질의 문제가 아니던가.

어린이를 왜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보내는가?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부담을 줄이는 것은 겉으로만 그런 것, 궁극적으로는 좋은 교육을 하고 애들을 제대로 키우는 것이 목적이고 목표가 아닌가. 가정과 사회가 교육의 책임을 분담한다면, 사회적 공간에서의 교육과 보육은 그냥 가정과 가족 대신이 아니라 그 자체로 최선의 보육과 교육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질은 흔히 말하는 시설, 교사의 숫자, 급식, 위생, 교육 프로그램, 또는 인권 침해 여부에 그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런 것은 '소극적 질' 또는 '기초'일 뿐, 적극적으로는 좋은 프로그램과 교육(내용과 과정)을 통해 어린이가 성장하고 발달해야 한다.

어린이에 대한 좋은 보육, 교육, 건강, 돌봄등이 평생 삶을 결정한다는 것은 몇몇 사례나 연구결과가 아니라 정설이고 상식이다. 누구도 뒤처지지 않고 공정하고 공평한 '출발'이 중요하다. 그에 따른 삶은 단지 개인의 학습능력이나 학력, 또는 시장에서의 '경쟁력'뿐 아니라 사회적 안녕과 공동체의 질과 긴밀하다.

무릇 교육의 질은 이런 것임에도, 정부 대책에는 질 보증을 넘어 질 향상을 목표로 하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대안들이 빠져 있다. 아니, 더 중요한 문제는 그런 비전과 목표가 있기는 한지 의심스럽다는 점이다. 당장 눈에 보이고 학부모가 요구하는 단기 대책이 대부분, 국가와 정부가 무엇을 목표로 왜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개선, 강화, 확충하려 하는지 미래상이 선명하지 않다.

가시적인 재정 관리도 제대로 못 하면서 질 향상이 가능할까? 우리는 이것이 실무적, 정책적 사안, 프로그램 운영과 기술의 과제라 생각하지 않는다. 정책과 제도의 가치, 그리고 이에 기초한 목표를 어떻게 정하는지에 따라 질은 정책 안에 내장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가정 바깥에서 돌봄 수요를 맞춘다는 목표와 모든 어린이의 보육과 교육의 가치 달성이라는 목표를 비교해보라. 전자가 주로 비용과 숫자에 초점이 있다면, 후자에서는 저절로 질 향상이 일차 관심, 그리고 정책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질 보증과 향상의 한 가지 방법으로, 우리는 보육과 돌봄을 '공공화'해야 한다고 다시 주장한다. 공공화는 국공립 시설을 늘리는, 이른바 공공의 구조를 키우고 늘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과정은 말할 것도 없고 규범과 문화까지 공공성과 공적 가치가 주류가 되는 것을 공공화라 말한다.

사실 지금 우리 사정에서 공공화가 필요한 것은 보육, 교육, 돌봄, 의료가 크게 다르지 않은, 어쩌면 '보편적' 과제인지도 모른다(☞'서리풀 논평' 바로 가기 , ☞<프레시안> 바로 가기 , ☞<라포르시안> 바로 가기).

"단기적으로는 강고한 상품화 경향을 어떻게 완화시켜 나갈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린이와 노인을 돌보는 것이 개인이나 기관의 수익과 이윤에 직결되는 한 바람직한 서비스는 멀어진다.

민간 기관에서도 가능하면 일대일의 수익 구조를 끊고 공공성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사람 한 사람 돈을 받는 것보다는 총액 예산으로 재정을 쓰는 쪽이 공공성의 공간이 더 크다.

공공의 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구조가 사람을 바꾸기 때문인 것도 있다. 지금 일하는 사람들의 동기를 바꿀 뿐 아니라 새로 진입하는 사람들도 달라진다. 나아가 '소비자'의 관심이나 가치, 해석에도 영향을 미친다."

교육부가 내놓은 대책은 마지못해 포함한 최소한의 공공화 지향인 것처럼 보인다. "2022년까지였던 국공립 유치원 40% 확보 시기를 앞당겨 조기에 국정과제를 달성할 것"이라고 했으니, 그나마 대통령 공약이 아니면 별생각이 없었다는 것으로 읽힐 정도다. 기본 틀이나 새로운 패러다임, 주류 정책이 아닌 셈이다.

이를 패러다임의 문제로 읽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불평등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다. 비용과 접근성, 시설과 인력에 대한 불평등도 중요하지만, 교육의 질을 둘러싼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관건이 되는 과제다. 어릴 때의 보육, 교육, 건강, 돌봄이 평생 삶을 결정하면, 보육의 불평등은 제2의 유전자, '사회적 유전자'라 해야 한다.

불평등을 같이 생각해도 결론은 비슷하다. 공공화 전략을 빼고 질 향상과 불평등 완화의 다른 대안이 있는가? 더 엄격한 규제와 처벌, 아니면 비리 유치원 명단발표와 같은 시장 메커니즘으로 보육과 교육이 나아질 수 있을까?

무엇이 공공화인지, 국공립과 사립이라는 소유 주체의 이분법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당장 모든 기관을 국공립으로 전환하기는 불가능하고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체제 수준에서 공공성의 가치를 회복하고 공공이 제자리를 찾는 것이 급선무다.

결국 정책과 제도를 관통하는 패러다임 문제. "사립 유치원은 사유재산"이라는 유치원 소유자가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보육과 교육에 대한 체제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 그것은 교육을 상품과 경쟁력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학습과 배움, 그리고 인간 개발의 기회를 누구나 누려야 할 평등한 권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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