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영원한 승리를 위한 전투가 될 때

[최재천의 책갈피]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우리는 처음에 국민에게 아첨했다가, 대중선동가로 변신하고, 결국에는 폭군으로 군림해서 공화국의 자유를 허물어뜨린 인물들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알렉산더 해밀턴, <페더럴리스트 페이퍼>)

냉전 기간 전 세계에서 일어난 민주주의 죽음 가운데 75%는 쿠데타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다른 형태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민주적 절차를 거쳐 당선된 대통령이 권력을 잡자마자 그 절차를 해체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의회나 법원의 승인을 받았다는 점에서 '합법적'이다. 심지어 사법부를 효율적으로 개편하고 부패를 척결한다는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개선'하려고까지 한다. 이럴 때, 쿠데타와 같은 '경계를 넘어서는' 명백한 순간이 없기 때문에 비상벨은 울리지 않는다. 독재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과장이나 거짓말을 한다고 오해를 받는다.

역사적으로 미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두 가지 규범이 있다. 하나는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 관용과 이해. 둘은 제도적 권리를 행사할 때 신중함을 잃지 않는 자제를 말한다. 자제의 반대는 제도적 특권을 함부로 휘두르는 것. 규칙에 따라 경기에 임하지만, 최대한 거칠게 밀어붙이고 "영원히 승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오로지 경쟁자를 없애버리기 위한 전투 자세다.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는 밀접하게 얽혀 있다. 둘은 때로 서로를 강화한다. 정치인이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받아들일 때 그들은 자제의 규범도 기꺼이 실천하려 든다. 그러나 상황은 얼마든지 반대로 흐를 수 있다. 상호 관용의 규범이 허물어질 때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제도적 권력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한다. 정당이 서로를 위협적인 적으로 간주할 때 정치 갈등은 심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거 패배는 일상적인 정치 과정의 일부가 아니라 재앙이 된다. 패배의 대가가 심각한 절망일 때 정치인들은 자제를 포기하려는 유혹에 넘어간다. 헌법적 강경 태도는 관용의 규범을 허물어뜨림으로써 경쟁자가 위협적인 존재라는 인식을 키운다. 정치의 악순환이다. 정치는 그저 패거리 정치일 뿐.

민주당 하원 의원 바니 프랭크는 공화당 하원 의장이었던 뉴트 깅리치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미국 정치를 서로 뜻이 달라도 상대의 선의를 믿는 정치에서, 뜻이 다른 이들을 악하고 비도덕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정치로 바꾸어놓았다. 말하자면 그는 성공한 매카시주의자다." 한국은 다르리라. 적폐와 빨갱이도 그럴 것이다.

▲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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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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