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난 25년간 북한을 MD의 최대 구실로, 남한을 최우선적인 편입 대상으로 삼아왔다. 이와 관련 필자는 앞선 글에서 미국이 경북 성주에 배치한 레이더를 패트리엇과 겸용으로 쓸 계획을 밝혔고, 이게 시작에 불과할 것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미국 MD 가속화,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먹구름?)
그런데 한국군 당국이 스탠더드 미사일-3(SM-3) 도입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10월 12일에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SM-3 도입을 결정했느냐'는 안규백 국방위원장의 질의에 대해 김선호 합동참모본부 전력기획부장이 "2017년 9월 합동참모회의에서 SM-3급으로 소요결정이 됐다"고 답한 것이다.
이러한 소요결정의 배경에는 작년 9월 합동참모회의에서 '해상탄도탄요격유도탄'의 작전요구성능(ROC)으로 요격고도 100㎞ 이상이 결정된 것이 주효했다.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킬 해상 요격미사일은 SM-3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요격고도가 변경되지 않으면 SM-3 도입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다.
SM-3가 뭐길래?
SM-3는 이지스탄도미사일방어체제(ABMD)의 핵심 요격미사일이다. 미국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블록I 계열은 요격고도가 150~500km, 미일 동맹이 공동으로 개발한 블록II는 1000km로 알려져 있다. 군 당국은 블록I 계열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데, 이렇게 할 경우 미국에서 구매한 패트리엇-3 및 한국이 자체 개발한 M-SAM과 L-SAM이 '저층 방어'를, SM-3는 '상층 방어'로 역할 분담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SM-3의 대당 가격은 200억 원 이상이며 세 척의 한국형이지스함에 20기씩 모두 60기를 도입할 경우 도입비만으로도 1조 2000억 원 이상, 이지스함 성능 개량비에 8000억 원 정도가 소요된다.
그런데 SM-3는 한국 방어에는 거의 기여를 하지 못하면서 미국 주도의 MD 참여에는 대못을 박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계획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막대한 경제적 부담과 함께 문재인 정부가 천신만고 끝에 정상화한 남북관계 및 한중관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SM-3가 한국 방어에 무용지물에 가까운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남북한이 휴전선을 맞대고 있으면서 종심이 짧다는 지리적 특성에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2013년 6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한국은 북한의 미사일이 저고도로 비행하고 몇 분 만에 떨어질 수 있을 만큼 북한과 가까이 있기 때문에 SM-3에 기반을 둔 해상 MD의 이점이 크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1999년 미국 국방부의 '동아시아 MD 구축 계획서'에도 "한국의 경우 해상 MD 체제로 해안 시설을 보호하는 데에는 기여할 수 있으나, 내륙의 시설이나 인구 밀집 지역을 방어하는 데에는 도달하지 못한다"고 적시됐다.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은?
이처럼 SM-3는 한국 방어에는 효용성이 거의 없는 반면에 남북관계와 한중관계에는 커다란 장애물이 될 것이다. 먼저 남북관계를 보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4월 27일 판문점에서 만나 "더 이상 전쟁은 없다"며 불가침 확약을 맺었다. 또한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선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을 만들겠다며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거듭 천명했다. 특히 이들 정상회담에선 "단계적 군축"에도 합의하면서 '군사 분야 이행 합의서'를 별도의 부속합의서로 채택하기도 했다.
그런데 SM-3 도입은 이러한 정상 간의 합의와 의기투합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북한은 미국 주도의 MD를 선제공격용으로 간주해왔다. 실제로 미국은 미사일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판단되는 타국을 선제공격하거나 이를 검토하기에 앞서 MD 자산을 전진 배치했었다.
이에 따라 한국이 자국 방어와 별 관계도 없는 SM-3를 도입한다면, 세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굳건해진 남북한의 신뢰는 금이 가고 만다. SM-3 도입 결정이 보도되면서 북한이 매체를 동원해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을 예사롭게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일각에선 비핵화에 실패할 가능성에 대비해 SM-3 도입 등 삼축체계를 예정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법이야말로 비핵화 실현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 될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 '이후'에 한미동맹에 비해 군사적 열세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판단할수록 비핵화에 주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판문점 선언에 "단계적 군축"에 담긴 까닭이기도 하다.
사드 대란 재발?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한중관계에서 발생할 것이다. '사드 대란'이 또다시 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의 기습적인 사드 배치로 수교 이래 최악으로 치달았던 한중관계는 지난해 10월 31일 '한중 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가 발표되면서 정상화 수순을 밟아왔다.
한국이 '3불(不)', 즉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있고, 미국의 MD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으며, 한미일 3국간의 안보 협력이 3국간의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SM-3 도입은 '3불'을 뿌리째 뒤흔들 수 있다. 미국 MD 참여 및 한미일 3각 동맹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과 상당한 긴장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SM-3는 한국 방어에는 무용지물에 가깝다. 반면 작전 반경 및 요격 고도를 볼 때 주일미군 기지나 미국 항공모함 전단 방어용으로는 이용될 수 있다.
더구나 한미동맹은 상호운용성을 강화하면서 일본과의 군사협력도 추구해왔다. 한미일 군사정보약정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이를 위한 제도적 조치이자 MD를 기반으로 사실상의 3자동맹을 추진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SM-3 도입은 지금까지 MD 참여와 불참 사이에 모호하게 존재했던 경계선마저 지워버리게 될 것이다.
더욱 주목할 점은 SM-3 도입이 미국이 경북 성주에 사드와 함께 배치한 AN/TPY-2 레이더 업그레이드와 맞물리면서 일체화될 가능성마저 높다는 데에 있다.
지금까지 한미 양국은 이 레이더는 '종말 모드', 즉 사드용으로만 운용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 미국은 '주한미군 합동긴급작전요구(United States Forces Korea Joint Emergent Operational Need)'에 따라 이 레이더의 업그레이드에 착수했다. AN/TPY-2 레이더에서 수집한 미사일 비행 정보를 패트리엇 포대로도 전달해 요격 정보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관건은 그 다음 계획에 있다. 미국이 가장 선호하는 레이더 활용법은 '종말 모드'와 '전진 배치 모드'를 겸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드뿐만 아니라 패트리엇, 해상 MD, 미국 본토 방어용 MD 등 다른 요격체제의 레이더로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이미 미국 정부는 모든 AN/TPY-2 레이더를 업그레이드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미 의회는 내년도 MD 성능 향상 예산으로 행정부가 제출한 8100만 달러에서 2억 8400만 달러로 대폭 증액했는데, 이 증액분의 상당액이 한국에 배치한 MD 강화에 쓰일 예정이다.
SM-3 도입시 딜레마는 여기서 잉태된다. 이 요격미사일 도입·배치시 유력한 방어 지역은 부산·경남권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요격률 향상을 위해서는 성주에 배치된 레이더로부터 조기 정보를 받는 게 유리하다. 이지스함에 장착된 레이더보다 훨씬 빨리 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할 경우 MD 참여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한미 연합 방위체제에서 SM-3만 따로 운용한다는 것도 비현실적인 얘기다.
하여 SM-3 도입 계획은 백지화하는 것이 옳고도 이롭다. 경제적 부담도 크지만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 안보에는 백해무익하고 탈냉전의 문을 노크하고 있는 남북관계와 신냉전의 문을 노크하고 있는 미중 관계 모두에 있어서 우리에겐 전략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MD가 강대국들 사이에서 신냉전을 재촉하는 핵심적인 요인이자 한반도의 탈냉전 분위기마저 요격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21> 기고를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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