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보건의료 강화'는 면피용?

[서리풀 논평] '현실론'의 함정에서 벗어나자

10월 1일 정부가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관련 기사 : '의료 지역격차 없앤다'…책임병원 지정·공공의사 육성,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바로 가기). 먼저, 공공보건의료 대책을 발표했다는 것 자체에 약간은 의미를 두고 싶다. 이제나저제나 했던 대책이 아닌가, 새로 들어선 정부가 아예 잊지는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의미 정도는 있다.


뭔가 주파수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부터 생각해 보자. '공공보건의료'나 '공공의료'라는 말, 또는 '공공성'이라는 용어는 건강과 관련된 논란이나 정책 중에 가장 유명한 것 가운데 한 가지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일반 국민과 지역사회 주민이 한국의 건강체제 또는 보건의료체제를 인식하고 판단하는 렌즈이자 개념, 비판의 근거와 틀이기 때문일 것이다.

공공성은 이제 지식이 된 데서 한 걸음 나아가 한국 보건의료의 핵심 프레임으로 굳어졌다고 해야 한다. 비용이 부담스럽거나 의료기관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때, 과잉 진료인 것 같은 의심이 드는 경우, 돈만 밝히는 병원이라 생각할 때, 의사가 친절하지 않은 진료에서, 한국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공공'이라는 말을 쓴다. 전문가나 이 분야 종사자가 아니어도 "공공의료 강화가 중요하지", "공공의료체계가 부실해서", "의료 소외지역에는 공공병원이 꼭 필요해"라고 말하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보건의료 공공성이 개인의 지식과 가치를 넘어 '공론'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최근 이를 드러내는 한 가지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제주도 영리병원을 둘러싼 공론 조사다. 도민참여단 200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58.9%가 영리병원을 반대해, 결정권을 가진 제주도에 '녹지국제영리병원 개설 불허'를 권고했다(☞관련 기사 : 제주 영리병원 공론조사, 배심원단 투표 최종 '불허' 결정).


지역경제와 고용 등 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었는데도 지역민들은 반대를 결정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 주민들은 영리병원을 논의하면서 물질적 수준에서 '공공성' 개념을 획득했을 것이고, 또 다른 물질로서의 경제적 이익보다 이 공공성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들이 "공공성 때문에 영리병원은 안 된다"고 할 때 그 공공성은 무엇인가? 아마도 그 공공성은 지방의료원이나 국립대학병원이 아니라 제주도민이 겪는 불편과 불만과는 반대인 그 무엇, 그리고 그런 희망과 욕망이 투사된 건강과 보건의료의 대안체제를 상징하는 것이리라.

한국적 상황에서 공공보건의료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짚었으니, 이제 복지부의 종합계획으로 돌아가자. 앞에서 지금 정부가 어쨌든 공공보건의료 정책을 내놓았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으나, 통상적 정책을 넘는 새로운 변화나 효과가 있을까?

한두 마디 말로 미래를 내다보기 어려우나, 일차로 여론의 반응이 리트머스 시험지가 아닐까 한다. 언론이나 이해당사자, 주민들의 의견이 이에 해당할 텐데, (예상한 대로!) 큰 반향이 없다. 대부분 반응이 무덤덤한 데다 부정적 의견도 적지 않으니, 사실 여기서 중립과 부정적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다(예를 들어 ☞[공공보건의료발전 종합대책 발표] "재정투자·인력확충 계획 불분명해 실효성 의문").

이론적 완결성은 차후 문제다. 어느 정부나 늘 발표하는 듣기 좋은 소리,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모호한 다짐, 인력이나 예산에 대한 보증도 없는 실행 전략이라니, 이번에는 뭐가 되겠다는 느낌과 현실 감각이 생기는가? 찬성과 반대, 비판을 해야 하는 긴장감이 없으니 여론의 관심을 끌기도 힘들다.

지금 같아서는 (장담하지만)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원' 정도를 빼고는 '대책'의 동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왜 이 사업만인가? 이 학교는 정부가 주도할 수 있고 법과 재정이 뒷받침한다 하니, 다른 어떤 것보다 실행 가능성이 크다. 의대가 늘어난다는데 수험생과 그 부모 모두의 관심사가 될 터(인터넷 댓글로 나타나는 일반의 관심이 곧 가능성의 지표다), 한 마디로 정치적 동력이 생겼다. 솔직하게 말해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실행 가능성 때문에 이 대책을 회의하거나 냉소하지만, 예산이나 인력이 실행의 핵심이면 처음부터 정책과 보건복지부 차원을 넘는다. 지방 정부가 관계되는 일이니 중앙 정부만의 계획도 아니다. 대책에 대한 의문은 계획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구조와 정치에 집중된다.

보건복지부와 자문위원회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나, 예산 당국(기획재정부)이나 지방 정부(또는 조직과 인력을 장악하는 행정안전부)와 협의도 하지 못하는 계획이 실행될 것이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혹시 정부 다른 부처는 이런 계획을 세우는지 알았을까? 관심이 없었을 공산이 크고, 전례대로면 알았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의 여러 관련 당사자가 계획의 이런 구조를 몰랐을 리가 없으니, 우리는 이 대책이 처음부터 '면피용'이었다고 의심한다. 청와대와 정부 부처 모두가 정치적으로 "뭐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과제에 대해 "우리는 하노라 했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민관 합동의 위원회를 동원한 것으로 판단한다.

이 대책만이 아니라 많은 정치형 정책이 정부위원회, 국가 비전과 전략, 로드맵과 종합대책의 정치에 걸려 있다. 내 책임이 아니라거나 또는 할 수 있는 책임은 다했다고 하는 뿌리 깊은 '책임 회피의 정치'. 비슷한 예로 한 달 전에 정책기획위원회와 청와대가 발표한 '포용국가 전략'을 참고하기 바란다(☞관련 기사 : 문재인 정부 '포용국가' 비전…"전생애 생활보장 3개년 계획 마련"). 그리고 그런 전략과 종합대책의 경과와 운명도 함께.

미안하지만, 공공보건의료 종합대책은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 먼저 범위 문제. 국민과 주민이 생각하는 보건의료 공공성과 공공보건의료 프레임은 지금 나온 공공보건의료 종합 대책의 틀과 범위보다 훨씬 넓다. 공공병원과 의과대학, 지역 책임의료기관이나 무슨 필수의료 정도가 아니라 건강과 보건의료 전체다.

거듭 강조한다. 공공성과 공공보건의료는 한국 보건의료 전반에 대한 것이다. 범위가 이럴진대, '공공보건의료 종합대책'이 아니라 '보건의료 공공성 강화 종합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공공보건의료는 공공성 강화의 하위 개념이자 정책, 대책이다.

공공성이 초점이면, 공공병원과 기관을 늘리고 어쩌고 하는 과제 또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보장성(건강보험과 재정), 보건의료에 대한 접근성(시설과 장비, 인력 양성과 배치, 주치의 제도와 의료전달체계 등), 양질의 서비스와 안전, 불평등과 형평성 문제 등이 모두 공공보건의료와 무관하지 않다.

제주도민이 영리병원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면서 왜 공공성과 공공보건의료를 떠올리는가? 지방의료원이나 보건소 같은 공공기관을 공공성의 전부라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큰 부담 없이, 양질의 보건의료 서비스를, 시간이나 지리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을 공공보건의료라 생각했을 것이다.

새로운 종합대책은 누가 만들어야 하는가? 공공보건의료의 범위를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문제를 정의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일은 정치적 과제로 변한다. 범위를 넓힐수록 보건복지부의 공공보건의료 담당이 할 수 없다. 보건복지부 혼자서도 못한다. 현실을 고려하고 보건의료 서비스에 한정해도 대부분 보건의료체계와 정책을 다시 손봐야 하는, 그래서 '국정과제'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행정과 입법이 같이 가야 한다. 입법은 그렇다 치고, 행정 안에서는 당연히 여러 부처를 조정, 통괄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맞다. 더 양보하더라도 적어도 예산, 인력과 조직, 지방 정부는 한 몸인 것처럼 움직여야 가능하다. 구체적으로 누가 이 역할을 해야 하는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계획의 주체보다 실행과 관리 주체가 더 중요하다. 서가에 묵혀 있거나 도서관에 가야 찾을 수 있는 계획은 무의미하다. 계획은 매일 의사 결정에 개입하고 실행은 돌아와 다시 계획을 수정하는 데 반영되어야 한다. 정책 실행에 통합된 계획이라야 생명력이 있다.

이에 대한 여러 가지 반론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현실에서 무엇인가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는가? 작지만 어떤 변화와 개선을 무시할 수 없다, 거시적인 총론보다 각론이 중요하다, 10년 20년 뒤에서 가능한 일 말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있는가? 등등

이에 대해서는 한 가지만 말하고 싶다. 30년 이상 지속한 그 '현실론'이 바로 지금의 현실을 만들었다는 사실. 백 걸음을 양보해서, 지금 가시적인 제도로서의 공공보건의료에 그리고 당장 할 수 있는 어떤 과제들에 초점을 맞춘다고 가정하자. 그래도 그 정책과 대책들은 장기전망과 비전에 조화하고 부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공공의학전문대학원을 만들면 어떤 의사를 어느 정도나 양성하고 이들은 무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권역책임의료기관을 지정하고 운영하면, 노인이 많은 지역의 산부인과나 소아청소년과 수요까지 충족할 수 있는가? 이에 답할 수 없으면 총론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면피용 각론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근본에서 다시 묻는 것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른다. 소멸 위기에 있는 지자체, 그 속에서 민간 시장조차 무너지는 일부 비수도권 군 지역, 국가가 치매를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철석같이 믿는 고령의 농민, 건강보험료를 체납해 의원에도 가지 못하는 빈곤층, 지역 병원을 믿지 못해 5시간 이상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의 '빅5' 병원을 찾는 수술 환자, 불법 인공관절 대리수술을 받은 사람들.

이들에게 공공보건의료는 그리고 보건의료의 공공성은 과연 무엇인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런 공공보건의료와 공공성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국가를 대표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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