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핵무기 목록 요구하면 북미 협상 교착 위험"

"북한 비핵화,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북한에 핵무기 목록을 요구하는 것이 비핵화 협상을 교착 상태에 빠뜨리게 할 수 있다면서 완전한 비핵화 달성을 위해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3일(현지 시각) 보도된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강 장관은 "처음부터 (북한에) 핵무기 목록을 요구하면 이후 검증을 놓고 논쟁이 이어질 수 있고, 협상을 교착상태에 빠뜨리게 할 위험이 있다"며 신고와 검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비핵화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2008년 조지 W.부시 미 행정부 시절 북한이 플루토늄 관련 시설에 대한 자료를 미국에 넘기고 난 뒤에 협상이 악화된 적이 있다면서 "핵 목록 신고를 받은 뒤에 이를 검증하기 위한 상세한 과정을 구성하다가 결국 실패했다. 우리는 다른 접근을 하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강 장관은 "특정 시점이 되면 북한의 핵 목록을 봐야 한다"면서도 그 시기는 북미의 신뢰가 쌓인 이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양측이 충분한 신뢰를 줄 수 있는 행동을 하고 상응 조치가 있어야 그 시점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강 장관은 4일(한국 시각) 한국 언론을 상대로 한 브리핑에서 구체적 시점과 관련, "폼페이오 장관과 북한 측과 논의 결과를 지켜보면 좀 더 구체적인 그림이 나오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비핵화의 핵심은 신고와 검증 아니냐는 질문에 강 장관은 "물론 그 부분이 비핵화에 분명히 필요한 핵심적 부분이지만 비핵화의 어느 시점에서 들어갈지에 대해서는 결국 미국과 북한의 협의 결과로서 나와야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남북미는 비핵화를 조속히 이루겠다는 의지를 공유하고 있다. 이를 기본으로 비핵화를 완전하게 달성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했던 방식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핵 신고와 검증이 국제원자력기구(IAEA)나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마련되면서 통상적으로 구축된 절차 아니냐는 지적에 강 장관은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했던 카자흐스탄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우크라이나 등은 기본적인 신뢰가 있는 상황에서 핵을 포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IAEA의 사찰도 받고 신속하게 (핵 포기가) 진행됐지만, 북미 간에는 70년 동안 불신의 기초 위에서 어려운 비핵화를 만들어나가는 상황"이라며 다른 비핵화 사례와 유사한 방법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뢰구축과 함께 비핵화를 만들어나가야 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는 다른 국가들의 비핵화에 비해)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신뢰구축과 (비핵화가) 함께 나가야 된다"고 덧붙였다.

다른 방식의 접근에 대해 강 장관은 "물론 앞으로 어떻게 만들어나갈지는 이번에 북한을 다녀오는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성과가 중요한 잣대가 되겠지만, 이를 기본으로 융통성을 가지고 비핵화가 필요로 하는 조치, 또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 북한이 필요로 하는 상응 조치를 어떻게 매칭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융통성이 필요하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비핵화와 관련된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상응 조치를 한꺼번에 포괄적으로 고려하면서 로드맵을 만들어 나가야 되지 않겠나 하는 융통성 있는 생각이 있고, 이는 우리도 물론이고 미국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편 강 장관은 <워싱턴 포스트>와 인터뷰에서 북한의 영변 핵 시설 폐기와 종전선언의 교환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그는 "영변 핵 시설의 영구적인 폐기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며 "만약 북한이 종전선언과 같은 미국의 상응 조치에 따라 영구적 폐기에 나선다면 이는 비핵화를 위한 큰 도약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4일 브리핑에서 강 장관은 영변 핵 시설의 영구 폐기와 종전선언이 등가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종전선언이 이미 많이 얘기가 되었고, 한미 사이에서도 많은 협의가 있었다"면서도 "그밖에도 다른 상응 조치들이 있을 수 있다. 무엇이 결과로 나올지에 대해서는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결과를 좀 기다려봐야 될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다만 그는 "우리는 지속적으로 종전선언을 '연말까지' (이뤄낸다는) 목표를 가지고 추진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미국과 여러 계기에 계속 협의를 해왔다. 그래서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의 이해도 상당부분 진전되어 왔고, 우리가 이것을 왜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더 깊어졌다"며 종전선언에 대해 미국이 어느 정도 수용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강 장관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과 관련 "방북이 이렇게 빠른 시일내로 이루어진 것은 좋은 징조라고 생각한다"며 북미 간 협상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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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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