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이 틀렸다는 것을 우리 둘이 증명할 것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9.9절' 열병식에 핵미사일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9.9절을 통해 전한 메시지는 "평화와 경제 발전이었다"며, 이는 "매우 크고 긍정적인 입장 표명(statement)"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자신과 김정은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취지의 글을 담겼다.
트럼프가 "모든 사람들"이라고 칭한 대상은 '미국의 외교정책 기득권 세력(foreign-policy establishment)'이다. 이들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특히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진영의 몰락 이후 '자유주의적 패권'을 앞세워 미국 외교를 쥐락펴락해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그리고 인권 등의 '가치'를 앞세우고, 다른 한편으론 막강한 군사력과 금융시장 지배력을 통해 미국 패권주의의 세계화와 영구화를 꿈꿔왔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이 앞으로도 유일 초강대국으로 남아 있어야 하고, 동맹은 강화·확대되어야 하며, 적대 국가와 적대 세력도 존재해야 한다는 철통같은 믿음을 가져왔다.
이처럼 미국이 '세계 경찰'을 자처함에 따라 미국의 '기지 국가화'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 <기지 국가>의 저자 데이비드 바인의 지적처럼, "미국이 많은 숫자의 기지와 수십만 명의 병력을 해외에 상시 주둔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미국의 대외 정책과 국가 안보 정책에서 거의 종교적 신념이나 다름없다."
트럼프의 도전과 주류의 반기
여기에 도전장을 내민 인물이 바로 트럼프이다. 그는 미국 국민, 특히 백인 남성들의 삶의 질도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에서 주류 세력이 신봉해온 세계 경찰론은 한가한 소리로 간주했다. 그래서 그의 대통령 당선은 미국 외교정책 주류에겐 자유주의적 패권의 종말처럼 비춰졌다.
이에 따라 2016년 대선에선 진풍경이 벌어졌다. 트럼프의 경쟁 상대인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공화당의 주류, 특히 외교안보정책 관계자들은 "트럼프의 대통령직 수행은 전적으로 부적절하다"며 낙선 캠페인을 전개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똘똘 뭉칠수록 세계 경찰론에 신물을 느낀 민심과는 멀어졌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국제정치학자인 스티븐 왈트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의 외교 엘리트들이 지난 25년간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면, 트럼프는 아마도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하지만 미국 주류는 반기를 더 높이 들고 있다. 자유주의적 개입주의의 신봉자였던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과 유가족은 매케인의 장례식 초청자 명단에 트럼프는 제외시킨 반면에 전직 대통령인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는 포함시켰다.
미국 정부 내의 광범위한 내부 고발자들은 밥 우드워드를 통해 "행정적인 쿠데타"가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 생생히 전했다. 심지어 자신을 "저항 세력의 일원"으로 소개한 고위 관료는 트럼프와 앙숙 관계에 있는 <뉴욕타임스>에 익명의 기고문을 보냈다.
이들이 트럼프에게 반감을 가진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의 외교정책에 대한 불만이 가장 핵심적인 사유라는 점은 분명하다. 한반도 문제는 그 한복판에 있다. 트럼프 행정부 안팎에 있는 반대자들의 눈에는 트럼프가 한국과 북한을 상대하는 방식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FTA도 있지만, 트럼프의 주한미군 철수론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이들은 또한 북한을 상대로 한 트럼프의 '전쟁불사론'과 북미정상회담 모두 불안하게 바라봐왔다. 트럼프의 접근법은 미국 주류가 자유주의적 패권 유지에 가장 유리한 환경으로 간주해온 '한반도 현상 유지'의 판을 크게 뒤흔들 것이라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종전선언은 가능할까?
한편 김정은은 최근 면담한 문재인 정부의 대북 특사단을 통해 회심의 승부수를 던졌다. "종전선언은 한미동맹의 약화나 주한미군 철수와는 별개이다"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미국 내 일각에서 '북한이 종전선언을 요구하고 있는 이유는 주한미군 철수를 겨냥한 것'이라는 주장을 일축하면서 미국을 향해 '안심하고 종전선언을 하자'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을 넘겨받은 미국의 판단이 주목되는 까닭이다.
그런데 종전선언과 주한미군의 미래의 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도 있다. 주한미군의 철수 여부는 북한의 요구가 아니라 트럼프의 결정에 따라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종전선언이 나오기도 전에, 심지어 북미간의 대결이 첨예했던 작년에도 주한미군에 대해 강한 회의감을 피력한 바 있다. 이러한 입장은 6.12 북미정상회담 직후에도 나온 바 있다.
이에 따라 종전선언이 이뤄지고 이에 힘입어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 본격화되면, 트럼프가 또다시 주한미군 철수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 주한미군의 대폭적인 감축이나 철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겐 김정은보다 트럼프가 더 두려운 존재인 셈이다. 그래서 이들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미미하다는 이유를 들어 종전선언을 반대할 것이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
김정은은 남측 특사단을 통해 트럼프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와 비핵화에 대한 본인의 진정성을 강조하면서 트럼프의 1기 임기 내, 즉 2020년 이내에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통해서는 트럼프에게 보내는 친서까지 전달했다.
친서에는 무산된 폼페이오의 방북을 다시 요청하는 내용 '이상'이 담겼다. 2차 북미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이다. 그 행간에는 미국 외교안보팀에 대한 불신과 트럼프만은 믿고 싶다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친서를 받아든 트럼프도 화답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친서의 주요 목적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또 다른 정상회담 개최를 요청하고 일정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공개하면서, "우리는 이에 열려있으며 이미 조율하는 과정에 있다"고 밝힌 것이다.
실제로 2차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하지만 본인들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김정은과 트럼프의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트럼프의 최대의 적은 여야와 정부 안팎을 막론하고 포진해 있는 외교정책 기득권 세력들이다. 이들은 북미 적대관계 청산을 목표로 삼아온 김정은의 적이기도 하다.
하여 한반도 평화를 둘러싼 핵심적인 전선은 북미관계에 있다기보다는 '김정은-트럼프 대 미국 기득권 세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정상이 미국의 구조화된 관성을 깨고 세계 외교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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