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케어 도입이 필요한 이유
일본에서 유행하는 말 중에 '8050세대'가 있다. 80대의 노인을 50대의 자녀가 돌본다는 말이다. 나는 강의를 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셀프 요양'을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곤 한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지난해 1.05명이라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데 이어, 2018년에는 0명대로 떨어지는 세계 유일의 국가가 되리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그에 반해 부양이 필요한 노인의 수는 점점 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내가 요양을 받아야 될 때에는 외국인 요양 인력이나 로봇에 의존하는 등의 다른 대책이 없다면 셀프 케어(Self-Care)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올해 문재인 정부는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돌봄 서비스와 복지 확충, 지역 사회 중심의 건강관리 체계 강화, 돌봄 수요자의 지역 사회 정착 지원, 병원과 시설의 합리적 이용 유도, 커뮤니티 케어 인프라 강화와 책임성의 제고라는 5대 핵심 과제를 제시했다. 특히, 읍·면·동 사무소에 돌봄 통합 창구를 설치하고 종래의 보건·의료·복지 서비스에 관한 여러 기관과 단체들을 연계함으로써 지속적인 돌봄 체계를 갖춘다는 구상이다.
그런데 커뮤니티 케어는 사실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 아니다. 영국이나 미국, 일본 등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시행돼 오고 있다. 이것은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가정이나 지역을 떠나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의 욕구나 권리에 적합한 급여 내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AIP, Aging in Place) 내지 재가 서비스의 또 다른 버전을 의미한다.
커뮤니티 케어를 위한 전제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커뮤니티 케어 또한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우리 정부와 국민이 커뮤니티 케어를 준비하고 맞이할 때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내용들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커뮤니티 케어의 핵심은 '돌봄이 필요한 누구라도 가정이나 지역 사회 내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커뮤니티 케어는 지금 당장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다만, 그에 따른 전제가 바로 '사회적 용인'이다. 케어의 이용 주체는 돌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이고, 이중에서도 가장 먼저 돌봄이 필요한 대상에는 아동과 노인, 장애인도 포함된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 사람들 모두 자신의 가정과 지역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이들을 보호 대상으로만 여길 뿐, 공동 생활의 주체로서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사회적 용인'에는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살아갈 권리에 대한 용인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죽을 권리[나는 이것을 Dying in Place(DIP)라고 부른다]에 대한 용인도 포함한다.
커뮤니티 케어를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할 것들
국가와 사회는 '커뮤니티 케어 체계'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먼저 단위 내지 구역별 커뮤니티 케어 체계와 인접 또는 상위 커뮤니티 케어 체계와의 연계성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 지역민이 가지고 있는 욕구나 권리는 지역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 즉, 사회보장이나 사회복지에 관한 문제를 국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나 그 지역의 책임으로만 지워서는 안 된다.
나는 치매 국가책임제와 관련하여 치매인과 그 가족을 위한 의료·복지 등의 영역에서 '이음새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른바 치매 케어 패스(Care-pass for Dementia)를 언급했다. 경도 인지 저하 상태나 경증 치매로부터 중증이나 말기 그리고 임종에 이르기까지 촘촘한 사회 안전망(Safety-Net) 안에서 이용자 관점에서 욕구와 선택에 따라 보호·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커뮤니티 케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노인을 대상으로 하든,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든, 누구라도 그 지역에 살면서 그 사람이 처한 상태나 욕구에 따라 적절한 서비스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그곳에서', '즉시'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케어는 주로 병원이나 시설 등이 감당해왔다. 이때문에 커뮤니티 케어 정책이 본격화되면 요양병원 등을 비롯한 여러 영역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기존의 인프라와 조화를 이루거나 기능을 재정립해야 하며, 여기에 어떤 새로운 역할을 부여해 주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보장과 사회복지에 관한 공적·사적 기제도 잘 활용해야 한다. 사적 조직도 공적 사회보장·사회복지를 충실하게 실현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또, 4차 산업의 발전에 따른 정보통신기술,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기술도 활용해야 한다. 치매에 관한 여러 첨단기술을 접목함으로써 새로운 산업을 일으킬 수도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해 보다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커뮤니티 케어는 돌봄의 공간적 확장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단순히 돌봄이 필요한 누군가를 병원이나 시설로부터 가정 또는 지역 사회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지 않다. 가정과 지역 사회가 병원, 시설 같은 보호기관과 교류하고 순환해야 한다.
인간의 욕구는 다양하다. 예컨대 치매라는 질환을 가진 사람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의료·보건·간호·의약·복지·요양·인지재활·위생·주거·환경·법률 등 여러 분야에서 이들에 대한 욕구나 문제를 파악하고 지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통 사정 시트'를 개발·활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후 대응 체계'이다. 여기에는 장례 문제뿐만 아니라 유산이나 유품의 상속·반환·처리와 같은 문제도 있다. 3년 전쯤 내가 근무하던 시설에 계시던 무연고 노인이 사망했다. 며칠 후 직원이 통장 하나를 건네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통장을 보니 약 40만 원의 잔금이 남아 있었다. 지자체를 통해 반납할 수 있을 것으로 쉽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회수 시스템이 아직 마련돼 있지 않았다.
이런 사례는 또 있다. 영구 임대 아파트에서 생활하며 재가 서비스를 이용하시던 분이 사망했다. 남긴 것으로는 500만 원의 보증금과 집기가 전부였다. 아들이 한 명 있는데 행방불명이다 보니, 연락할 수도, 찾을 수도 없었다. 관리사무소에 임대 보증금 반환과 집기 정리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런 일들은 우리 사회에서 특별하지 않다. 따라서 사후 대응과 관련한 시스템을 마련하고 점검하는 것도 병행해야 한다.
예방적 관점에서 커뮤니티 케어를 다루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가정이나 지역에서 살아가도록 한다는 것은 병원 입원이나 시설 입소를 그만큼 낮추겠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당연히 예방이 선행돼야 한다. 사후 관리에 따른 비용이나 노력이 예방보다 훨씬 많이 들어간다. 관리를 위한 관리 체계가 아닌 예방에서부터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치매 국가책임제나 커뮤니티 케어, 최근 이슈로 제기되고 있는 발달 장애인 국가책임제 등의 공통점은 이들이 '지역에서 살아가도록 한다'는 데 있다. 즉, 이것들은 각각의 다른 정책이 아니며, 이 중에서도 커뮤니티 케어는 여러 사회보장 내지 사회복지 정책을 포섭하는 거대한 계획이다. 때문에 구체적인 설계와 점검이 가장 중요하다. 할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하도록 문을 열어두고 기회와 지원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커뮤니티 케어의 지속성뿐만 아니라 인구 절벽과 같은 미래를 대응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장봉석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은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 부회장, 치매케어학회 회장, 복지마을 대표이사, 우석대학교 겸임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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