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케어, '선진국 흉내내기'에 그치나

[사회서비스 10년, 또 다른 10년을 생각한다] ③

장기요양보험과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 제도 등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사회서비스가 제도적으로서 도입된지 벌써 10년 이상이 지났다. 하지만 지역사회복지관 등 기존의 사회'복지'서비스는 그대로 존속되고, 최근에는 사회서비스원,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 커뮤니티 케어 등 서로 다른 방향의 정책이 동시에 추진되는 등 혼란은 여전하다. 이에 사회서비스를 도입 이전부터 연구해 온 연구자로서 각각의 쟁점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앞으로 10년의 방향을 논의해보고자 한다.

이 기획은 1) 사회서비스 공단 2)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등 찾아가는 복지서비스 3) 커뮤니티 케어 4) 사회서비스의 또 다른 10년을 위한 제언 등 4회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필자 주)

올해 초 복지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가 정책방향으로 제시되었을 때 솔직히 좀 뜬금없기는 했다. 이미 사회서비스와 관련해 사회서비스공단,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 등 여러 정책들이 차지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또다른 정책방향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었다.

물론 조짐이 없지는 않았다. 2017년 여름 5년째 광화문 농성을 하던 장애인 단체를 찾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장애인 등급제 폐지 등과 함께 "장애인 수용시설 폐지를 위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시설 폐지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생활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는 지원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서구 복지국가에서 70~80년대 실현된 커뮤니티 케어도 그렇게 출발했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유명한 복지국가 건립 이후에 비인간적인 수용시설에 대한 반성이 있었고, 그래서 지역사회(커뮤니티)에서 돌볼 수 있도록(케어) 하자는 것이 커뮤니티 케어의 시작이었다.

커뮤니티 케어의 의미 – 노령, 장애에도 지역사회에서의 주도적 삶 보장


하지만 단지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시설수용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돌보겠다는 것은 당사자의 보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커뮤니티 케어를 가장 일관되게 정책적으로 추진했던 영국의 경우 80년대 말에 그 의미를 "가능한 한 완전하고 자립적인 삶을 주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선언하였다.

다시 말해 커뮤니티 케어란 아동이나 노령, 장애, 만성질환 등의 문제를 경험하는 성인이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을 때 이에 대한 수발 및 가사를 보조하거나, 학대 또는 방임 등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직장이나 교육 등에 사회적 참여나 관계의 제한을 완화하며, 그 가족들이 당사자에 대한 돌봄 때문에 사회적 역할에 제한이 생기는 것 역시 완화하기 위한 정책이다.

그런데 이를 정책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일단 노령이나 장애,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사회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사회의 충분한 사회서비스 지원 없이 지역에서 살라고 하는 것은 그 부담을 가족에게 모두 뒤집어씌우거나 방치하겠다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우리나라 장애인의 경우에는 활동지원의 대상이 되는 3급 이상의 장애인 수는 100만 명 규모이다. 그런데 집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재가서비스 대상자뿐만 아니라 시설입소 장애인을 모두 합해봐야 15만 명 규모에 불과하다. 서비스 공급량 자체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노인의 경우 2015년 기준으로 일상생활에 제약이 있는 노인의 비율이 6.9%인데 장기요양보험과 노인종합돌봄 등의 수급률이 6.7%에 달해서 그래도 어느 정도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장기요양보험 중 집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재가급여는 하루 3시간이 전부이다. 그러니 상황이 조금만 심각하면 시설입소를 피할 수가 없다. 장기요양보험이 커뮤니티 케어는커녕 노인 시설입소 부담을 경감시켜주는 제도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커뮤니티 케어의 핵심은 당사자 욕구 중심의 통합적이고 유연한 서비스 설계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커뮤니티 케어를 추진하고자 한다면 그만큼의 투자와 사회서비스의 제도적 확대가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확대만 한다고 커뮤니티 케어가 가능할까? 여기에 오히려 더 핵심적인 전제가 필요하다. 당사자를 중심으로 통합적이고 유연하게 서비스가 설계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다시 영국의 사례로 돌아가 보면, 커뮤니티 케어를 공식적 정책방향으로 추진하면서 28개 지역에서 3년간 다양한 시범사업을 통해 모델을 구축하였었다. 그때 개발된 모델의 핵심은 각 지방정부 사회복지사 개개인에게 개별 당사자의 욕구에 맞추어서 유연하게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설계하여 '케어 패키지(package of care)'를 구성할 수 있도록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위임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나중에 당사자의 선택권이 강조되면서 서비스뿐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를 직접 구매할 수 있는 현금지원까지 포함된 개인예산제(personal budget)로까지 발전하였다. 한 당사자의 욕구에 따라 해당하는 각종 급여와 서비스를 한데 묶어 가능한 지원 예산 총량을 계산하고 그 범위 안에서 당사자가 원하는 대로 서비스와 급여를 다시 구성해주는 것이다.

가령 장애가 있는 당사자가 아침에 일어날 때 옷을 갈아입는 등에 대한 개인 수발이 필요한 경우, 경사로 등 집을 고쳐야하는 경우, 직장이 있다면 출퇴근을 도와주어야 할 경우, 집에서는 거동이 가능하지만 장보기에 도움이 필요한 경우 등 다양한 욕구를 모두 진단해, 사람을 직접 파견하거나 또는 현금을 주어 직접 해결하게 하는 등 욕구에 맞는 문제해결을 찾는다. 이를 지방정부의 사회복지사가 일정한 한계나 통제 아래에서 욕구진단을 하고 당사자와의 협의를 통해 서비스를 구성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욕구'가 아닌 '정보'에 따라 혜택이 주어지는 우리나라 지역복지의 역진성


그런데 우리나라의 지역사회의 복지는 정확히 그 반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앞선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이하 찾동)에 관한 글(관련 기사 바로 보기)에서 우리나라의 복지는 개수만 많고, 이를 통합하겠다는 통합 사례관리가 공적 서비스를 연계하기보다는 민간자원을 동원하여 빈곤구제를 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지역사회 복지 수준은 해당 당사자가 신청 가능한 복지를 스스로 더 많이 알아낼수록, 각각의 까다로운 행정적인 수급자 기준을 맞추어서 신청할 줄 알수록 많은 혜택을 받고, 그렇지 못하면 지속적으로 배제되는 구조이다. 더 많은 욕구와 어려움이 있을수록 정보가 더 부족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기본적으로 역진적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서비스만 확대된다면 역진성을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조의 원인이 무엇일까? 첫째, 우리나라 지역사회의 공공복지에서 당사자의 욕구를 진단해서 공적 서비스를 연결시키는 체계 자체가 있었던 적이 없다. 모든 개별 급여나 서비스는 당사자가 알아서 진단서 등 욕구에 대한 증빙자료를 가져와야 하고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은 그에 따른 행정처리만 해줄 뿐이다. 둘째, 이렇게 신청하는 것도 수십, 수백가지에 이르는 복지사업에 일일이 따로 신청해야 하는데 담당 기관, 부서, 담당자가 거의 제각각이다. 상황이 이러니 알아서 이를 다 찾아 서류 갖춰 신청할 줄 알게 된 사람만이 혜택을 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열심히 찾아봐야 민간구호 수준의 도움밖에 줄 수가 없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 당사자를 중심으로 욕구에 따라 급여와 서비스를 설계할 수 있는 커뮤니티 케어야 말로 우리나라 지역사회 공공복지에 가장 절실한 과제이고, 이를 문재인 정부가 정책방향으로 제시했다. 그래서 커뮤니티 케어는 제대로 실현만 된다면 우리나라 지역사회 공공복지의 발전에서 역사적인 전환이 될 수 있다.

여전히 개수 늘리기식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정부의 계획


그런데 과연 문재인 정부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진단을 근거로 커뮤니티 케어를 제시한 것일까? 그래서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는 대안으로 커뮤니티 케어가 추진되고 있는 것일까? 현재까지의 모습은 안타깝게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 발표된 보건복지부의 "커뮤니티 케어 추진방향"을 살펴보면 통합재가급여, 주간활동서비스, 아동·외출지원, 주거환경 개선, 장애인 건강주치의, 중증소아환자 재택의료, 가정형 호스피스, 정신건강 사례관리 등 각각의 문제마다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하거나 기존 서비스를 확대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개수 늘리기 식의 접근에서 큰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통합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체계로 제시된 것은 기존의 민관협력기구인 지역사회보장협의체나 통합 사례관리 조직인 희망복지지원단을 통한 정보 공유나 민관협력을 강화하고, 읍·면·동사무소에 담당인력을 배치하여 복지급여나 서비스에 대한 신청대행이나 정보제공을 하겠다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즉 기존의 역진적인 구조에는 변화 없이 민간자원 동원에 머무르고 있는 통합 사례관리를 강화하겠다는 것 이상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것을 비추어 보면 문재인 정부의 커뮤니티 케어는 서국 복지국가에서 정착된 정책처럼 지역사회 안에서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 당사자 중심으로 유연하고 통합적인 서비스가 설계되어 제공될 수 있는 체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지금보다 서비스를 조금 늘리고, 통합 사례관리를 통해 국민의 자원봉사자 성금으로 빈곤 구호에 집중하던 것을 서비스 문제에도 좀 더 활용하겠다는 정도에 불과한 계획을 커뮤니티 케어로 포장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선진국 흉내내기식 정책은 처음은 아니다. 복지사업 개수만 수백 가지에 이르고 있는 현 상황에서 상당수는 선진국의 정책사례를 들여온 것이다. 그런데 정말 국민의 복지향상이 아니라 각 정부 부처와 부서의 실적을 위해서 도입 자체에만 급급하다보니 정말 그 선진국 정책사례의 취지에 맞는 범위와 규모의 정책이 아니라 적당히 흉내 내는 정도의 정책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종류만 많고 실질적인 복지향상은 적은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찾동 전국화에 발목 잡혀있는 문재인 정부의 커뮤니티 케어


커뮤니티 케어도 그 의미는 제대로만 된다면 역사적 전환이 될 만큼 의미가 크고 매우 절실한 과제이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이미 추진 중인 찾동의 전국화나 사회서비스공단 등 다른 정책에 대한 총체적인 고려보다는 이를 건드리지 않는 수준에서 추진되다 보니 그에 걸맞은 정책적 전환을 기대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이미 찾동 전국화에 대한 전 글에서 일선 집행단위인 읍·면·동에서는 공적 지원의 통합은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실질적인 공적 지원의 통합이 필수적인 커뮤니티 케어에서 담당인력을 읍·면·동에 배치하겠다는 추진 계획은 읍·면·동 중심의 찾동 전국화에 발이 묶여있는 꼴이다.

또한 만약에 시·도 광역 지방자치단체에 설치되는 사회서비스원(공단)에서 일부 주장처럼 사회서비스의 컨트롤 타워가 된다면 커뮤니티 케어에서 또 다른 필수요소인 유연한 서비스는 어려워지게 된다. 지역사회에서 멀어질수록 서비스는 표준화되고 경직되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욕구에 맞춘 유연한 설계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진국의 역사적 경험에서나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의 구조를 보아서나 커뮤니티 케어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지역사회에 밀착되어 있으면서 지역사회에서 포괄적인 민주적 위임을 받아 정치적으로 책임이 가능한 기초지방자치단체(이하 기초지자체)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사회서비스 발전에서도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이미 사회서비스공단에 대한 전 글에서 다룬바 있다. (관련 기사 바로 보기)

이 때문에 커뮤니티 케어의 인력이 보강된다면 기초지자체가 먼저이어야 하고, 기초지자체를 중심으로 건강보험공단으로 분리되고 장기요양보험급여나 국민연금공단으로 분리되어 있는 장애인등급판정 등이 통합되어 다양한 지역사회서비스와 함께 어떻게 당사자 욕구에 맞게 설계될 수 있는가가 커뮤니티 케어의 실현여부를 가능할 수 있는 핵심적인 관건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는 8월말에 커뮤니티 케어 종합계획과 연도별 추진계획을 내놓겠다고 예정하고 있어 섣부른 단정은 이르다. 정말 이 정부가 커뮤니티 케어를 실질적으로 구현하여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라는 비전에 맞게 지역사회에서 일상적인 삶에 대한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는 지역사회 공공복지의 새로운 역사적 전환을 만들어 갈지, 아니면 또 다른 선진국 흉내내기를 반복할지는 이 계획이 기초지자체 중심의 통합적이고 유연한 지역사회 서비스체계 구축을 실질적으로 담고 있느냐를 보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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