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SNS, 나라에 '크게' 도움 안 된다

[프레시안books] <시대의 딜레마, 한국의 스피커들>

오해는 말자. 국정 최고 책임자가 국민과의 소통에 매진하는 일을 어찌 나쁘게만 보겠나. 역대 어느 정부도 대통령의 '소통'을 등한시하지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300명의 패널을 불러 국민과의 대화를 나눴고, 윤석열 전 대통령은 매일 아침 기자들을 모아 도어스테핑을 진행했다. 선출직인 대통령에게 국민과의 소통이란 업무이자, 어떻게 보면 의무다. 소통은 대통령이 직에 맞는 업무와 의무를 수행하는 '노동'이고, 때문에 다른 많은 내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과 같이 어떤 방식으로든 나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국민과의 대화를 천명했던 문 전 대통령은 야당으로부터 '구중궁궐 청와대에 숨어 소통을 거부한다'는 공세를 받았고, 선거에서 그 공세는 유효했다. 청와대를 나와 김치찌개로 본인의 소통 의지를 선전하던 윤석열은 어떤가. 그의 야심찼던 도어스테핑은 임기 초 갖은 기행 끝에 중단됐다. 이후 그는 일부 국민, 즉 극우유튜버들과의 소통에 매진하더니 부정선거론에 심취해 내란을 시도하고 탄핵당했다. 대통령의 소통은 엄연히 노동의 일종이나, 그것이 실제 나라에 이바지할지는 소통의 방법과 내용에 따라 달라지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의 SNS 소통은 어떤가. 최근 이 대통령의 SNS 활용은 그야말로 광폭행보다. 수사기관장 국무회의 배석을 두고 이용자와 논쟁을 벌이고, 외국인 노동자가 내국인 노동자에 비해 '크게' 도움 안 된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다시 다문화가족 우대 정책을 둘러싼 논쟁을 일으켰다. 진보진영 내부에서 대통령의 '역차별' 인식에 대한 비판이 일고 여당 내에서도 "잠 좀 주무시라"는 고언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새로운 소통채널로 청와대의 유튜브 방송을 신설하고는 오히려 SNS 소통 '확장'을 선언한 상황이다.

대통령은 이 모든 과정을 더 나은 결과를 도출케 하는 이른바 정반합의 과정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그는 유튜브 '대통령의 Y' 첫 방송에서 "정책이라는 건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논쟁을 해야 된다. 논란이 나쁜 게 아니"라고 했다. 다문화 논란을 일례로 들면 가치판단과 별개로 '논쟁적 측면'이 있는 다문화 정책을 본인이 '의제화'한 것이니, 그 촉발된 논의에 따라 더 좋은 결과가 도출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동시에 대통령은 이 '논의'를 위해 진영에도 알고리즘에도 PC(정치적 올바름)주의에도 갇히지 않겠다고 천명한다.

그런데 해당 발언은 "대통령의 권한이 매우 크고 영향력도 큰데 너무 일방적이지 않느냐"라는 세간의 지적을 대통령 본인이 언급한 뒤 나온 말이다. "논란이 나쁜 건 아니"라는 대통령의 대답은, 그의 권력과 그에 따른 '일방적 말하기'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만한 명답인가? 정치-행정 권력을 움켜쥔 대통령이 해석 권력을 행사하는 '스피커'를 자처한다. 질문받는 권력에 남지 않고 직접 의제를 발굴하고 평론하겠다고 천명한다. 이 전향적인 소통 방식의 빛과 그림자를 우리는 대통령 주변의 스피커들에게서 이미 목도한 바 있다.

▲<시대의 딜레마, 한국의 스피커들>, 지승호 ⓒ인물과사상사

인터뷰어 지승호는 책 <시대의 딜레마, 한국의 스피커들>에서 유시민-김어준-진중권-최욱-정영진-전원책-전한길-고성국 등 '스피커' 8인의 과거와 현재, 화법과 전략, 그 사회적 의미 등을 분석하며 그들의 빛과 그림자를 조명한다. 권력자가 된 스피커들은 달라진 시대적 소명을 수용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환호하는 대중 속에 머문다. 진보는 민중을 향한 애정을, 보수는 공동체의 생존을 잊은 채 결집만을 반복한다. 광장을 회복하기 위해선 그들이 잊은 '오래된 원칙'이 다시 서야 한다. 저자가 진영을 넘나들며 8인의 스피커를 고찰하는 이유다.

특히 이 대통령의 강력한 우군이었지만 지금은 본인들의 영향력을 토대로 대통령-여당과 정치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유시민-김어준에 대한 분석은 흥미롭다. 저자는 정치를 떠나 진보 스피커로 자리한 유시민이 "정치 현실을 직접 경험했다는 권위"로 강한 해석 권력을 지니면서도 "이제 그 권위는 정치인의 직접적인 책임과 분리"됐다는 사실을 꼬집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세상을 설명할 언어를 제공"해온 그의 논리적 능력이, 생각할 힘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생각을 정한 사람에게 강한 확신을 주는" 권위로서 작용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실제로 최근 유시민 작가와 이 대통령의 갈등 국면 속에서 민주당도 유 작가의 이 같은 측면을 부각해 비판해왔다. '정치적 책임에선 자유로우면서 정치적 영향력만을 행사하는', 그리하여 계파를 결집시키고 지지자들의 신뢰를 뒤흔들 수도 있는 '해석 권력자' 유 작가는 당 주류에겐 골칫덩이가 된 지 오래다. 반대로, 이 같은 해석자들의 논평을 직접 반박하며 논쟁에 뛰어드는 이 대통령의 '소통'은 어떤가. 김민석 대표의 '민티07' 출범이 일각에서 그런 평가를 얻었듯, 정치권력이 스스로 해석의 권한까지 손에 쥐려는 움직임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김어준의 '언더독 정서'에 대한 분석도 인상적이다. 저자는 과거 "당연하다고 믿어 온 뉴스의 질서를 의심하게 만들고" "기존 언론이 설정해 놓은 '의제의 위계'를 뒤집은" 김어준의 행보를 평가하는 한편, 그 과거를 지나 현재는 "김어준 자신도 막강한 의제 설정 능력을 갖게 됐다"는 점을 주요하게 짚는다. 언더독에서 의제 권력으로 거듭난 김어준이 자기검증이 아닌 자기확신에 치우친 채 여전히 "쫄지마"라는 구호를 외칠 때, 그를 지지하는 청중들은 음모론에마저 쉽게 감응해 결집하고 결과적으로 공론장은 '좁혀진다.'

이 대통령은 보수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의 글까지 꼼꼼히 퍼나르며 행하는 본인의 '의제 설정'이 긍정적인 논의의 과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의제를 설정하겠다는 대통령의 위치는 그 옛날 <조선일보>와 싸우던 김어준에 가까운가 '민주당의 상왕'으로 불리는 김어준에 가까운가. 말 한 마디에 지자체가 다문화정책을 재검토하고, 중대범죄수사청장이 국무회의에 달려오는 위치에 선 자의 '의제 설정'은 과연 공평한가. 언제나 '민생이 먼저'라는 말에 밀려나는 건 사회적 소수자인 사회에서, 우리는 그가 설정하는 의제의 시급성과 중요도를 믿을 수 있는가.

저자는 이 책의 핵심 메시지로 역지사지와 새옹지마를 꼽는다. 내가 옳다고 확신할 때에도 상대방의 자리에서 한 번 더 생각하는 것, 자신의 현재 위치가 영원하다고 착각하지 않는 것. 지난 정부의 야당탄압, 혹은 비상계엄 사태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들어 '직접소통이 내 목숨줄'이라고 강조하는 이 대통령에게도 권하고 싶은 메시지다. "이제는 야당이 아니"라는 말은 민주당뿐 아니라 대통령에게도 적용돼야 한다. 본인의 '시간'을 착각한 채 '입장'만 확신한 상태에서 내미는 소통은, 이 나라에 적어도 '크게' 도움은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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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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