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집단학살, 세상이 잠든 사이 자라난 괴물

[프레시안books] UN특별보고관 프란체스카 알베네제 <세상이 잠들 때>

유엔(UN) 팔레스타인 점령지 인권 특별보고관 프란체스카 알바네제가 은행 계좌를 쓰지 못하게 된 진 1년이 넘었다. 돈을 인출하거나 이체하지도, 의료보험사가 환급한 치료비도 받지 못한다. 카드도 쓰지 못해 현금 생활을 한다. 미국 정부가 지난해 7월 그를 특별제재대상에 올리며 계좌를 동결시킨 후다. '테러리스트'나 마약 밀수업자에 흔히 적용되는 제재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벤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체포영장을 발부하는데 참여하거나 의견을 낸 이들이 겪은 일이다. 알바네제는 이에 더해 그해 봄, 48개 기업·대학·금융 기관 등 이스라엘에 무기, 장비, 투자금 등을 제공한 기업에게 집단학살 범죄에 공모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그중엔 빅테크 알파벳와 팔란티어, 무기업체 록히드 마틴, 자산운용사 블랙록, 석유회사 셰브론, 중장비 제조기업 캐터필러 등 미국 주요 기업이 있었다. 한국의 HD현대도 포함됐다. 그리고 이들 기업명을 공개한 '점령 경제에서 집단학살 경제까지' 보고서를 냈다. 그 대가가 계좌 동결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알바네제 보고관은 지치지 않고 꾸준히 증거를 모으고 보고서를 쓰고 있다. 지난 9월 발간된 <세상이 잠들 때>(어크로스)가 가장 최근 저서다. 이스라엘군에 살해된 6살 아이 힌드 라잡, 예루살렘의 가이드 아부 하산, 가자지구 병원에서 일한 의사 가산 아부 시타 등 10명의 팔레스타인 및 거주자를 만나 이들의 삶과 증언을 실었다. 이를 통해 78년간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와 학살 행위를 정확하게 드러났다.

'정확하게'는 알바네제 보고관을 표현하는 또다른 수식어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정확하게 표현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집단학살은 '분쟁'으로 명명되고, 가자지구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켜 야외 수용소라 불리는 구역은 '안전지대'나 '보호구역'이라고 불린다. 정치인, 행정가, 외교 공무원, 교수 등 지식인 계층의 부끄러운 모습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세상이 잠들 때>엔 이들 계층을 향한 비판이 자주 나온다.

알바네제는 "(지식인들이) 왜 이스라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애썼을까?"를 묻는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강을 폭력적이라고 하지만, 그 강을 막는 제방은 아무도 폭력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말을 인용한다. 각국의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모든 걸 휩쓰는 식민통치와 아파르트헤이트는 묻어 두고, 이를 막으려는 제방의 폭력성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프란체스카 알베네제 <세상이 잠들 때>(어크로스 출판) ⓒ어크로스

300발 총알 맞은 6살 힌드… "서구의 중동 전략과 이스라엘은 한 몸"

10명 중 가장 처음 등장하는 힌드 라잡의 이야기는 처참하다. 2024년 2월, 몸에 300발이 넘는 총알을 맞은 상태로 발견된 6살 소녀다. 인근엔 그녀를 구하러 가는 적십자사의 구급차가 있었고, 차 안엔 구조대원들이 죽어 있었다. 힌드의 가족 6명은 이스라엘군 포격으로 몰살됐고, 유일하게 생존한 힌드가 "제발 구해달라"며 구조대에 전화한 터였다. 이때 적십자사와 힌드가 통화한 3시간의 기록이 남았고, 이 기록은 '힌드의 목소리'란 영화로 만들어졌다.

여섯 번째 증언자 가산 아부 시타는 팔레스타인계 영국인 의사다. 가자지구에서 의사로 일했다. 집단학살이 시작된 2023년 10월에도 가자지구에 있었고, 침략 전쟁이 발발한 직후 43일 동안 쉬지 않고 수술을 집도했다. 마취제, 소독약, 전력이 모두 끊긴 극한의 상황에서 총에 맞은 어린 아이들을 수술해야 했던 참혹한 상황을 여러 언론과 국제형사재판소에 증언했다.

다시 영국으로 돌아간 그는 2024년 80%가 넘는 압도적인 학생들의 찬성표를 받고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총장으로 선출됐다. 직후 영국이스라엘변호사협회의 고발, 영국 의사협회의 의사 면허 정지 요청, 방송국의 인터뷰 제한 블랙리스트 등재 등이 이뤄졌다. 컨퍼런스 참석차 방문해야 했던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에서 입국이 금지돼 그는 소송까지 해야 했다.

그는 "이 '전쟁'은 서구 제국주의와 이스라엘 사이 연결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연속체임을 보여줬고, 이스라엘은 지난 수 세기의 모든 식민지들처럼 서구와 결속된 식민지로서, 그 지역(중동)에서 서구 제국주의 프로젝트의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밝혔다. 또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며 "잘 보이지 않는 나머지 부분은 바로 그 집단학살을 가능하게 하는 전체 시스템이다. BBC, CNN, <워싱턴 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 등 그것을 지원하는 단체들이 있다"고 말했다.

▲ⓒMourners carry the body of Palestinian Abdullah Moussa, 30, who was killed in an Israeli airstrike, during his funeral in Khan Younis, southern Gaza Strip, Saturday, June 27, 2026. (AP Photo/Abdel Kareem Hana)

"괴물이 생겨나는 건 세상이 잠들었을 때"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가장 무서운 게 뭐냐'고 물으면, 죽음이라고 답한다. 자신이 죽거나, 부모가 죽는 것이다. 두 번째로 큰 두려움은 체포되는 것, 세 번째는 '우리 집을 그들이 무너뜨리는 것'이다. 알바네제가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심층 인터뷰한 기록이다. 식민 지배와 반복되는 학살은 아동의 감정과 의식까지 파고 들었다. 알바네제는 "팔레스타인 아동에게서 국제법상의 '아동 지위'를 박탈하고 삶의 기반을 무너뜨린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 통치부터 많은 수익을 올리는 국가들에게, 알바네제는 "최소한 자신의 이익을, 상황을 악화시키는데 사용하는 것은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당신은) 외교적이지도, 건설적이지도 않다'는 선 긋기다. 한 유럽 국가의 고위 정치인은 그에게 "우리가 유럽에서 최악은 아니"라는 말도 했다. 알바네제는 이들의 안이한 인식에 절망감을 표했다.

알바네제는 "괴물이 생겨나는 건 세상이 잠들었을 때"라고 말하며, 무관심과 침묵으로 괴물을 키우지 말자고 제안한다. 또한 우리의 무관심이 가장 큰 괴물이라고도 지적한다.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참여와 행동을 호소하며, 그는 "우리 각자가 희망의 대변인이자, 전달자가 될 수 있다"며 "지구 어디서든, 언제나 자신이 빛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 달라"고 책을 통해 말한다.

한국은 1910부터 1945년까지 약 35년 동안 일본 제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팔레스타인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현재까지 78년간 식민지배를 받고 있다. 2023년 10월 7일 가자지구 침략 전쟁을 시작으로 3년 간 집단학살이 이어지고 있다. 누적 사망자는 최소 7만 5000명을 넘었고 부상자는 최소 18만 명으로 추산된다. 전체 인구의 10%가 다치거나 죽었다고 추정된다. 가자지구는 사상 최악의 인도적 위기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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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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