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돌봄이라는 감옥, 그리고 국가책임제라는 신화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 달라'는 발달장애 부모들의 절규는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다. 학교를 졸업한 성인기 발달장애 자녀가 갈 곳이 없어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 부모의 삶은 멈춰 선다. 이 절박한 고통 속에서 정부가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나 '최중증 통합돌봄'을 이야기할 때, 당사자 가족들이 느끼는 안도감은 분명 존재한다. 국가가 이 무거운 짐을 나누어지겠다는데 마다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사회적 협동조합을 일궈온 엄마의 눈에는 여전히 깊은 불안함이 남는다. 지금 정부가 제시하는 대책들은 과연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까? 혹시 우리는 '국가책임'이라는 이름 아래, 발달장애인을 또다시 사회와 격리된 '관리 대상'으로 가두어두려는 것은 아닌가.
돌봄이라는 따뜻한 이름 뒤에 숨은 수동성의 그늘
우리는 흔히 '장애인 돌봄'이라는 말을 아주 당연하고 따뜻한 언어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돌봄'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발달장애인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누군가의 보살핌만 받아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낙인찍힌다.
정책 역시 당사자가 무언가를 시도하고 도전하도록 돕기보다는, 안전하게 사고 없이 감시하고 수용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서비스들이 당사자의 욕구나 의사와 상관없이 '안전한 관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도 자기 삶의 주인이다. 무엇을 먹을지, 어디를 갈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가 있다. 단순한 생존과 안전을 넘어선 이 포괄적인 삶의 과정 전체를 단순히 '돌봄'이라는 두 글자로 퉁쳐버릴 때, 당사자가 마땅히 누려야 할 주거, 노동, 문화, 자립의 권리는 '돌봄의 부속물' 정도로 취급되고 만다.
협동조합의 현장에서 배운 것: '보호'가 아닌 '기회'가 사람을 바꾼다
내가 꿈고래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고, 발달장애지원이종협동조합연합회를 결성해 지역사회 안에서 발버둥 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의 기존 바우처나 시설 중심의 돌봄 서비스만으로는 아이들이 지역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순히 아이들을 맡아두는 '돌봄방'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일하고, 지역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며, 자신만의 삶을 가꿔갈 '기회'와 '체계'가 필요했다.
현장에서 확인한 변화는 놀라웠다. 보호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던 발달장애인들이 적절한 '맞춤형 지원'과 '의사결정 조력'을 받자, 자신의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내는 직업인이 되었고, 지역사회의 당당한 이웃이 되었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나를 안전하게 가둬둘 '돌봄'이 아니라, 내가 사회 속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곁에서 발을 맞춰주는 '전문적인 지원(Support)'이었다. 해외 수많은 복지 선진국들이 Policy 언어에서 'Care(돌봄)'를 지우고 'Support(지원)'를 채워 넣은 까닭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제도의 언어가 바뀌어야 당사자의 삶이 바뀐다
언어는 생각을 지배하고, 정책의 언어는 국민의 인식을 규정한다. 정부가 아무리 막대한 예산을 들여 '통합돌봄'을 확충한다 한들, 그 철학이 '불쌍한 장애인과 그 가족을 도와준다'는 시혜적 관점에 머물러 있다면 발달장애인은 평생 시혜의 대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제 보건복지부의 정책 철학은 근본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첫째, '통합돌봄'이라는 시혜적 명칭부터 '개인별 맞춤형 지원'으로 바꿔야 한다. 서비스의 중심을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는 돌봄'에서 '당사자가 존엄한 시민으로 살아갈 권리 보장'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둘째, 현장의 인력을 단순 돌봄 노동자가 아닌 '발달장애 직접지원 전문가'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당사자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지역사회 참여를 돕는 전문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그에 걸맞은 처우를 보장해야 서비스의 질이 올라간다.
셋째, 사회연대경제 및 지역사회 협동조합 생태계와의 대대적인 연대가 필요하다. 국가의 공적 예산이 단순 수용 시설이나 일회성 서비스에 쓰일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지역사회 안에서 주거, 일자리, 여가를 함께 누릴 수 있는 지역사회 기반 지원망을 만드는 데 흘러들어가야 한다.
장애를 가진 내 자녀가 바라는 미래는 거대한 시설이나 완벽하게 격리된 돌봄 시스템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갈 수 있는 일터가 있고, 주말이면 이웃과 인사를 나누며, 스스로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다.
정부의 발달장애인 정책이 단순한 '보호와 관리'를 넘어, 당사자가 온전한 시민으로 지역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는 '권리와 자립의 지원'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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