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기봉 칼럼] 방 안에 있는 아이, 우리는 언제 문을 두드릴 것인가-마음의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두드리는 일
“그냥 방에 있고 싶어요.”
“학교에 가기 싫어요.”
“밖에 나가기 싫어요.”
이 말을 하는 아이에게 우리는 무엇부터 물을까.
“왜 그러니?”, “언제까지 그럴 거니?”
어쩌면 우리는 아이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부터 건네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립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지 않는다.
대구시는 오는 10월 달서구 송현역 인근에 ‘청년미래센터’를 연다. 가족돌봄청년과 고립·은둔청년의 상담과 일상 회복, 교육·일자리 등을 연결하는 전담기관이다.
고립·은둔을 개인이나 가족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청년이 된 뒤에야 손을 내미는 것으로 충분할까.
학교에 가는 날이 줄고, 친구와의 연락이 끊기고, 가족과의 대화가 줄면서 어느 순간 방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 고립·은둔은 청년의 문제가 되기 전에 이미 청소년의 일상에서 시작될 수 있다.
2024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실시하고 2025년 발표한 첫 전국 고립·은둔 청소년 실태조사는 9~24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했다. 고립·은둔 청소년의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4.76점으로, 보통 청소년의 7.35점보다 낮았다.
고립·은둔의 가장 큰 이유는 친구 등 대인관계의 어려움이었고, 공부·학업 관련 어려움이 뒤를 이었다.
더 눈여겨볼 숫자가 있다.
71.7%.
고립·은둔 청소년 10명 중 7명 이상이 현재의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벗어나기 위해 시도한 청소년도 55.8%였다.
이 아이들은 세상과 단절하기를 원하는 것만은 아니다.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왜 방에서 나오지 않을까?”가 아니라 “이 아이가 다시 세상과 연결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라고 물어야 한다.
아이를 방에서 끌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서는 안 된다. 그 방에 들어가게 된 이유부터 살펴야 한다. 고립·은둔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빨리 밖으로 나오라”는 재촉이 아니다. 다시 연결될 수 있다는 경험이다.
실태조사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꼽은 도움은 ‘눈치 보지 않고 들러서 머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응답률은 79.5%였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프로그램보다 부담 없이 머물 수 있는 공간,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는 어른, 다시 관계를 맺어볼 기회다.
대구도 조금씩 문을 열고 있다. 동구·달서구·달성군에서는 고립·은둔 청소년을 찾아 상담과 학습, 회복·치유를 연결하는 원스톱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오는 10월에는 가족돌봄청년과 고립·은둔청년의 일상 회복을 돕는 청년미래센터도 문을 연다.
하지만 가장 좋은 지원은 아이가 완전히 고립된 뒤 찾아가는 지원이 아닐 것이다. 청년이 되기 전에 발견하고, 더 깊은 은둔으로 들어가기 전에 연결하는 것.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을 단순한 출석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친구와 단절된 것을 사춘기의 한 과정으로만 넘겨서도 안 된다. 가정과 학교, 청소년기관과 지역사회가 아이의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방을 나오는 용기만이 아니다. 방 밖에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믿음이다. 고립·은둔 청소년에게 “왜 나오지 않을까?”라고 묻기 전에, 이제 우리 사회가 물어야 한다.
“이 아이가 다시 세상과 연결될 수 있도록 우리는 어떤 문을 열어두고 있는가.”
청년이 된 뒤 문을 열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전에, 청소년의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두드리는 일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