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입사 동기였던 남성 직원에 의해 숨진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4주기가 되어간다. 비극의 반복을 막고, 젠더폭력과 괴롭힘 없는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담아 공공운수노조가 보내온 글을 싣는다.
2026년 5월 17일 강남역 10번 출구 앞 도로에 500여 명이 누웠다. 여성폭력 다이인(Die-in) 퍼포먼스였다. 죽은 듯이 누워있는 사람들 위로 나래이션이 이어졌다.
10년 전,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한 여성의 죽음에 수많은 이들이 붙인 추모의 포스트잇이 강남역을 가득 메웠다. 강남역의 추모행동은 우리 사회 여성폭력·젠더폭력의 심각성과 여성들의 분노를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0주기를 맞이한 올해, 5주기부터 추모행동을 주최해 온 서울여성회와 젠더폭력해결페미니스트연대는 전국을 순회하며 여성폭력 다이인과 릴레이 토론회를 개최하고 5월 17일 당일, 강남역 10번 출구 앞 대로에서 추모행사를 진행했다.
10년 간의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추모행동이 우리 사회에 던진 의미는 '각성, 결집, 행동'이라는 세 단어로 집약된다. 강남역 사건은 여성폭력·젠더폭력 사건이 벌어지면 '여성들에게 조심하라던 사회'를 살아가던 이들에게 '사회구조적 성차별과 폭력'을 각성하게 했다. '우연히 살아남았다'라는 대표적인 포스트잇의 문구는, 아무리 노력했어도 그날 강남역에 있었다면 나 역시 안전할 수 없었다는 각성의 표현이었고,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라는 구호는 결집과 행동의 중요성을 담고 있다.
10주기 전국 순회 추모행동에서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는 '강남역은 전국 어디에나 있다'였다. 섬이 많은 목포에서 피해자 한 명을 만나기 위해 하염없이 배를 기다리는 이야기도, 보수적인 지역 분위기에 폭력에 대한 인식조차 부족한 상황에서 고군분투를 말하던 이들도 '대한민국의 모든 곳이 강남역'이라는 목소리를 모았다. 그만큼 강남역은 우리 사회 여성폭력·젠더폭력의 심각성을 상징하는 단어이자, 포기하지도 외면하지도 않고 세상을 바꿔온 투쟁의 상징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신당역 역시 강남역과 같은 이름이자, 대한민국 여성폭력·젠더폭력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또 다른 장소이다. 강남역과 신당역은 우리사회의 성차별이 끝내는 죽음이라는 극단적 폭력으로 이어졌다는 것에서 같지만, 면식 관계에서의 여성이 겪는 폭력과 스토킹의 심각성, 그리고 피해자의 적극적인 신고에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우리 사회 안전 시스템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4년 전 2022년 신당역에서 한 여성 노동자가 살해당했다. 가해자는 직장 동료였다. 직장 동료는 가까우면서도 먼 관계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주 5일 최소 8시간 이상 머물게 되는 직장의 동료는 일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관계이다. 그리고 친구나 연인 같은 깊은 관계를 선택하지 않는 한, 업무를 위해 협업하는 관계일 뿐이다. 그런데 직장 동료가 폭력적으로 돌변할 때 여성들의 일상은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된다.
성평등가족부 2021년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희롱이 발생할 경우 여성의 51%가 회사가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있으며, 정부가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는 응답은 53.9%로 더 높았다. 또한, 직장 내 성희롱 방지를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 '피해자 보호'를 선택한 사람이 32.7%로 1위였다. 카페에 가방을 둬도 안전하고 늦은 밤거리를 걷는 것도 안전하다고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여성들은 사건이 벌어지면 도움을 받거나 해결되기 어렵고, 사건을 신고하거나 공론화면 피해자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의 증거가 바로 신당역이다. 신당역 여성 노동자 살해 사건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만약 우리 사회가 피해자의 용기와 노력에 제대로 응답하기만 했다면 아직 살아있을 여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직장 동료인 전주환의 3년에 걸친 일방적인 연락과 협박이라는 스토킹 행위를 신고했다. 그러나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경찰은 고소장이 접수된 때부터 한 달 동안 피해자에 대한 신변 보호를 진행했지만, 스마트워치와 접근금지 명령 등 법적으로 보장된 조치를 하지 않았고 신변 보호를 연장하지도 않았다. 전주환은 합의를 핑계로 피해자에게 계속 집요하게 연락해 왔고 피해자는 다시 고소했다. 역시 구속영장은 신청되지 않았다. 법원의 판결을 앞둔 전주환은 직장 동료였던 것을 이용하여 피해자의 동선을 파악했고, 끝내 피해자는 근무 중 살해당했다.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직장 동료의 일방적인 연락이 도를 넘어서고 직장 내에서 불법 촬영과 유포 협박이 일어난 사건에 대해 피해자가 신고까지 했는데, 왜 제대로 된 보호와 격리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나이다. 올해 3월 남양주에게 발생한 교제 살인 피해자 역시 여러 차례 신고했고 마지막에는 몰래 부착된 위치추적 장치를 찾아서 신고했지만, 전자발찌와 구속 등의 긴급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얐고, 끝내 납치 살해당한 것 역시 유사한 문제였다.
여성들의 일상이 위협받고 생명이 위협받는 사건이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 자체가 아직도 우리 사회가 여성폭력·젠더폭력을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자, 결정적인 변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권력과 고정관념이 작동하는 차별과 폭력은 피해자의 거절을 듣지 못하며 거절 자체가 다시 폭력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여성의 NO는 YES'라는 낡은 고정관념이 '왜 안 만나줘 범죄(여성이 거절한다는 이유로 벌어지는 폭력)'의 형태로 발현되고, 모든 이들이 폭력을 겪으면 안 된다는 기본은 '사랑하는 사이' '친밀할 관계'라는 이유로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라는 의심으로 이어지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강남역과 신당역이 반복되는 것을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피해자는 죽음에 이르는 공격을 받고도 비상벨을 눌렀다. 그의 비상벨은 범인을 바로 체포할수 있도록 했다. 신당역 피해자가 죽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용기에 우리는 어떤 응답을 할 것인가. 그 대답은 기억하는 자들에게 남겨진 몫이다. 강남역 10주기 추모행동에 참여한 이들의 답은 "살아남은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슬로건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당신의 답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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