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네팔에서 발생한 대홍수는 우리가 재난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2026년 8월 26일, 네팔과 중국 티베트 접경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얼음·암석 사태는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물과 토석을 계곡으로 쏟아냈다. 트리슐리강의 수위가 불과 30분 만에 최대 9미터까지 치솟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마을과 도로, 교량, 수력발전시설이 휩쓸렸고, 8월 29일 현재 네팔과 티베트를 합쳐 사망자는 600명 안팎, 실종자는 2000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국제적십자사는 약 9만 3000명이 심각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산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재난의 속도와 성격이다. 과거 우리가 경험했던 일반적인 홍수와는 달랐다. 단순히 많은 비가 내려 강물이 넘친 것이 아니라 빙하와 산악지형의 불안정성이 얼음·암석 사태, 토석류, 하천 범람으로 연쇄적으로 이어졌다. 기후변화가 고산지역의 빙권을 불안정하게 만들면서 과거의 경험과 통계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유형의 복합재난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지난해 스위스에서 발생한 블라텐 재난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2025년 5월 스위스 알프스의 블라텐에서는 빙하와 산사면이 붕괴하면서 거대한 암석·빙설이 마을을 덮쳤고, 이후 하천이 막히면서 대규모 홍수 위험까지 발생했다. 마을 대부분이 파괴됐으며 피해액은 약 3억 2000만 스위스프랑(한화 약 5300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약 300명의 주민은 사전에 대피했다. 재난의 규모에 비해 인명피해가 극적으로 줄어든 이유다. 스위스도 재난의 정확한 시점과 규모를 완벽하게 예측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험의 징후를 감지했고, 위험이 현실화되기 전에 사람을 움직였다.
반면 네팔에서는 재난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어 많은 사람들이 대피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두 사건의 차이는 단순히 스위스와 네팔의 국력이나 경제력의 차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에게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오늘날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재난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인가, 아니면 예측할 수 없는 재난에도 사회가 무너지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인가.
현대의 재난은 과거의 경험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는다. 기후변화는 재난의 발생 빈도뿐 아니라 그 형태와 속도까지 바꾸고 있다. 따라서 과거의 재난 통계를 근거로 미래의 재난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 국가는 '예측 가능한 위험'을 관리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측할 수 없는 위험에 견디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21세기 복지국가가 새롭게 담당해야 할 역할이다.
현대 위험사회와 복지국가의 패러다임 전환
복지국가라고 하면 우리는 노인이 되면 받는 연금, 실직했을 때 받는 실업급여, 아플 때 이용하는 의료서비스, 장애인을 위한 사회서비스를 먼저 생각한다. 지금까지 복지국가는 대체로 '삶에서 발생하는 예측 가능한 위험'을 국가가 함께 부담하는 제도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위험은 과거와 다르다.
이번 네팔 대홍수 사태를 통해 보듯, 기후변화로 폭우와 폭염, 대형 산불과 산사태, 감염병의 세계적 확산, 전력과 통신망의 마비, 공급망 붕괴, 초대형 산업재해와 같은 위험은 언제, 어디서, 어떤 규모로 발생할지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의 재난이 다른 재난을 연쇄적으로 불러온다는 점이다. 복지국가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위험은 평등하게 오지만 피해는 평등하지 않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라고 규정했다. 현대의 위험은 특정 계층이나 지역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 전체로 확산한다. 하지만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폭우가 쏟아졌을 때 고급 아파트와 반지하 주택의 위험은 같지 않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보험에 가입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저소득층에게 재난은 곧 생계의 붕괴가 될 수 있다. 결국 재난은 자연이 만들지만, 재난의 피해 규모는 사회가 결정한다.
이것이 복지국가가 재난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이유다. 재난을 단순히 자연재해나 불운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회가 얼마나 안전한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지, 취약계층을 얼마나 촘촘하게 보호하는지, 위기 때 얼마나 신속하게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지가 재난의 결과를 결정한다. 따라서 복지는 재난 이후의 현금 지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위험을 사전에 줄이고, 위기에 견딜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자체가 복지정책이 되어야 한다.
'최악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국가
철학자 한스 요나스는 현대 과학기술 문명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힘을 인간에게 부여했지만, 그 결과가 미래 세대와 지구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가 강조한 것은 '책임의 원칙'이다. 오늘의 결정이 미래 세대의 삶을 파괴하지 않도록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요나스가 말한 '공포의 발견술'은 오늘날 재난정책에 중요한 의미를 준다.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위험을 무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최악의 상황을 먼저 상상하고 그것을 피하기 위한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의 실패는 때로 돈을 잘못 쓴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돈을 쓰지 않아 발생한다.교량이 무너지기 전에 보수하고, 산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위험지역을 관리하며, 감염병이 확산되기 전에 의료체계를 준비하고, 전력과 통신이 끊어지기 전에 대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적극적인 복지다.
재난 때 사람들은 정말 서로 싸우는가
재난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오래된 편견이 있다. 국가의 통제가 무너지면 시민들은 약탈과 폭력에 빠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재난사회학자들의 연구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리베카 솔닛은 <재앙 속에서 싹트는 유토피아>에서 대지진과 대형 재난을 겪은 여러 도시의 사례를 분석했다. 놀랍게도 재난 직후 시민들에게서 나타난 것은 혼란과 이기주의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낯선 사람들이 서로 음식을 나누고, 부상자를 돕고,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자발적인 상호부조가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재난은 평소 우리 사회를 가르고 있던 계층과 이해관계의 벽을 일시적으로 허물기도 한다. 여기에서 복지국가의 중요한 과제가 나온다.
국가는 시민을 단순한 '복지 수혜자'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시민은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서로를 돌볼 수 있는 복지의 주체이기도 하다.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방식도 답이 아니다. 국가의 행정력과 시민사회의 자발적 연대가 결합해야 한다. 국가는 시민의 자율성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연대가 작동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스위스와 핀란드가 보여주는 것
이런 점에서 해외의 경험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스위스는 자연재해를 단순히 '재난 발생 이후의 대응'으로 보지 않는다. 위험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위험지도를 만들며, 사회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의 수준을 논의하고, 토지이용과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위험을 줄이는 통합적 위험관리 체계를 구축해 왔다. 핀란드는 더 흥미롭다. 핀란드의 '포괄적 안보'는 군사적 안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식량, 에너지, 의약품, 금융, 통신, 물류 등 국민의 일상을 유지하는 모든 시스템을 국가 안보의 일부로 본다. 민간기업 역시 위기 대응의 동반자로 참여한다.
이러한 접근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복지와 안보는 과연 다른 것인가?” 전쟁이나 감염병, 대규모 정전, 공급망 붕괴가 발생했을 때 국민에게 식량과 의약품을 공급하고, 병원을 운영하고, 취약계층의 생계를 지키는 것은 안보이면서 동시에 복지다. 21세기에는 안보와 복지가 서로 분리된 정책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생존체계'로 통합되어야 한다.
한국도 '위험복지국가'를 준비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대한 새로운 복지제도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아니다. 기존 국가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첫째, 사후 복구보다 사전 예방에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도로·교량·철도·병원·상하수도·전력망·통신망 등 국민 생활의 기반시설에 대한 위험평가와 선제적 보강이 필요하다. 도시개발과 국토계획에도 기후위험과 재난위험을 의무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둘째, 재난이 빈곤을 심화시키지 않도록 사회보장체계를 바꿔야 한다. 재난으로 소득과 재산을 잃은 사람에게 신속하게 지원할 수 있는 공공재보험이나 재난사회보장기금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취약계층에게 재난은 단순한 일시적 손실이 아니라 빈곤의 고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셋째, 지역사회를 복지와 재난 대응의 핵심 주체로 만들어야 한다. 어느 동네에 독거노인이 살고 있는지, 장애인 가구가 어디에 있는지, 침수 위험 지역은 어디인지,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는 시설과 자원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아는 것은 중앙정부의 공무원이 아니라 지역사회일 수 있다. 주민자치회, 교회와 종교기관, 시민단체, 사회복지기관, 기업 등이 평소부터 지역의 위험을 함께 파악하고 위기 대응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자원봉사가 아니다. 국가의 복지 역량과 시민사회의 연대 역량을 결합하는 새로운 사회적 인프라다.
이러한 시대적 전환에서 복지국가소사이어티와 같은 시민사회 정책 네트워크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기존의 복지국가 논의가 소득분배와 사회보장 확대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그 범위를 '사회 전체의 위험을 어떻게 함께 부담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확장해야 한다. 기후위기, 감염병, 돌봄위기, 고령화, 인구감소, 에너지와 식량안보, 디지털 인프라, 지역소멸 등은 서로 분리된 문제가 아니다. 한 위험이 다른 위험을 증폭시키는 복합위험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정부의 복지정책을 비판하거나 새로운 복지제도를 제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위험복지국가'라는 새로운 국가모델을 사회적으로 논의하고 설계하는 정책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학계와 기업, 시민사회와 지역공동체를 연결하고, 해외의 성공적인 위험관리 모델을 한국의 현실에 맞게 번역하는 역할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을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위험을 관리하는 주체로 세우는 일이다.
복지는 미래를 지키는 정치다
복지의 본질은 무엇인가.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나누어주는 것만이 복지는 아니다. 사람이 어떤 재난을 만나더라도 삶의 존엄을 잃지 않도록 사회가 함께 버텨주는 것이 복지다. 그렇다면 복지는 재난이 발생한 뒤 시작되어서는 안 된다. 무너질 가능성이 있는 다리를 미리 고치는 것, 침수될 지역의 위험을 줄이는 것, 취약한 시민을 미리 찾아내는 것, 식량과 의약품을 비축하는 것, 지역사회가 서로를 돌볼 수 있는 관계망을 만드는 것, 미래 세대에게 안전한 환경을 물려주는 것. 이 모든 것이 복지다.
울리히 벡이 우리에게 위험사회의 현실을 보여주었다면, 한스 요나스는 그 위험에 대한 책임을 일깨웠고, 레베카 솔닛은 재난 속에서도 인간의 연대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복지국가는 위험이 발생한 뒤 국민을 구제하는 국가에서, 위험이 발생하기 전에 국민을 지키는 국가로 진화해야 한다. 그리고 그 국가는 혼자서 모든 것을 통제하는 국가가 아니라, 정부와 시장, 시민사회와 지역공동체가 함께 위험을 분담하고 서로의 생존을 지켜주는 국가여야 한다. 이것이 21세기 위험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새로운 복지국가의 모습이다. 복지의 미래는 더 많은 급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더 안전한 사회, 더 강한 공동체, 더 책임 있는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위험복지국가'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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