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나는 로마와 피렌체처럼 주민의 삶이 살아 있는 곳이 오래 사랑받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하며 한 가지 부러움이 마음에 남았다. 이탈리아에서는 수백 년 된 문화재 건물 안에서 사람들이 태연히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는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는 문화재급 공간에서 음식을 파는 일이 아직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다. 물론 두 나라의 사정이 다르니 그대로 옮겨 올 수는 없다. 그러나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면 우리도 검토해 볼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은 비판이 아니라 제안의 마음으로, 문화재에 온기를 더하는 상상을 함께해 보려 한다.
수백 년 된 카페가 문화재인 나라
먼저 이탈리아의 풍경을 그려 보자.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에는 1720년에 문을 연 카페 플로리안이 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로, 바이런과 괴테가 드나들던 그 공간에서 지금도 여행자들이 커피를 마신다. 로마에는 1760년에 시작된 안티코 카페 그레코가 있다. 이곳은 1953년 이탈리아 정부가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공간이자 300점이 넘는 예술품을 품은 살아 있는 미술관이면서 여전히 손님을 받는 카페다.
핵심은 이것이다. 이탈리아는 이 오래된 공간들을 유리장 안에 박제해 두지 않았다. 사람이 드나들고 커피 향이 배고 잔이 부딪치는 그 일상 속에서 문화재를 지켜 왔다. 성(城)과 궁, 옛 수도원 건물이 레스토랑과 카페, 숙소로 쓰이는 것도 유럽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온기가 끊긴 건물은 아무리 잘 보존해도 서서히 죽어 가지만 사람이 사용하는 건물은 살아서 숨 쉰다는 것을. '사용하는 것이 곧 가장 좋은 보존'이라는 발상이 그 바탕에 있다.
오해부터 풀자 - 우리에게도 문은 열려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불가능할까. 여기서 반가운 사실 하나를 짚고 싶다. 흔히들 '문화재에서는 장사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영역이 이미 있다는 점이다.
우리 제도에서 '등록문화유산'(옛 등록문화재)은 사정이 다르다. 이것은 주로 근대의 건축물처럼 비교적 최근의 유산을 대상으로 하는데 박물관 같은 공공시설뿐 아니라 카페·레스토랑·숙박 같은 상업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폭넓게 허용된다. 오히려 국가가 외관을 크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 내부 수리를 인정하고 건축 기준을 완화해 주며 수리비 일부를 보조해 주면서 적극적인 활용을 권장하기까지 한다. 앞선 글에서 본 근대건축 카페 거리들이 가능했던 것도 이런 제도적 바탕 덕분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역사문화권과 관련한 규제를 완화해 지자체가 활용의 여지를 더 넓게 설정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도 이루어졌다. 문은 생각보다 이미 열려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려운가
물론 모든 문이 활짝 열린 것은 아니다. 국보나 보물, 사적처럼 국가가 엄격히 관리하는 '지정문화유산'과 그 주변의 보존지역에서는 상업적 활용이 훨씬 조심스럽다. 이것은 당연하고 또 필요한 일이다. 다만 어려움이 반드시 법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짚고 싶다.
현장에서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은 몇 가지 실무적 장벽과 인식이다. 오래된 건물을 오늘의 위생·소방·안전 기준에 맞추는 일은 만만치 않고 원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주방과 상하수도를 들이는 데는 상당한 전문성과 비용이 든다. 여기에 '문화재는 손대면 안 되는 것, 그저 보고 지나가는 것'이라는 오래된 인식이 더해진다. 그러나 이 장벽들은 대부분 '넘을 수 없는 벽'이 아니라 '설계하기 나름의 과제'다. 관점을 바꾸면 해법이 보인다.
그래서, 몇 가지 제안
그렇다면 어떻게 이 상상을 현실로 옮길 수 있을까?
첫째, '보존이냐 활용이냐'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발상이다. 문화재를 지키는 방법에는 유리장에 넣어 두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이 드나들며 그 가치를 누리게 하는 것 또한 훌륭한 보존이다. 이탈리아의 오래된 카페들이 증명하듯 활용은 보존의 반대말이 아니라 보존의 한 방법일 수 있다. 이 관점의 전환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다.
둘째, 문화재의 성격에 따른 세심한 차등 활용이다. 이미 활용이 열려 있는 근대 등록문화유산은 더 적극적으로 미식 공간과 이어 주고 보존 가치가 높은 지정문화유산은 훼손이 적은 방식, 이를테면 안마당의 찻자리나 기존 부속 건물을 활용한 작은 다실 같은 활용부터 조심스럽게 시범해 볼 수 있다. 모두에게 같은 잣대가 아니라 유산의 격에 맞는 맞춤형 활용의 문법이 필요하다.
셋째, 활용을 뒷받침하는 전문 지원이다. 오래된 건물에 안전하게 주방을 들이고 소방 기준을 충족하도록 돕는 설계·시공 컨설팅, 그리고 원형 보존을 전제로 한 리모델링 보조금이 있다면 개인이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장벽이 크게 낮아진다. '하지 마라'는 규제만이 아니라 '이렇게 하면 된다'는 안내가 함께 가야 한다.
넷째, 공공이 마중물이 되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걱정했는데 이를 막을 열쇠도 여기에 있다. 지자체나 공공 재단이 가치 있는 문화재·근대건축 공간을 확보해 지역의 젊은 창업자나 정직한 미식가에게 낮은 임대료로 내어 주는 것이다. 그러면 문화재는 온기를 얻고 창업자는 기회를 얻으며 그 수익이 소수 자본이 아니라 지역으로 돌아간다.
다섯째, 공간의 역사를 메뉴에 담는 것이다. 카페 그레코가 예술품과 함께 커피를 팔듯 그 건물이 품은 이야기를 음식과 경험으로 번역할 때 그 한 잔은 특별해진다. 문화재라는 그릇에 그 지역의 역사와 음식을 함께 담는 것, 그것이 이 상상의 완성이다.
유리장 밖으로 나온 유산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문화재는 박물관 유리장 안에서보다 사람의 일상 속에서 더 잘 산다는 것이다. 물론 훼손을 막는 신중함은 끝까지 지켜야 할 원칙이다. 그러나 신중함이 지나쳐 아예 손대지 못하게 하는 것과 지혜롭게 온기를 더해 살아 있게 하는 것 사이에는 넓은 여백이 있다. 그 여백에서 우리는 새로운 상상을 해 볼 수 있다.
수백 년 된 공간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 오래된 벽 아래에서 맛보는 그 지역의 한 끼. 그것은 단순한 외식이 아니라 유산과 오늘의 삶이 만나는 특별한 경험이다. 우리에게도 지키고 싶은 아름다운 공간들이 도시마다 잠들어 있다. 그 공간에 조심스럽게 그러나 과감하게 온기를 더하는 상상. 그 상상이 지역의 미래 먹거리를 살찌우는 또 하나의 길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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