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들이 미식관광의 개념과 전략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그것이 가장 생생하게 구현되는 '공간'으로 들어가 보려 한다. 바로 원도심의 낡은 골목이다. 한때 도시의 중심이었으나 새 도심에 밀려 쇠락했던 그 골목들이 근래 들어 음식과 카페를 앞세워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낡음이 어떻게 매력이 되고 오래된 건물이 어떻게 미식의 무대가 되는가? 도시의 오래된 뼈대와 지역의 음식이 만나는 이 흥미로운 현상을 그 빛과 그림자를 함께 들여다보려 한다.
왜 사람들은 낡은 골목으로 향하는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번쩍이는 신도시의 상가를 두고 왜 사람들은 굳이 불편한 원도심의 좁은 골목을 찾아갈까? 답은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대체 불가능성'에 있다.
새로 지은 상가는 어디나 비슷하다. 그러나 백 년 된 적산가옥, 옛 철도 관사, 일제강점기 창고 건물이 늘어선 골목은 다른 어디에도 없다. 그 공간에는 시간이 쌓여 있고 그 시간은 돈으로도 속도로도 만들 수 없다. 여기에 음식이 더해지면 강력한 상호반응이 일어난다.
오래된 건물이라는 '공간의 진정성'과 그 지역 음식이라는 '맛의 진정성'이 만나 여행자에게 다른 곳에서는 결코 살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낡은 벽돌 창고에서 그 지역의 재료로 만든 요리를 먹고 커피를 마시는 경험. 이것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그 도시의 역사를 맛보는 일이다. 원도심 골목이 미식관광의 무대로 각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근대유산이 미식의 무대가 되다
실제로 전국의 여러 원도심이 이 방식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군산은 근대역사박물관과 일제강점기 건축물이 남은 거리를 '근대로의 시간여행'이라는 콘텐츠로 엮어 오래된 빵집과 짬뽕 골목 같은 지역 음식과 결합시켰다. 목포는 개항기의 역사가 응축된 원도심을 '1897 개항문화거리'로 재생하면서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그 거리 안에 음식의 거리, 젓갈 골목, 해산물 거리 같은 미식 테마를 촘촘히 배치했다. 근대건축이라는 하드웨어에 지역 음식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입힌 것이다.
내가 사는 대전에도 인상적인 사례가 있다. 대전역 뒤편, 일제강점기 철도 종사자들이 살던 낡은 관사촌 소제동이다. 오랫동안 소외되고 낙후되었던 이 동네가 70년 넘은 관사와 여관 건물을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개조하면서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철길 옆 낡은 골목이 미식과 만나 완전히 새로운 얼굴을 갖게 된 것이다.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도시의 낡은 뼈대를 허물지 않고, 그 위에 지역의 음식과 이야기를 얹어 되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공에는 그림자가 따른다
여기까지가 밝은 면이라면 이제 반드시 짚어야 할 그림자가 있다. 앞선 진정성 편에서 예고했던 바로 그 문제,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원도심 골목의 되살아남에는 아프도록 일정한 패턴이 있다. 낙후되어 임대료가 싼 골목에 개성 있는 가게들이 하나둘 들어서 동네가 뜨면, 곧 임대료가 치솟고 큰 자본이 몰려든다. 정작 그 동네를 매력적으로 만든 작은 가게들은 오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밀려나고 그 자리를 어디서나 본 프랜차이즈가 채운다.
실제로 소제동을 두고도 낡은 부지를 싼값에 사들여 콘텐츠로 값을 올린 뒤 시세 차익을 노리는 조직적 움직임과 그로 인한 주민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동네를 살린 개성이 바로 그 성공 때문에 사라지는 역설. 원도심이 애써 되찾은 그 고유함을 스스로 지워 버릴 위험이 늘 함께 있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위험은 '박제화'다. 근대유산을 관광 상품으로만 소비하다 보면 그곳에 실제로 살고 일하는 주민의 삶은 뒷전으로 밀린다. 사람이 살지 않고 사진만 찍고 가는 거리, 겉은 그럴듯하지만 속은 텅 빈 세트장 같은 골목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골목이 지녔던 진짜 매력, 곧 삶이 살아 있는 진정성은 사라지고 만다.
삶이 살아 있는 곳이 오래 사랑받는다
그렇다면 성공하면서도 그림자에 삼켜지지 않은 곳은 어디일까. 세계적으로 오래도록 사랑받는 미식 관광지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뚜렷하다. 역사와 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 동시에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일상의 삶'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로마와 피렌체가 대표적이다. 수백 년 된 골목과 광장에 여전히 주민이 살고 오래된 가게가 대를 이어 장사하며 그 생활의 결 위로 관광객이 스며든다.
관광지를 위해 삶을 걷어낸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삶 자체가 관광의 매력이 된 것이다. 시장을 보면 더 분명하다. 교토의 니시키 시장은 400년 역사를 지닌 '교토의 부엌'으로 지금도 상인 상당수가 4대, 5대째 가업을 잇고 있으며 관광객뿐 아니라 교토 시민이 매일 장을 보러 온다.
바르셀로나의 라 보케리아 시장 역시 동네 주민의 밥상을 책임지고 지역 식당에 식재료를 대는 '생활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도시의 대표 명소다. 여행자는 그곳에서 꾸며진 무대가 아니라 주민들의 진짜 일상을 걷는다.
흥미롭게도 니시키 시장과 라 보케리아, 그리고 피렌체의 산 로렌초 시장은 최근 손잡고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함께 추진했다. 그 목표가 인상적이다. 오래된 좌판의 연속성을 지키고 지역 전통에 뿌리내린 먹거리와 고유의 미식을 보전하며 '주민과 방문객 모두를 위한 시장의 사회적 기능'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관광객만을 위한 공간도 주민만을 위한 공간도 아닌 둘이 공존하는 살아 있는 유산. 바로 이것이 오래가는 미식 목적지의 비결이다. 삶을 지운 골목은 세트장이 되어 시들지만 삶이 살아 있는 골목은 세월이 갈수록 깊어진다.
낡음을 지키되 삶을 남기는 재생
그렇다면 원도심 미식관광은 어떻게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열쇠는 '무엇을 지킬 것인가'를 정확히 아는 데 있다.
지켜야 할 것은 건물의 겉모습만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삶과 관계다. 오래된 골목을 되살리되 원래 살던 주민과 그 골목을 일군 작은 가게들이 함께 남을 수 있어야 한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공공임대상가나 상생협약처럼 성공의 열매가 소수 자본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에 돌아가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골목의 음식은 유행을 좇아 어디서나 파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역사와 재료에 뿌리내린 것이어야 한다. 근대건축이라는 그릇에 그 지역만의 진짜 음식을 담을 때 비로소 원도심은 오래가는 미식 목적지가 된다.
결국 원도심 골목의 미식 재생은 '낡음을 파는 일'이 아니라 '낡음 속에 살아 있는 삶을 지키며 새 생명을 더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 균형을 잡는 것이 이 매력적인 흐름을 반짝 유행으로 끝내지 않고 지역의 지속가능한 자산으로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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